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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막물고기 Dec 01. 2020

꿈에 나온 아빠를 떠올리며.

주말 내 펑펑 잤기 때문에 밤에 잠이 오지 않을거라 생각했는데 어쨌든, 저쨌든 잠은 쏟아졌고 그 꿈속엔 난데 없이 아빠가 나왔다.


낮에 엄마가  " 네 아빠는 요즘 연락도 없고 무얼 한다니, 잘 지내고 있나? " 하는 말을 했었다.


혼잣말 같은 물음이라 크게 마음에 담아 두지도, 정말 무얼 하며 지내시나 생각한 것도 아니었는데 꿈에 나왔다.


꿈에선 익숙한 그 모습대로 술에 잔뜩 취해 있었다.


아빠와 지내는 동안 술을 마시지 않은 날보다 늘 취해 있던 기억이 먼저 떠오른다.


맨 정신일때의 아빠는 꽤 하얀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초등학교 고학년쯤에도 아빤 삼십대인 시절이 있었으니까, 그 기억을 더듬어 얼굴을 떠올려 보면 멀끔하고, 곱상했던것 같다.


하지만 꿈에 나온 아빠의 얼굴은 내가 알고 있던 취 한 얼굴보다 더 검고 누렇고 붉었다.


얇게 찢어진 각진 눈으로 날 쏘아보며 무슨 말을 하려다 말고 하려다 다시 삼키고 있었다.


엄마는 나와 동생이 한번씩 술에 취해 들어올때마다 아빠의 술 주정이 생각나 싫다고 했다.


엄마와 아빠가 계속 같이 살고 있었다면, 아빠처럼 비틀대는 내 모습을 보고 뭐라고 하실지 궁금해졌다.


자식들의 취기 앞에 자신의 모습을 객관화 하여 바라보고 그게 싫은지, 좋은지 느낌이 있었다면 아빠는 술을 끊을 수 있었을까?


별 느낌을 받지 못할수도 있을것이다.


아빠는 아빠대로 동생과 난 나대로 각자 술에 취해 술한잔을 못하는 엄마의 속을 뒤집어 놓는 지옥을 선사했을 확률이 크다.


도저히 셋이서 사이좋게 술잔을 기울였을거라는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우린 가족인 동안에도 너무나 다른 사람들이었고, 확고한 자기세계에 갇혀 사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취하면 질겨진 고집들만 칼처럼 부딪쳤다.


아빠가 술에 취해 집을 찾지 못하고, 아무데서나 누워자거나, 가까운 친인척 혹은 동네 사람들에게 망발을 해댈 때 엄마와 같이 뒷수발을 하러 다녔다.


술마시는 어른들은 이기적이고 나태한 사람이라며 이를 바득 바득 갈았더랬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자, 알콜에 절여진 혀를 가진 사람들과는 말도 섞지 말자고 다짐했었다.


그렇게나 술을 마셨으면서도 알콜 분해력이 좋았던것도 아니었다.


취하면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충혈된 눈으로 촛점을 잃고 서로 노려보곤 했다.


주로 취하지 않은 눈이 취한눈을 으깨어 버릴듯 주시했다.


아빠와 동생은 술로 술을 씻어 소주 몇병쯤은 거뜬히 저장할 절임간을 가진 사람이 되었지만 내 간은 맥주 몇 병에 흐물거린채로 남았다.


엄마에게 미안하게도, 술은 냄새도 맡지 않을거라던 어린날의 나에게 머쓱하게도 자주 흐물거리는 간을 만들고, 머리가 깨질것 같다며 비틀대다 집으로 들어오곤 한다.


그러면서 애초에 가능하지 않은 아빠의 금주라는 희망을 품고 살았던 시간들이 개탄스러워 지기 시작했다.


가정의 모든 불행의 탓을 아빠의 술로 돌리고 싶었던 걸까.

엄마가 우는것도, 화를 내는 것도, 내가 학교에서 소외당하는 기분이 드는 것도 다 아빠와 아빠의 술때문이라고 당연하게 생각했었다.


그리고 아빠는 그때마다 순순히 받아들였다.


미안하다, 나도 힘든 일이 있다 그 두마디 정도의 항변을 밤새 돌려가며 말했다.


취해서 저지른 실수들이 떠오를때마다 내 생의 모든 기억을 같이 싸잡아 덜어내고 싶을 정도로 치욕스러웠으면서 나는 술을 끊을수 있겠느가 물으면 참아는 보겠으나 완벽한 단절은 약속할수 없다고 말할 것이다.


아빠의 술에 대한 앙갚음을 겨우, 고작, 술먹는 어른이 되어 비틀대고 있을 뿐이었다.


아빠의 얼굴을 모른지 십년은 넘었을 것이다.


마지막 얼굴도, 꿈에서 본 얼굴도 어린날 알아온 그 얼굴이 맞을까싶다.


같이 살지 않고 만나지 않는 가족을 아빠외엔 부를 다른 이름이 없다는게 문득 어색해진다.


다른 이름으로 부르고 싶다.


아빠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런 아빠는 과연 술을 끊었을까.


어디서 드시던, 혼자 술잔을 기울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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