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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증후군의 제주표류기
5.바다라는 굴비를 매달아
올레14코스(저지-한림올레)
by
사막물고기
Apr 20. 2020
19일 일요일은 한라산 윗세오름(영실-어리목코스)을 오르기로 했었다.
보통 비가와도 그날의 코스는 진행되기 때문에 일요일 또한 마찬가지로 한라산에 가고자 한 신청자들이 버스에 탑승했다.
주차장 앞까지 도달해서야 입산 금지를 확인했고, 그 길로 다시 숙소로 돌아갔다.
공친날이 되버렸지만 그렇다고 무얼 하기에 비오는 제주는, 비오는 숙소 근처 고성읍은 춥고 돌아다닐 마음도 잘 들지 않는 곳이다.
버스를 타고 오가며 본 정혜신 선생님의 ' 당신의 옳다 ' 책을 마저 읽었고 그동안 못본 드라마와 영화 한편을 보았다.
당신이 옳다는 사는 동안 꼭 한번 읽어봐야할 필독서 같은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제주로 발길을 돌릴 수 밖에 없었던 복합적인 나의 문제와 주변인들에게서 받은 상처를 어쩌지 못해 울분케 한 날들이 선생님의 책으로 공감과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
언제부터 화를 제대로 내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고, 책을 읽으면서 화뿐만 아니라 모든 감정표현을 적재 적소에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부터 자신의 문제에 공감하고 위로해주지 못하고 있었고,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하는 존재라는 가련함과 자기 연민 약간, 더 많은 혐오를 품고 살고 있었다.
타인에게는 얼마나 관대하지 못했나.
그저 그들을 내버려두고, 지켜보면서 몇번의 맞장구를 쳐주는 정도였고 이는 올바른 공감이라고 할 수 없었다.
그러면서 나는 그들을 존중한다고 생각했었고, 왜 나에겐 선을 넘고 예의를 지키지 않을까 하는 피해 망상만 커졌던 것이다.
그동안 내가 알고있었던 공감의 정의가 개벽했다.
피하지 않고, 숨지 않고, 나의 달라진 공감을 보여줄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과 함께 읽었으면 좋을것 같다.
푹 쉴수 있었던 덕분인지, 발가락 통증이 조금 가셨다.
죽으라는 법은 없나보다.
비가 만들어준 강제 휴일이었지만 덕분에 다시 걸을 수 있는 힘을 만들어주었다.
아침을 먹고, 방에서 뉴스를 조금 보다보면 출발할 시간이 된다.
오늘은 밭담올레와 바당올레를 같이 걸을 수 있다는 올레14코스를 다녀왔다.
4년전 제주에서 캐리어를 끌고 이고, 엎고 하며 올레길을 걸으며 다음에는 어깨에 맬수 있는 배낭하나만 챙겨 다시 걸을 수 있으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때의 바람이 현실이 된 셈이니 어쩌면 난 생각하는것보다 더 행복한 사람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스스로를 참 모르는 사람이라며 답답할때가 있었는데, 긴 길을 걸으면서 새롭게 알아가는 면들이 있어 조금씩 기분이 좋아지고 있다.
알게된 사실 하나. 나는 초반엔 걸음 속도를 높여 잘 걷는 편이다.
하지만 발가락이고, 무릎이고, 고관절이고, 통증이 조금이라도 시작되면 급격하게 뒤로 쳐지고 통증은 대게 5키로를 넘기전 크고 작든 꼭 시작된다.
알게 된 사실 둘. 그러면서도 눈을 찌를듯한 풍경을 보게 되면 사진을 찍고, 하염없이 바라보면서 여유를 부리고 싶어지다가 다시 쫓아가기 바쁘다.
알게된 사실 셋. 수다를 떨며 걷는 사람들의 앞 뒤는 따라가고 싶지 않다.
말을 하지 않아도 둘 셋 무리지어 오는 사람이 있으면 먼저 보내고 혼자걷는걸 좋아한다.
제주의 길은 참 다양해서 눈이 지루할 새가 없다.
여기에도 있고 저기에도 있었던 바다, 돌, 풀, 흙이지만 이 곳의 자연은 또 다른 숨을 부여 받는듯한 느낌이 든다.
전날 내린 비 때문에 짙은 냄새가 곳곳에서 올라왔다.
금능과 협재 해수욕장을 따라가다 보면 바다 저편에 비양도를 볼 수 있다.
비양도는 제주에서 가장 어린 화산섬이라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어른들 틈바구니에서 둥가 둥가 춤을 추며 재주를 부리는 손자처럼 바당올레를 끼고 도는 올레꾼들에게 나좀 어여삐 보라고 모습을 비춰주는 것 같았다.
형용할 수 없는 바다 빛깔에 숨이 막힐 것 같았다.
협재 해수욕장은 관광객들이 많은 장소 중 하나였다.
하늘 하늘한 원피스를 입고, 사진을 찍는 사람들, 멋들어진 선글라스를 끼고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 등등 다양한 관광객들의 모습을 보면서 이 다음 제주에는 꼭 혼자가 아닌 여럿이서, 휴양차, 방문을 해보겠다고 다짐했다.
혹시 누가 알까.
배낭 하나만 매고 올레길을 걷고 싶다고 생각한 4년전 처럼 몇년 후에는 투명에 가까운 바닷빛을 하염없이 보면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커피를 마시고 수다를 떨고 있을지.
잠시 걸음을 멈추고, 발이라도 담궈봤으면 참말 좋겠다고 속으로 노래를 부른다.
하지만, 쉬지 않고 걷고 있는 사람들을 따라 나도 그저 걸음을 옮길 수 밖에 없었다.
바다 한번 쳐다보고, 발을 담그는 상상을 한다.
또다시 바다 한번 쳐다보고 강아지와 함께 해변을 산책하는 상상을 한다.
다시 바다 한번 쳐다보고 해변에 푹 퍼져 앉아 있는 상상을 한다.
바다라는 이름의 굴비를 천장에 매달아 허기를 달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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