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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과 Aug 16. 2018

아들에게 배우는 삶의 지혜

2018. 03.16

잠자리에 들기 전 아들의 얼굴과 손이 더러워 다시 씻겨줬다. 묻은 것이 잘 지지 않아 오랫동안 닦았더니 입고 있던 내복 목 주변이 물로 조금 젖었다. 갈아입힐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해서 그냥 함께 잠자리에 들었는데 아들이 축축하다고 갈아입겠다고 한다. 일어나서 건넌방에 새 내복을 가지러 가기도 귀찮고 스스로 하는 연습도 시킬 겸해서 아들 보고 가져오라고 했다. 웬일인지 벌떡 일어나서 내복을 가지러 간다.(누워있기 싫어서일 수도)


평소에 심부름을 시키면 제대로 하는 법이 없다. 쏟아버리거나 냉장고 문을 제대로 닫지 않고 오는 등 뒤처리가 깔끔하지 않거나 도중에 화를 내거나 한다. 그래서 잘 가지고 올까 걱정이 많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아들이 상의 내복이 아닌 하의 내복을 들고 오는 게 아닌가? 그것도 막 웃으면서... 순간 짜증이 좀 밀려왔지만 겉으론 우아한 엄마 코스프레를 하며 
"그건 바지잖아... 윗도리가 젖었으니 윗도리를 가져와야지~." 
하니 가져온 내복 바지는 나에게 던지고는 다시 가지러 간다. 다행히 이번에는 맞게 가져온다. 
아들의 젖은 내복을 벗기고 새로 가져온 내복을 입히며 
"가져오려면 제대로 가져와야지. 왜? 옷이 헷갈렸어?"
라고 묻자 아들이 
"엄마 웃어~!!!" 하고는 깔깔깔 웃는다.

자기 잘못을 무마하기 위해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아들의 웃음소리를 듣는데 번쩍하고 깨달음이 왔다. 

첫째, 어떤 사건을 보는 긍정적인 태도
나는 매사 진지한 면이 많다. 농담도 진담으로 받아들이고 심각해지는  타입이랄까? 설사 아들이 덤벙거려 실수로 하의 대신 상의를 가져왔더라도 그게 그렇게 큰 잘못도 아니고 다시 가져오면 되지 않는가? 그런데 나는 아들이 하의를 가져온 순간 옷도 제대로 가져오지 못하는 아들에 대한 짜증 그리고 앞으로도 챙겨줘야 한다는 부담감이라는 부정적인 생각이 쭉 이어서 나왔다. 그런데 그게 재미있다고 웃고 표정이 굳어진 엄마에게 웃으라고 이야기까지 해주는 아들이 나보다 어떤 사건을 보는 시각이 더 건강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둘째, 유머와 웃음
진실은 아들만 알겠지만 돌이켜 보면 아들은 재미로 상의 대신 하의를 가져왔을 수도 있다. 하의를 들고 오면서부터 웃고 있었으니 말이다. 예전엔 나도 친구들을 깔깔 웃게 하는 유머가 있었는데 언젠가부터 입꼬리는 처지고 미간에 주름이 잡힐 정도로 굳은 얼굴이 되어 버렸다. 아들이 "엄마! 웃어!"라는데 그 말이 뭘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냐 웃으며 즐겁게 살자는 말로 들렸다.

누워서 종알거리는 아들을 다시 재우며 이런 생각을 하는데 며칠 전 읽었던 '고마워 우울증' 책 내용이 떠올랐다. 



일반적으로 '성실한 사람이 우울증에 걸린다'라고 합니다. 성실하고 꼼꼼한 사람일수록 우울증에 걸리기 쉽고, 반대로 불성실하고 대충대충인 사람일수록 우울증에 잘 걸리지 않는다.'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우울증 측면에서만 보면(난 불성실한 사람이 옳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들은 결코 우울증엔 걸리지 않을 것 같다. 다행이다.


또 우울증에 걸리기 쉬운 사람은 우울한 상태가 된 것에 대해서도'나에게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내가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가 형편없는 인간이기 때문이다.'라고 자신을 탓합니다. 일상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지 않은 점만 보고 부정적인 것만을 생각합니다. 이래서는 악순환이 될 분입니다. 기분도 점점 가라앉습니다.


비록 실수는 하였어도 웃으면서 다시 바로잡을 수 있는 아들이 나보다 정신적으로 더 건강한 건 아닐까? 그리고 신체적으로 장애가 있는 아들이 내가 제대로 하지 못한다. 형편없는 인간이다... 등으로 자신을 탓하고 가라앉는 성격이 아니라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내가 그런 스타일. 


남편과 나와는 전혀 다른 성격을 가진 아들을 보며 우리 부부는 늘 아들은 누굴 닮았을까?라고 했고 나와는 너무 안 맞아서 키우기가 힘들었는데 어쩌면 나랑 성격이 달라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부정적이거나 위축되지 않고 밝게 자랄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 준 나에게도 칭찬하며 잠이 들었다. 

자. 화. 자. 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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