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의 모순/31회/혼자가 아니야

by 모순

부엌 싱크대 앞 작은 창문을 통해

아이 학교 가는 모습을 지켜본다.

빠른 직선 대신

천천히 꼬불꼬불 걸어가는

아이 뒷모습에 웃음이 난다.


1학년 2학기가 되자

내가 학교에 아이를 데려다주는 날보다

아이 혼자 등하교 하는 날이 많아졌다.


월요일 아침

가족들이 밖으로 나가고

혼자 남아 좋아하는 라디오 오프닝을 들었다.

이 시간, 이 공간이 왜 이렇게 좋지?

생각해보니

오랜만이였다.


추석 연휴, 아이 학교 재량 휴일과

생일 여행, 남편 한라산 여행이

이어져 혼자 낮 시간을 갖기 어려웠다.


어느새 커서 엄마보다 친구를

더 좋아하는 아이를 혼자 보는 일이

쉬워졌다 생각했는데

일요일 막바지에 폭발했다.


책장에서 다급히

책을 꺼냈다.

오늘도 난 아이 앞에서 미친년이 됐다.

이 챕터가 여기 있었는데 하면서


자꾸만 화가 나고 한없이 처지고 불안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나의 전부가 아니다. 자신이 좀 더 다정하고 느긋하고 더 좋은 사람이라고 느낄 수 있는 위치로 나의 몸을 이동시키자. 그런 경험이 누적될 때, 그 총량이 늘어날 때, 비로소 나를 긍정할 수 있게 된다. p198
신나리 페미니즘 에세이/여자, 아내, 엄마/지금 트러블을 일으키다


수평 자세로 누워

책 속 문장에 기대며

숨을 고른다.


나만 아이 앞에서 미친년이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이 나에게 안정을 주는 걸까?

나의 어떤 점이 보편성을 갖는다는 것을

알게 될 때 덜 불안해진다.

자책도 좀 줄어든다.


사람은 다 다른데

두루 다 통하는 게 어딨어?

이런 생각도 했지만

혼자만 이런 게 아니라는

누군가와 연결될 때

살맛이 난다.


보편 普遍
1.모든 것에 두루 미치거나 . 또는 그런 것.
2.철학 개별적인 사물과는 달리 ‘책상’, ‘사람’, ‘아름다움’과 같은 일반적인 명사에 의하여 지칭되는 대상.
3.철학 우주나 존재의 전체에 관계됨. 또는 그런 것.

표준국어대사전


사전의 3번째 해석이 마음에 든다.

존재의 전체에 관계됨.

그래 나는 혼자가 아니야.

혼자이기 좋아하는 건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이지


나는 약하면서 강한

사람이니까

으흐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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