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과 Sep 16. 2018

우울하면서도 우울증이라
생각하지 못하는 당신에게

인정하는 것이 치료의 시작

#1.

오늘 우울하다. 격렬하게 우울하다. 

내가 하기 싫은 일을 하고 있지 않아서 우울한 거야. 내 적성에 맞는 일을 찾았어야 했어. 그러지 못한 내가 너무 한스럽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못하고 해야 하는 일 투성이야. 해야 하는 일만 하는 나는 너무 불행해. 장애가 있는 아들을 돌보는 것은 너무 버거워. 죄다 내가 다 해줘야 하잖다. 영원히 의무로 둘러싸인 이 곳에서 살아야 하는 이유가 뭐지? 


#2.

오늘 우울하다. 격렬하게 우울하다. 

아침 약도 빠뜨리지 않고 먹었는데 왜 이렇게 우울한 거지? 선 생닝게 게 전화를 할까? 약을 좀 증량해야 하나? 오늘은 우울증이 심하구나. 그래. 청소도 좀 미루고 아들 치료도 땡땡이치고 누워있자!! (반나절 누워있다가) 너무 누워있으면 처질 거야. 운동하면 좋은데 운동은 싫고 책 들고 카페라도 가자!!!




두 경우의 차이점을 알겠는가?


최근에야 내가 우울증이라는 것을 인정했다.  20년을 우울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올해 2월 처음으로 신경정신과에 가서 진단을 받고 약을 먹기 시작했다. 우울증과 불안으로 2달 병가까지 냈다. 그런 내가 2월에 우울증임을 인정한 것이 아니라 불과 보름 전에야 내가 우울증임을 인정했다. 놀랍지 않은가?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흔히들 우울증을 마음의 감기로 비유를 하니까 감기에 빗대어 설명해보겠다.  감기는 바이러스 때문에 걸린다. 나는 이제껏 바이러스 탓만 했다. 적성에 맞지 않는 직장, 장애가 있는 아들 때문에 내가 우울하다고 생각했다. 내 면역력에는 주목하지 않았다. 같은 환경에 있더라도 감기에 걸리는 사람도 있고 걸리지 않는 사람도 있다. 증상도 각기 다르다. 나는 우울증에 취약한 사람이었고 우. 울. 증에 걸린 것이다. 


내 면역력을 높일 생각은 하지 않고 그렇게 바이러스란 놈을 탓하며 당하고만 있었다. 더군다나 적절한 해결책도 쓰지 않았다. 우울함은 몸과 마음이 지쳤다는 신호다. 쉬어야 한다. 아들 걱정도 그만두고 집안일도 신경 끄고 모든 스위치를 꺼야 한다. 그리고 쉬어야 한다. 그걸 이제야 느꼈다. 


나는 할 수 있다 류는 안된다. 우울증이 아닌 사람들은 잠시 겪는 우울감을 스스로 극복할 수 있겠겠지. 하지만 나는 우울증이다. 감기에 걸렸으면 감기약부터 먹어야지 몸에 좋다고 녹용을 먹으면 안 된다. 우울증이면 우울증 치료를 해야지 심리학 책을 읽고 자기 계발서를 읽는다고 의욕이 생기는 것은 아니란 말이다. 물론 저절로 낫는 사람도 있지만 폐렴에 걸리거나 한 달 내내 감기를 달고 살 수도 있다. 


운동이 천연 항우울제란다. 그런데 하기 싫다. 이제는 하기 싫어하는 나를 자책하지는 않겠다. 나는 우울증이잖아!!! 병에 걸린 사람을 다 그지 커나 책망하면 안 된다. 돌보아 줘야 한다. 적어도 나는 나를 몰아세우지 말자. 그러자. 나까지 그러면 내가 너무 슬퍼서 자살할지도 몰라. 


우울증은 마취제 같다. 세상에 무디고 나에게 무디게 하는 우울증. 또는 항히스타민제 약 같다. 먹으면 노곤 노곤해지고 잠에 빠져들게 하는 그 약을 먹었을 때처럼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다. 거기서 빠져나오기 싫었을 때도 있었다. 세상이 힘들고 나를 직면하기 어려울 때 그랬던 것 같다. 


 더 이상 나는 평범을 넘어선 뭔가를 찾는 그럴듯한 사람이 아니다. 나는 그보다 못한... 평범보다 못한 우울증 환자다. 우울증 환자라고 인정하고 나니 이리도 홀가분하고 편할 수가 없다. 그리고 치료를 위한 방법이 보이기 시작했다.


작가의 이전글 행복 연습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