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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과 Aug 20. 2018

신경정신과 내원 직전 나의 상태

안 가고 버티면 사건이 연타로 닥칠지도...

돌이켜 보니 꽤 오랜 전부터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범위를 넘었던 것 같다.


20년간 우울했지만 우울감과 우울증의 경계를 넘나들었다. 그렇게 버티다가 외적인 충격이 연타로 왔고 완전히 우울증의 하강 곡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2006년에 태어난 아들이 장애진단을 받으면서 나의 우울을 내 기본 감정으로 깔려있는 것이었다. 그래도 아들 때문에 정신줄을 붙잡고 있었다.


그러던 중 2014년 둘째를 23주에 조기진통으로 유산을 하면서 첫 번째 큰 타격이 왔다. 몸도 많이 상했지만 나는 결국 건강한 아이는 낳지 못하는 몸뚱이구나 하는 상심과 아이를 하늘나라로 보냈던 그 일련의 과정으로 인해 큰 충격을 받았다.


2016년 과중한 업무와 감정 소모로 한 달도 버티지 못하고 휴직을 내버린 직장동료의 일을 내가 맡게 되었다. 직장일로 낮에도 긴장을 늦추지 못했고 퇴근해서는 아들 때문에 긴장을 풀지 못했다. 그렇게 1년을 보내고 나니 연말 즈음 신체적 증상이 나타났다. 운전을 하고 가는데 가슴이 짓눌리는 느낌이 들었다. 숨을 쉬지 못할 거 같았고 어지러웠다. 그 이후 별 일 아닌데도 심장이 두근두근 하고 모든 일이 버거웠다. 의욕이 떨어져서 어떤 일도 하고 싶지 않았다.

주말이면 집에만 틀어박혀 있었다. 아들도 덩달아 집에만 있게 되었고 하루 종일 집에 있는 아들은 사고 치기 바빴다. 그래도 데리고 나갈 힘이 없었다. 고스란히 아들의 과잉행동을 받아내야 했다. 주중에는 직장 일로 힘들었고 주말이 되면 아들 때문에 힘들었다. 직장 동료들은 연휴를 손꼽아 기다렸지만 나는 빨간 날이 길게 이어져 있으면 한숨부터 나왔다.

직장에서 예전엔 쉽게 처리하던 일도 하기가 버거워졌다. 그냥 빨리 해치워 버리고 싶고 일을 하더라도 잘못하면 어쩌나 하고 불안했다. 그 일이 끝나기 전에는 가슴이 두근두근거렸다. 그래도 그냥 버텼다. 한의원 가서 약도 지어먹고 침도 맞고 하면서 버텼다. 그냥 힘들어서 그런 거다. 버티는 것 밖에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직장상사와의 마찰이 있었다. 아들과도 상관이 있는 일이었다. 그 사건은 울고 싶은 사람 뺨을 제대로 날려주는 역할을 했다. 나는 이 사건을 계기로 내가 많이 힘들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예전 같으면 좋게 좋게 생각하고 넘어갔을 테고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합리적인인 해결 방법을 찾았을 텐데 그렇게 되지가 않았다. 심장은 요동치고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극단적인 생각만 났다. 다 그만두고 싶었다. 불안하고 마음이 진정이 되지 않았다. 이성적인 생각과 행동이 되지 않는 나를 느끼며 이제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저되었다. 신경정신과라니.... 그런 곳에 가도 되는 것일까? 나중에 불이익은 없을까? 인터넷으로 '정신과 불이익' 이렇게 쳐보기도 했다. 하루 꼬박 고민을 하다가 결심했다. 신경정신과에 가보기로. 당장 예약을 했다. 설 연휴가 끼여있어 며칠 뒤로 예약 날짜가 잡혔다.

예약일은 2018년 2월 20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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