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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막물고기 Jun 08. 2021

달팽이 두마리

상추 잎을 씻다가 발견된 달팽이 한 마리를 작은 컵에 넣어 키워보기 시작했다.

우리 집에 찾아온 생명인데 하수구로 흘려보낼 수 없지 않겠냐는 엄마는 뭐든 키우고 가꾸는 것을 좋아한다.


13년 동안 키운 강아지가 무지개다리를 건너고, 다시 새 강아지의 재롱과 사랑으로 비워진 마음을 메꿔보자며 여러 번 설득했지만 동글이는 엄마에게 대체될 수 없는 큰 사랑이었다고 식물에게 마음을 쏟기로 했단다.


그렇게 베란다에 푸른 잎들이 들어차고, 철마다 가지각색의 꽃 화분을 들여 물을 주고 가지를 쳐내며 정성을 쏟는 중이다.


달팽이 한 마리 정도의 크기는 들일만 했던 건지, 엄마의 돌봄 시선이 베란다에서 달팽이가 있는 부엌으로 한 곳 더 추가되었다.


알갱이가 자잘한 성근 흙을 깔아주고, 달팽이가 똥을 싸면 물에 헹구어 똥을 갈아준다.


먹이로 넣어준 상추 잎과 달걀 껍질이 시들면 바꿔주고, 오늘은 어느 유리벽에 붙었나 요것들 봐라 천장까지 점액질을 뿜었겠다 하며

신기해하곤 하루하루의 관찰 평을 쏟아낸다.


냉장고에서 두 번째 상추 한 소쿠리를 씻을 때

새끼손톱만 한 작은 달팽이 한 마리가 또 나타났다ㆍ


남자 친구에게 두 번째 달팽이의 발견 소식을 전했을 때 자기도 키워보고 싶다며 비 오는 날 덩굴 벽 사이를 헤쳐보던 손이 생각나

피식 웃고 말았다.


누군가 그렇게 찾고 싶은 달팽이는 내가 상추를 먹으려고 잎을 털면 똑똑 떨어져 나왔다.


먼저 자리 잡은 달팽이보다 한참 작은 달팽이였다.

추운 냉장고에서 살아보겠다고 버텨온 것을 생각하니, 엄마 말처럼 생명은 귀히 여겨야 함을 느끼며, 모르는 척 물에 흘려보내지 않은 게

참 다행스러웠다.


신기하게도, 달팽이가 두 마리의 짝으로 공생하기 시작하니, 전보다 더 활발해졌고 먹이를 먹는 양도 부쩍 늘었다 (더불어 똥도 ;;)


상추 잎 사이에 숨어 더듬이만 껌벅거리던 큰 달팽이는 유리컵 벽을 타고, 천장에도 거꾸로 매달려 있는 횟수가 전보다 자주 발견되었고,

작은 달팽이도  큰 달팽이 바로 옆 가까이 가지는 않지만 거리를 유지하며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한 마리의 삶은 스스로 무던히 잘 살고 있다고 느껴도 외로움에서 결코 떨어져 나갈 수 없는가 보다.


큰 달팽이를 보면서, 혼자서도 충만하다고 생각했던 나를 비춰본다.


작은 달팽이가 들어오기 전까지는 이 정도면 안전하고 평온한 우주를 유영하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자취 생활을 정리하고, 엄마 집으로 다시 들어갔고, 같은 공간 같은 시간을 공유하고 싶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다.

나의 달팽이집은 홀로 됨에서 열심히 꼬물꼬물 기어가 사람들에게로 향했던 것이다.


배춧잎을 먹이로 주었더니 구멍이 숭숭 휑하게 뚫릴 만큼 왕성한 먹성을 보여주었다.


어쩐지, 이 작은 컵 안의 생활을 둘이 함께 잘 적응하고 있는 것 같아서 뿌듯해졌다.


달팽이들에게 조금 더 큰 집을 본격적으로 마련해주어야 할지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이대로 충분한지, 더 큰 곳을 원하는지 달팽이들의 목소리가 들어보고 싶다.


달팽이가 들어사는 유리컵을 볼 때면, 마법 구슬에 주술을 투영시키는 마녀의 세 번째 눈이 된 것 같다.


인터넷에서 달팽이용 집으로 나온 제품을 구매하고, 칼슘제와 먹이를 사서 놓아주고 싶지만 본격적으로 둘이 잘 살아봐 하고 판을 깔아주면 도망쳐 나오고 싶은, 삐딱한 한 마리가 분명 있을 것 같기 때문에. 그게 또 나인지라 아직은 지켜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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