brunch

매거진 감상일지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막물고기 Oct 26. 2017

[영화] 유리정원

순수한 것은 오염되기 쉽죠 
영화의 포스터에도, 한번 이상 듣게 되는 영화 속 대사에서도 이 한줄의 말은  
영화 유리정원을 정의시키는 문장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눈앞에 가득 펼쳐지는 푸름의 배경이 되는 숲은 생명을 품고 회복을 낳는것 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유리정원안 재연(문근영)이 사는 숲은 고립,단절,비밀이 간직된 고요와 같았다. 

12살 이후로 자라지 않은 재연(문근영)의 한쪽 발과 다리는 다른 신체기관과 어우러지지 못하는  
비대칭의 이질감으로 보여졌다. 
마치 성인의 몸에 갖힌 아동의 순수함,미성숙함이 자라지 않는 다리에 엉긴채  
다른 한쪽 어른의 다리에 질질 끌려다니는것 처럼 말이다.


사람들의 시선은 늘 차가웠고,  
처음 자신의 걸음에 보폭을 맞춰준 지도교수에게 재인은 너무도 당연하게 사랑을 품는다. 
그녀가 교수에게 마음을 주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메마르고 외로운 가슴이 경계해야 할 때가 그 한방울의 친절이다. 

재연이 유리정원으로 떠나간 사이 빈 집에 들어와 살고, 그녀가 그려놓은 그림과 글귀를 보면서  소설가 지훈(김태훈)은 재연에게 빠져들기 시작했다. 

그의 상상속에 재연은 고결하고 순결한 숲속의 정령과도 같았고 재연이 본래 가지고 있는 결점은 지운채 소설을 써내려간다. 
(다리를 절던 재인이 자연스럽게 건강하게 걷는 장면은 현실의 재연과, 소설가 상상속의 재연이 분리되는 시점으로 꽤 인상깊었다) 
자신의 소설속에서 그녀를 행복하게 그리고 싶었다고 하지만, 자신만의 관점에서 빚어낸 상상과 집착이 얼마나 이기적인지, 상처를 주는지, 보여준다. 

우리는 자신만의 이상적인 기준으로 상대를 편집하고, 조작하여 받아들일 때가 있다. 
형질 그대로의 유대를 믿지못하거나, 지속할 자신이 없다는건 감춘 채 상대방으로 하여금 그 이상향에 부합해야할 의무 혹은 짐을 강요하기도 한다. 
지훈의 소설속 나무가 되어가는 여자의 이야기를 읽고난 재연은 소설속 인물과 자신을 동일시하기 시작한다. 
소설의 모티브이자 영감을 준 건 재연이 맞지만 그녀를 멋대로 가공하고 꾸며낸건 소설가의 욕심이다 

그러다 재연이 자기가 꿈꾸었던 싱그러운 여자가 아니었다며 뮤즈는 추악한 마녀로 한순간 격하시키는 순간에도  재연을 마무리시켜주지 못한 영감의 대상자로만 대하고만 있어, 가슴이 아팠다. 


재연의 유리정원 안에서 다쳤던 새가 다시 날았다.  
그녀가 연구 실험 대상자로 삼았던 실험의 객체1 지도교수는 실패였고 객체2 새는 성공했다. 
객체1의 집합군 사람들은 그녀의 믿음, 순수를 훼손시킨 부류였고 객체2 새는 그저 새였다.
재연에게 상처줄 일 따위 없는. 

그녀의 손에 소설가의 손끝이 닿았을때 손을 웅크려 잡고 따뜻하다고 말했다. 

나무에서 태어나, 숲의 바람소리를 들으며 자라고 초록의 피가 흐를지 모르는 그녀는  
붉은 피를 가진 사람이 참 그리웠었나보다. 

상상과 함축적 의미를 표현하는 영상미도 참 좋았고, 고고한듯 쓸쓸한 피아노 선율의 음악도 영화와 참 잘 어울렸다. 
문근영 배우의 눈망울은 말로 설명할 수가 없다. 
유리정원 안 재인의 상처와 얼룩이 그대로 묻어 있는 분위기를 잘 표현해주었다고 생각한다. 
처연히 올려다보는 더벅머리에 화장기 하나 없는 초연한 모습은 안경없이 한꺼풀 흐리게 본 스크린 화면안에서도 반짝거렸다. 

교수가 나무로 된 상상의 모습은 끔찍했다. 
이 영화에서 가장 버리고 싶은 장면이다. 

나무들은 서로를 피해 가지를 올리지만 사람들은 서로 상처주고 찌른다는 대사가 슬프도록 사실적이었다. 
기민하고 세심한 심리상태가 영상으로 옮겨진 영화자체는 오래 기억이 남을 것이다. 
조금 아쉬운 점을 더 보태자면, 영상미와 컨셉을 따라가지 못하는 대사였다. 

재연씨가 내 머릿속에 들어왔어요 같은 작업멘트가 아니라,  
재연씨가 꿈속에서 느껴졌어요, 보였어요, 찾아왔어요 같은 대사가 낫지 않았을까 싶다. 
기억이 나는건 위 대사고 기억나지 않은 대사들 중에서도 다른 말로 바꾸고픈 말들도 많았다. 

그래도 새로운 시도의 영화였다는 점, 개인적인 취향에 관통당한 영화라는 점을 빌어 
더 자세히 파고 들고 싶은 영화였다.

매거진의 이전글 [책] 콰이어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