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가 일주일이 되었나, 이주일이 되었나,
본격적인 종일 비가 내린 것은 고작 이틀인데 올해 장마는 쉽게 질려버렸다.
다른 집에 비해 여름엔 습하고 겨울엔 추운 유달리 남다른 집에 사는 덕에
빗줄기가 굵어지는 장마는 참 달갑지 않은 손님이 되어버렸다.
가족과 함께 모여 살 때는 눈,비와 같이 바깥 다니기에 녹록지 않은 환경일수록
집이 있다는 사실에, 엄마 무릎을 베고 뒹굴거릴 수 있음에 자잘한 행복의 리스트들을 써 내려갈 수 있었다.
요즈음은 비가 와서 좋은 이유를 하나도 찾을 수가 없다.
매일 제습기에 표시된 높은 습도 숫자를 째려보며, 그것이 나의 짜증의 수치를 정당화시켜 주기라도 하는 양 말이다.
어제는 모처럼 비가 그치고 탄천 길을 가로질러 가는 퇴근길에 선선한 바람이 불었다.
잠결에 간질여주는 할머니의 부채 바람처럼 머리카락 가닥 가닥 기분 좋게 흩트려 준다.
무표정일 때와 웃을 때의 근육이 놀랍도록 달라진다는 여자를 정성 들여 묘사하고 싶어질 적이 있었는데,
굳이 말로, 글로 설명해 뭣해 싶을 정도로 내 얼굴이 웃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저녁에서 밤으로 넘어가는 풍광이, 하나둘 켜지는 아파트의 불빛이, 채 가시지 않은 먹구름이 정답게 잘 어울린단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