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닦고 잠이나 자자
오늘은 퇴근하고 자기 전에 뭐라도 좀 해보고 싶어서, 그래야 할 것 같아서 정자역 근처를 걸었다.
이전까진 보통 20분 안으로 걸어서 출퇴근이 가능한 거리의 직장들을 다니거나, 그마저 의 시간도 아까웠던 건지 출퇴근이 필요 없는 (가끔, 교육받으러 가는 것을 제외하고) 재택근무를 했지만 요즘은 장장 한 시간 반을 남겨두고 출근길에 오른다.
씻고, 준비하는 시간까지 포함하면 두 시간 반전에 집에서 출발하는데, 그렇게 나와도 버스는 늘 겨우겨우 문을 열어주어 꼬리에 매달리듯 타는 얹혀가는 기분으로 간다.
물론 조금 넉넉히 도착은 하지만, 힘이 든다기보단 진이 빠진다는 느낌이 아침부터 덕지 덕지 달라붙는다.
젊은 날 편하게 출퇴근했던 날들이 겪어봐야 할 고생 리스트 중 하나로 돌아와 뒤늦게 행하고 있는 기분이다.
바나나, 우유, 요구르트, 빵, 샌드위치, 김밥 등등이 담긴 조식 바구니에서 먹고 싶은 걸 챙겨 자리에서 먹고 나면 긴 하루가 시작된다.
회사->집->회사->집 사이클링의 중간 과정을 어떻게든 끼어 넣고 싶어서 시간적 짬과, 돈과, 체력의 상관관계 안에서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는 중인데 그동안의 실패의 경험 기록들이 꽤 많아 적절한 것들이 골라지지 않았다.
예를 들면, 돈을 내고 헬스장이나, 운동 프로그램을 끊는다 하면 가지 않는 날들이 더 많기 때문에 섣불리 저질러서는 안될 것 같은 걱정들 말이다.
그래서 하루에 몇 분씩 회사 근처든, 집 근처든, 걷고 싶은 쪽으로 한번 걸어볼까라고 생각하여 정자역까지 걸어왔는데 금세 지치고 배가 고파져 더 걷고 싶은 의욕이 사라졌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걷던 시간보다 더 오래 기다려 집 방향의 버스를 잡아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스물여섯에서 여덟 해는 질투와 열등감을 먹고 무지하도록 열심히 뛰어다니며 퇴근 후 일상을 채웠던 시절도 있었다.
배우고 싶은 것들이 누가 쿡 지르면 줄줄줄 나열할 정도로 많고 많았었다.
살아있는 동안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그것 또한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편인데,
예나 지금이나, 기본적인 생각은 그러하면서도 그 시기에 나의 자존감은 건강한 편이 아니었기에 한 번씩 의심이 들곤 하는 것이다.
내가 정말로 그 시간을 사랑하고 즐겼었던 건지 아니면 그에게 잘 보이기 위해 애썼던 것뿐인지.
실패한 패잔병같이 비틀거리며 동네에 도착했더니 배드민턴을 치는 고등학생들이 보였다.
짧은 반바지를 입고 폴짝폴짝 잘도 뛴다.
나는 반바지 입기엔 아직은 상당히 추운 날씨라고 느끼며 뛸 수도 없을 거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추위를 많이 타게 된 것, 잘 뛸 수 없게 된 것, 쉽게 피곤해지는 것들도 서글프지만
나의 일상이면서 어떤 걸 골라 넣고 빼내야 기분 좋아질 수 있는지 도통 모르쇠임에 금방 지치는 것 같았다.
그래, 그건 확실히 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