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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막물고기 Sep 22. 2020

집엔 걸어서 갑니다.

퇴근 후 한동안 집에 걸어오는 것을 하지 않다가 다시 걷기 시작했다.


빨리 걸으면 1시간10분-20분 사이고 여유를 부리면 10-20분 더 추가가 된다.


거리는 8키로 조금 넘지만 퇴근길 버스 정체 시간도 1시간 이상은 걸리기 때문에 걷는것과 버스를 타는 것의 시간 차이는 그다지 크지 않다.


그래서 시작했었다.


하루의 대부분을 책상 컴퓨터 앞에 앉아 엉덩이로 삐대고 운동이라곤 조금도 하지 않았기에 걷는것만이라도 해보자는 다짐이 있었다.


결심 후 한달은 일주일에 서너번 이상 걸어올  정도로 꽤 잘 지켰다.

 

마침 그땐 회사를 옮긴지 얼마 되지 않아 적응하는 기간이었고, 잦은 실수와 자괴감으로 마음이 혼란했던 터라 걷기 활동은 유일한 운동이자 치료제가 되기도 했다.


왜 같은 실수를 되풀이 하는지, 이래가지고 사람들이 나를 믿고 함께 일할 수 있을지, 사람들에게 피해만 주는 것은 아닌지 등등 이런 저런 걱정과 한숨을 씩씩 거리는 날숨에 토해내고 다리가 뻐근해져 오면 묘하게 후련함을 느꼈다.


매번 고난길일것 같았던 직장생활도 소위 적응기간이라는 두세달을 버티니 조금씩 적응이 되었고 할만한 일들이 되어있었다.


내가 지능이 떨어지는건 아닐까 의심 될 정도로 다발적으로 저지른 실수도 잦아들었다.


마음은 조금 편해졌지만 대신 여유를 부릴만한 업무량은 아니어서 몸이 고단해졌다.


빨리 집으로 돌아와 쉬고 싶어졌고 걷기와 버스타기 그 몇분 안된다던 시간 차이가 이제는 꽤 크게 느껴졌다.


회사에서도 종일 앉고, 버스 안에서도 계속 앉아오면서 걷는 활동을 잊고 살았다.


몸이 점점 무거워지고 있었다.


회사사람들과 쌓인 시간이 만들어준 조금 편해진 관계를 만들어가고 있지만 그게 다가 아닌, 충분하지 않은 느낌이 있었다.


함께 술을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며 회포를 푸는것도 좋긴 했지만 어딘가 불충분하면서 붕뜬듯한 공허함이 밀려왔다.


그리고 다시 걸어보니 알 수 있었다.



몸은 고단히, 마음은 고요하게 가라앉힐 수 있는건


각자의 말들로 빼곡한 주변의 소리를 소거시키고 나의 침묵을 끌어안고 길위의 홀로 된 시간이라는것을.


날씨가 선선해졌고 유난히 습했던 올 여름의 끝을 풍성하고 보송해보이는 구름이 알려주는것만 같다.


마침, 걷기에 좋은 계절이 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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