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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증후군의 제주표류기
21. 자전거가 생각나는 길
올레4코스(표선-남원올레)
by
사막물고기
May 6. 2020
사실을 이야기하는것이기 때문에 핑계라고 볼 수 없지만, 자주 반복되는 사실은 핑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가령, 예를 들어,
공부가 하기 싫은 학생들이 머리가 아프다는 사실은 진짜 일 수 있지만 공부를 시작 할 때마다 머리가 아픈 것은 핑계일 확률이 더 크기 때문이다.
올레길을 걷는 나의 발, 다리 상태도 비슷한 꼴이다.
하루는 발가락이 아프고, 하루는 고관절이 아프며, 그 두곳이 아니더라도 어쩐지 아픈것 같은 통증에 계속 시달리고 있는데 오늘도 절뚝 거리며 걷게된 이유에 대해 설명하는것이 꼭 핑계를 둘러대는것만 같다.
그래서 이제는 좀 색다른 핑계를 만드는게 차라리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올레4코스는 장장 19km의 긴 거리지만 노선 조정을 거쳐 누구나 쉽게 걸을 수 있는 코스로 바뀐 거리라고 한다. (원래는 더 길었단 소리.)
표선 해비치 두 이름이 귀에 친숙하게 들려서, 여길 온 적이 있었던가 기억을 되짚어 봤으나 없었다.
표
선
해비치가 해변 이름이기도 했지만 리조트,호텔 이름으로 해비치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기도 했다.
해비치 리조트에서 묵었었는데 좋았더라 하는 대화체에서 익숙한 기억이 떠올랐다.
여유롭게 눈을 뜨고, 조식을 먹고, 리조트 정원을 산책하다가 벤치에 앉아서 책을 보는 상상을 해본다.
발과 다리가 아픈건 크게 중요하지 않을 휴양지의 일상을 보내고 싶다고 잠시 생각하다 말았다.
아마 정말로 휴양지에서의 한적한 생활을 보내노라면 두발로 씽씽 걸어다녔던 지금을 또 추억할테니깐.
표선 해안길과 해안도로 사이에는 돌무더기가 그득 그득 들어차 있어서 멀리 보이는 바다가 애닳게 느껴진다.
시선이 멀어지는건 자전거 탈 때, 자동차 드라이브를 할때는 편안하게 느껴진다.
올레길을 걸으면서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과 많이 마주치게 되는데, 올레꾼에서 라이더로 신분을 바꾸고 싶은 갈대 같은 마음을 진정시키기가 종종 어렵다.
엄청 크고, 하얗고 순둥한 강아지를 만났다.
가게에 놀러온 손님의 강아지였고, 그 옆에는
가게 주인분의 귀염뽀짝한 세마리의 강아지가 있었다.
큰 흰둥이와 작은 솜뭉치들은 서로 얼굴을 처음 본 사이지만 복실복실한 흰털이라는 큰 공통점 때문에 가족처럼 보이게 했다.
아기 강아지들 재롱을 보느라 시간가는 줄 몰랐다.
확실한 꼴찌가 된 것을 실감하고 후다다닥 따라가기 시작했다.
해안 돌담을 보면서, 나팔꽃들이 위로 올라가지 못하고 땅에 피어 있었다.
돌담에 넝쿨을 올리기엔 고되고 힘들었던걸까, 땅에 있을 꽃들이 아닌데 콕콕 박힌듯 피어 있어 기이하면서도 안쓰러웠다.
농협은행 제주 수련원과, 리조트에서 잘 정비해둔 길은 알록달록한 색감이 포인트가 될 만한 장식들이 과하지 않게 있어서 찾아보는 재미가 있었다.
토산2리 마을로 들어오면서 돌담을 넘어다 보듯 핀 장미를 보았다.
벌써 장미의 계절이 온 것이다.
수원 엄마와 함께사는 집 근처 성당에도 빨간 장미가 피어있을것 같았다.
장미가 피는 그맘때 쯤에 함께 저녁 산책을 자주 다녔었다.
그리고 이런 예쁜 동네로 이사와서 참 좋다는 생각을 했었다.
집으로 돌아가면 엄마와 같이 저녁 산책을 하며, 어스름한 밤에 그윽해진 장미를 보고, 같은 행복을 이야기했으면 좋겠다.
신흥리 동네에 무인카페가 있었다.
한라봉 음료수가 냉장고에 들어있고, 꺼낸 개수만큼 정해진 금액을 돈통에 넣고 가면 되는데, 가게를 지키는 하늘이(강아지 이름이 알림판에 적혀 있었음)가 계속 짖어댔다.
하늘이가 냉장고에서 음료는 꺼내고 돈통에 돈을 안넣는 사람이 있을때만 짖어대면 좋겠다.
아참, 그러면 무인카페가 아니라 하늘이네 카페라고 이름을 바꿔야 할지 모르겠다.
잠시 눈에 보이지 않았던 해안 도로를 다시 만나면서 신흥리 마을과는 멀어졌다.
태흥리 포구 쪽으로 향하는 해안길에는 맥심커피 광고를 찍었다고 하는 카페 건물을 만날 수 있었다.
광고용으로 만든 건물인지, 실제 운영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지나는 날에는
문
이 닫혀 있었다.
동화 같은 색채로 칠해진 건물이라 눈이 환해졌다.
올레길 4코스를 설명하는 글을 읽어보면 3코스와 비슷하지만 길게 늘인길이라고 하는 문구를 볼 수 있다.
그래서 어제 지났던 3코스와 비슷한 길인가 생각하면 그렇게 느낄 수도 있지만 대답은 아니다로 할 것이다.
똑같은 길은 없다.
아스팔트 길, 돌담 길, 숲 길 하나하나 주변을 감싸고 있던 경치가 달랐고 공기가 달랐기 때문이다.
발로 꼭꼭 밟아 걸었던 애정인지, 길은 모두 다르다고 두둔하면서 만났던 사람과 일은 비슷하면 같을 거라고 속단하는 걸까.
닮았다고 아는척 하거나, 단정 짓는 것을 조심하기로 했다.
아, 한가지 더.
아픔을 참고 길을 걸었던것 만큼 삶을 살았으면 무라도 썰고도 남을 위인이 되었을텐데 그러지 못해서 엄마에게, 스스로에게 미안해졌다.
누군가의 바람대로 사는 것이 그 사람의 숙제는 아니지만, 그 많은 것들 중 한가지 정도는 살아줘도 좋았을텐데 말이다.
그게 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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