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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과 Nov 15. 2020

우울증 달래며 살기

당신은 지금 그대로 충분합니다.

우울감이라고 생각했지 내가 우. 울. 증. 이 있다고 인정한지는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3여 년 전쯤 내 발로 정신의학과를 찾아갈 때조차 내가 우울증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돌이켜보면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신 그때부터 가벼운 우울증이 시작되었던 것 같습니다. 벌써 21년 전이네요. 즐겁게 근무하던 학교에 갑자기 가기 싫고 사표가 내고 싶고 뭔가 모르게 너무 힘들고 사는 게 허무하고 모든 것이 나를 압박하는 것만 같았습니다.


이런 고민을 친구나 동료들에게 털어놓아 봤자 "배부른 고민이다.", "내가 더 힘들다.", "다 그러고 산다.", "너무 생각이 많은 거 아니야?, "시간이 지나면 괜찮을 거야." 등의 이야기만 듣다 보니 "내. 가. 문. 제."라는 결론밖에 내릴 수 없었습니다.


이런 나를 극복하기 위해 심리학 관련 책, 자기계발 책, 종교 관련 책 등을 읽으며 그런 생각과 감정을 품으면 안 된다고 채찍질 하며 내 생각과 감정을 다그치고 꽁꽁 숨기기 바빴던 것 같습니다. 


참... 나도 대단하지. 어떻게 그렇게 20여 년을 살아왔을까요? (그래서 아픔을 잘 참나봐요. 왠만큼 아파도 우울해서 힘든거보단 덜 아프거든요.)


겉으로는 큰 문제가 없어 보였겠지만 속은 텅 비어 껍질만 남은 것 같았습니다. 왜 살아야 하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더라구요. 그래도 그렇게 생각하는 내가 문제라며 열심히 자기 계발서를 읽었던 나날들이 기억나네요. 


왜 그 때는 우울증이 있는 사람에게는 자기계발이 아니라 자기 수용이 필요하다는 것을 몰랐을까요? 아무도 알려주지도 스스로 깨닫지도 못한 우울증 탈출 키워드는 바로 이것 입니다.


자기 계발이

아닌

자. 기. 수. 용


무조건적인 자기 수용. 내가 나를 괜찮다 위로해주지 않으면 누가 나를 위로해주나요? 이걸 왜 저는 몰랐을까요? 자꾸만 안그래도 힘든 내 몸과 마음을 구박하고 다그치고 쪼으기만 했었더라고요.


몸과 마음이 참다 참다 결국은 폭발해버린게 3년 전쯤이었습니다. 도무지 집중이 되질 않고 심장을 별일 아닌 일에 요동치고 별 이유도 없이 불안 초조해지면서 잠도 깊이 자지 못하는 나날이 계속됐습니다. 직장에서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집중력이나 문제 해결력이 떨어지는 것을 느꼈어요. 내가 생각해도 내가 정상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이렇게는 못 살겠다 싶어 내 발로 신경정신과에 가서 약을 타오던 날. 마치 내가 패배자가 된 느낌이었습니다. 내 살아생전 정신과를 가게 될 줄이야.... 그때만 해도 정신과는 정말 정신이 이상한 사람이 가는 곳인 줄만 알았었지요.(그런데 가보면 아무렇지도 않답니다.)


올해 여름... 2년 반년간 먹던 우울증 약을 끊었고 상담만 주 2회 유지하고 있습니다. 사실 좀 괜찮다 싶으면 내 맘대로 약을 안 먹기도 했습니다. 안 먹고 싶으면 안 먹어도 되지만 안 먹었다는 걸 의사 선생님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하세요. 그리고 자신의 상태도 자세히 설명하고요. 


그렇게 약의 양을 줄였다가 심해지면 늘였다가 약이 안 맞는다 싶으면 약의 종류를 바꿔가며 꾸준히 병원에 다녔고 어쨌든 지금은 3년 전과 비교하면 많이 좋아졌습니다.


더 이상 불안하지도 않고(J가 사고 치면 요동치긴 합니다만 이유 없이 불안하지는 않네요.) 밤에 잠도 잘 자고 최근에는 소파에 널 보러 누워있지도 않습니다. 우울증에는 걷기가 좋다는 말을 들으면 짜증만 났던 시기가 있습니다. 누가 좋은지 몰라서 운동을 안 하냐고!!  몸이 일으켜 세워지지가 않는데 어쩌란 말이냐고?


다행히 의사선생님은 운동을 권하지도 이래라저래라 하지도 않으셨습니다. 그저 내 상태를 살피고 그에 맞는 약과 상담을 제안하시기만 했죠. 저는 운이 좋았어요. J때문에 멀리 있는 좋다는 병원을 찾아갈 형편이 되지 않아 집에서 제일 가까운 개원하는 병원을 갔는데(환자가 많이 없어서 기다리지 않아도 되서) 너무나 좋은 선생님을 만난 것 같아요.


오늘 집 근처 공원을 산책하다가 "나... 참 많이 좋아졌다."라는 생각이 들어 뜬금없이 몇 자 적어보는 겁니다. 


허리가 아프도록 누워있고 싶으면 누워있었고 밥하기 싫으면 시켜먹고(ㅂㄷㅇ ㅁㅈ 더 귀한 분 등급이네요. 아직 최고 등급은 아니라니...아쉽다..ㅋㅋ) 남들 눈에 어떻게 보일까 싶어 억지로 꾸미지 않고 입던 옷이 편하면 계속 그 옷만 입고 다니고 화장도 안 하고 머리도 안 했습니다. 늘 남이 뭐라고 할까... 이런 것에 엄청 신경을 쎴다는 것을 깨닫고는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대로(요게 키포인트인 듯) 했습니다. 


뭔가 하지 않으면 도태될 것만 같고 죄를 짓는 것 같은 마음도 훌훌 털어벼렸습니다. 시간을 죽이며 지냈습니다. 그래도 괜찮아!! 남들이 뭐라 안 그래, 세상이 어떻게 되지 않아!! 하면서요. 난 이미 많이 이뤘어!!! 이런 자뻑 생각도 하고요. 무엇보다도 J에 대한 죄책감을 털어버리려고 했습니다. 이 정도면 좋은 엄마야!!라고 자꾸 되뇌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도 모르게 잠을 잘 자게 되고 소파에 누워있던 시간이 줄어들고 심장이 나대지 않고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이 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가을 나무와 파란 하늘과 상쾌한 공기... 이런 거 예전엔 느끼지 못했거든요. 


내 안에 갇혀 있던 느낌, 늘 동동거리며 지내느라 다른 것을 볼 겨를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풀에 지쳐서(우울증이 생각보다 에너지 소비가 큽니다. 불안해하고 걱정하고 나를 다그치는데 온 힘을 쓰다 보니.... 그래서 늘 피곤하고 몸이 무거웠던 것 같아요.) 늘어져 있고... 그런 생활의 반복이었습니다.


세상이 반짝반짝하다는 걸 정말 오랜만에 깨달은 느낌.... 아시려나요?


지난 20여 년이 너무 아깝습니다.


내가 만들어놓은 감옥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하고 그 자리를 뱅뱅 돌며 혼자서 지지고 볶느라 많은 것들을 놓친 것 같아서요.


하지만 이제라고 깨닫게 되었으니 다행이지요?


죽고 싶었던 적도 많았습니다. TV에서 모 연예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아... 그 사람은... 이제 편하겠다."라는 생각을 했었으니까요. 


하지만 이제 아닙니다.(물론 간간이 그런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J 사고 칠 때?ㅋㅋ)


세상에는 참 재미나는 게 많더라고요. 지금 다 해보진 못했지만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을 이제서야 하게 됩니다. 여태껏 삶이 꼭 의무 같기만 했어요. 세상이 자꾸만 이래라 저래라 나에게 요구하는 것 같았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 그게 세상이나 남이 하는 말이 아니라 내가 나에게 스스로 하는 말이 었던거예요.


하지만 우울증이 완전히 나았다.라고 말은 하지 못하겠습니다.


우울증을 병이기도 하지만 저에게 있어서는 생각의 틀? 사고의 방향? 같은 겁니다. 어떤 일을 겪으면 자동적으로 나를 자책하고 최악의 상황을 그려보며 절망에 빠져버리는 사고의 편향성? 잘못된 사고?거든요.


40여 년 동안 자동반사적으로 일어나던 사고방식을 쉽게 바꿀 수는 없어요. 그래서 매일매일 연습해봅니다. 물론 "연습해야 해."라며 나를 압박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면 또 우울의 늪에 빠질 수도 있거든요.


세상에는 우울증에 힘들어하는 사람이 참 많은 것 같습니다.


우울증에 힘들어하는 사람은 대부분 착하고 선한 거 같아요. 남한테 싫은 소리 못하고 그 화를 나한테 내는 게 우울증이라고 저는 생각하거든요. ^^ (뭐....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 건 아닙니다.)


그런 착하고 선한 사람들이 힘들어하지 않고 반짝반짝 예쁜 세상에서 룰루랄라 춤추며 즐겁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우울에 벗어나려고 스트레스 받지 말고(이 또한 우울의 이유가 될 수도 있으니까.) 우울한 마음을 살살 달래가며 그 안에 꽁꽁 묶여 살려달라고 외치는 나를 세상 밖으로 꺼내며 그렇게 살아요. 우리.


그렇게 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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