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적인 관념으로 소설을 마주하면 한끝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이쪽 소설일 것이다.
같은 소설 영역대로 묶어두기엔 독자적인 색과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해서, 나는 일반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야 와 같은
경계선을 칭칭 감고 일반적인 삶과 타협하지 않던 여자 영혜가 곧 이 소설의 정체성이자 전부가 되어 있었다.
나는 얼마나, 사람들은 얼마나, 자신이 아닌 남의 무게로 무겁게 살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각자의 고민과 고통은 오롯한 스스로의 번뇌의 결과인지, 다른 듯 보여도 일률적인 삶의 굴레라는 걱정의 무게인지 영민하게 나의 소리를 구별하라는 감각을 깨워 준다.
어릴 적 자신을 물었던 동네 개에게 한없이 잔인했던 영혜는 개를 씹고 삼켰던 육신을 비워내는 과정으로 자신을 제외한 누구도 다치게 하지 않는 평화적인 자기 파괴의 길을 달려가고 있었다.
그런 영혜가 푸름으로 물든 꽃과 초야의 그릇과도 같아, 영혜의 엉덩이에 자리한 몽고반점에서 시작된 형부의 예술과 성을 향한 집착은 아슬아슬하지만 매혹적인 열망과 광기를 보여주고 있었다.
영혜의 남편, 영혜의 형부, 영혜의 언니로 옮겨지는 시점의 서사는 영혜라는 그릇을 통해 물드는 각자의 삶 속에서 잊고 있던 자신의 열망과, 영혜를 이해하기 애쓰는 과정에서 투영되는 상처와 욕구를 깨달아 간다.
고기를 끊고, 음식을 끊고, 물과 햇빛만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이제 생각도 멈출 수 있는 나무가 되어 간다고 믿는 여자 영혜에게 가장 굵은 가지로 연결된 유기체는 영혜 언니였을 것이다.
영혜를 시들게 한 가지(남편)와 풀을 피우게 한 가지(형부)가 떠나가도 그녀의 곁을 끝까지 지키고 멍한 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내 동생 영혜는 자신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죽지는 않을까, 하는 고민은 그 자신에게로 향한 질문과도 같았다.
영혜 그녀 스스로는 내, 외면으로 죽어가고 있어도 그녀가 뿌리를 내렸던 인물들은 유기적인 자유의 숨을 쉬게 할 출발선에 설 수 있게 된 것이라 생각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