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과 Aug 31. 2018

무제(8)

이름도 없는 너에게

분만실 안에 있는 작은 분만실로 들어갔다. 힘을 주라고 했다 


아직도 그 느낌을 잊을 수 없다. 아이가 나오는데 축 늘어져서 나오는 게 느껴졌다. 조그마한 머리가 나오고 몸통은 힘이 하나도 없었다. 당연히 울음소리 같은 건 들리지 않았다. 

의료진들끼리 하는 말이 얼핏 들린다. 남자아이라고 하는 것 같았다. 나에게 보여주지 않았다.
 
저녁 5~6시쯤 무렵이었다.

후처리를 했다. 아파서 비명소리가 나왔다. 내 뱃속에서 나온 아이는 엄마 품에 안겨보지도 못하고 떠났다. 그런 아이를 낳은 어미는 아프다고 신음소리가 나오다니...
 
아이는 어떻게 되냐고 묻지 못했다. 그들도 나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간호사들이 서둘러 아이를 수습하고 데리고 나가는 듯했다. 
그때의 감정이 무엇이었을까... 더듬어본다.
두려움, 죄책감, 외면, 부끄러움 등이었던 것 같다. 
 
원래 내가 누워있던 침대는 이미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고 내가 벗어둔 옷가지와 소지품은 비닐봉지에 담겨있었다. 나는 더 이상 산모가 아니었으니 분만장 침대 자리는 다른 위급 산모를 위해 내어주어야 하는 것이다.
 
바퀴 달린 좁디좁은 침대에 누워 있는 나에게 일반 병실로 옮겨야 하는데 1인실 밖에 자리가 없다고 했다. 
나는 1인실로 가지 않겠다고 했다. 돈을 아끼려는 게 아니었다. 아이를 하늘로 보낸 어미, 아이 한번 쳐다보지도 안아주지도 않고 보낸 어미가 뭘 잘했다고  1인실 병실에 떡하니 누워있느냐 말이다. 분만장에 있겠다고 했다. 그럼 침대를 내어줄 수 없으니 간이침대에 누워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겠다고 했다. 그들은 내 침대를 끌어다가 분만장 입구 벽에다 붙여두었다. 수많은 의료진과 때마다 들어오는 면회객이 드나는 길목 위치였다.  드나들 때마다 웬 여자가 여기 누워있지라는 표정으로 내 자리를 쳐다본다. 모로 누워 잔뜩 웅크리고 있었다. 
 
면회 온 남편에게 간호사는 장례를 직접 할지 병원에 맡길지 택하라고 했다. 남편은 병원에 맡기겠다고 했단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병원에서 그냥 둘둘 말아 화장시켜버린 건 아닐까? 관도 준비하고 예쁜 옷이라도 입혀서 한번 안아주고 함께 화장터로 가서 화장하는 걸 봐야 했었다.
나도 남편도 두려웠거나 그만 모든 것을 빨리 잊어버리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다음 날 늦은 오전까지 분만장 입구 간이침대에 누워있었다. 친정엄마가 오셨다. 퇴원 수속을 밟고 친정으로 향했다.
 
나는 분만장에 들어갔다가 나오면서 한 번도 아이를 안고 나가보질 못했다. 아들도 낳자마자 입원했기 때문에 친정 엄마와 함께 퇴원했다. 이번에도 엄마와 나 둘 뿐이었다.
 
전날 밤부터 다음 날 오전까지 아이를 한번 보여달라고 할까 계속 생각했지만 용기가 나질 않았다. 매정해져야겠다는 생각도 한 것 같다. 보고 나면 평생 못 잊을 것 같아서 아예 보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나 보다.
 
그렇게 매정한 엄마는 제 뱃속으로 낳은 아이를 병원에 두고 작별 인사도 나누지 않고 떠나버렸다.
 
그럴듯하게 괜찮은 사람인 척 살아가던 한 적나라하게 까발려진 추한 인성과 잔인함에 나에 대한 믿음이 없어져 버렸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중요하지 않다. 살아가는 원동력은 내가 생각하는 나에서 나온다. 
나 자신에 대한 실망감에 그 어떤 것도 계획하고 실행할 수 없었다. 울다가도 잠시 뒤  tv를 보며 희미하게 웃는 나에게 놀랐다. 다중인격자인가?
 
그날 이후 내 삶엔 빛이 꺼졌다.                                                  

작가의 이전글 그냥 버텨야 할 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