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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과 Aug 20. 2018

우울의 시작

1999년 10월

무슨 일이든 시작이 있다. 

내 우울의 시작은 언제부터였을까 돌아본다. 1999년 내가 초등학생 때부터 간경화로 편찮으셨던 아빠가 돌아가셨다. 죽음이라는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생생하게 직면했다. 마지막 모습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아빠는 의식이 없는 와중에도 참기 어려운 고통을 느끼시는 것 같았다. 고통으로 얼굴은 일그러지고 이를 바득바득 가셨다. 돌아가시기 한 달 전부터는 대소변도 가리시지 못했다.


아빠의 죽음을 보고 나는 꽤나 충격을 받았다. 사람의 마지막 가는 모습이 이토록 힘들고 어려운 길이구나. 두려웠고 허무했다. 어차피 죽을 거 살아서 뭐하나 하는 질문에 시달렸다. 엄마보다는 아빠를 좋아했던 나는 세상에 내 편이 없어진 느낌이었다. 그런 혼돈과 허무의 시기를 지헤롭게 잘 극복했다면 20년이 지난 지금 난 이런 글을 쓰고 있지 않았을 텐데...


그 당시 내가 겪은 증상은 다음과 같다.

1. 모든 것이 허무하고 심드렁해졌다.

2. 직장에 다니기가 싫었다.

3.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났다.


지금의 나라면 아빠를 잃은 충격을 '술을 먹고 엉엉 우는 것'으로 풀지 않았을 것이다. 당장 상담사를 찾아가 상담을 하고 운동을 하고 나의 슬픔을 공감하고 지지해 줄 사람들을 찾아 이야기를 나눴을 것이다. 신경정신과를 방문할 수는 있었을까?


당시의 나는 그런 방법을 알지 못했다. 모르는 것은 죄가 아니라고 했던가? 그때의 나를 원망하지는 않는다. 다만 너무 아쉽다. 내 20년을 우울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시발점이기 때문이다.


친한 동료들 앞에서 술을 먹고 엉엉 울었다. 아빠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더 잘해드리지 못한 자책도 했다. 그때 그들이 "그래, 너무 힘들지? 속상했겠다." 이렇게 공감해줬다면 내 안으로 움츠러들지 않았을까? 아직도 선명하다. 그들이 나에게 했던 말이...


나도 어머니 돌아가셨어. OO씨보다 훨씬 어릴 때 엄마 돌아가셨어. 그만 울어.


그의 시니컬하고 심드렁한 표정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별일도 아닌 걸로 이렇게 술주정까지 하냐는 듯한 눈빛이었다. 그때 나는 그 울음을 참아 삼킬 것이 아니라 그런 나를 공감해줄 다른 사람을 다시 찾았어야 했다.  그래서 그렇게 울어재끼는 내가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 지극히 정상적인 감정 반응이었음을... 이 세상에 틀린 감정은 없다는 것을 알았어야 했다.


그 후 나는 점점 내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슬픔을 참아 안으로 삼켰다. 우울한 나를 채근했고, 직장에 다니지 않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나를 배부른 투정하는 사람으로 매도했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있는 나를 패기가 없다고 다그쳤다. 


그때가 우울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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