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이 년 후 내가 알게 된 것

당연하지 않은 시간

by 모순


일 년 전 퇴사 일 년 후

내가 알게 된 것에 대해 글을 썼었다.

퇴사 일 년 후 알게 된 내용이

아직 나에게 유효하다.


일 년 전 글에서 나는

회사는 일상에서 내가 느끼는

불만족의 핑계가 되었고

그 방패막이 사라진 지금

내 몸으로 견뎌 나가야 할 것들이

보인다고 썼었다.


시간을 마음대로 쓰는 자유를 맛본 뒤

관심이 창조로 향한다고 남겼네.

스스로 자본을 창조하고

불리고 나누는 순환을 만들 수 있다고

믿고 가보겠다는 다짐도 여전하다.


회사를 나온 지 이제 만 2년이 지났고

퇴사 이 년 후 내가 알게 된 것이

있을까 생각해 보고 싶어졌다.


회사 생각은 평소에 잘 안한다.

생각날 때가 가끔 있는데 돈 쓸 때다.

일하면서 앉는 의자를 바꿔야 할 때

차를 다 마셔서 사야 할 때 회사 생각이 난다.


막상 내가 사려고 하니 당연하게도 비용이 든다.

월급 외에도 회사에서

공기처럼 누리고 있었던 것을

회사 밖을 나와 알게 되었다.


지금, 내가 누리는 것은 시간이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나에게 맞는 일상의 리듬을 만들기 위해

지난 2년간 노력해왔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나에게 도움이 되었던 방법은

매일 아침 라디오 듣기와 산책이다.

광고 없이 클래식 음악이 나오는

KBS 클래식 FM을 매일 아침 듣는다.

누군가 매일 정성껏 쓴

오프닝 멘트에서 계절의 변화를 듣는다.


시간이 많아진 만큼

발걸음을 멈춰 꽃향기를 맡으면서

산책한다.

꽃이 피는 시기와 꽃의 이름을

예전보다 많이 알게 되었다.


산서고등학교 관사 앞에 매화꽃 핀 다음에는
산서주조장 돌담에 기대어 산수유꽃 피고
산서중학교 뒷산에 조팝나무꽃 핀 다음에는
산서우체국 뒤뜰에서는 목련꽃 피고
산서초등학교 울타리 너머 개나리꽃 핀 다음에는
산서정류소 가는 길가에 자주제비꽃 피고

안도현, 3월에서 4월 사이


물 흐르는 소리

새 지저귐도

가만히 자주 듣는다.

그것이 기쁘다.


무언가를 듣거나, 보거나 할 때

더 느끼고 알고 싶어졌다.

감각이 열리는 순간이 늘었다.


소리와 공간에 민감한

나에게 혼자 일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도 잘 알게 되었다.


집에서 가장 큰 창이 있는

거실 식탁에서 일하는 것이

아직 만족스럽다.


동시에 함께의

힘을 알고 있기에

고마운 소속감을 주는

모임을 만들거나 찾아 정착하기도 했다.


지난 2년은

일에 대한 창조성과 주체성을

되찾는 시간이었구나.

글을 쓰며 정리해 보니

지금 내가 보내는 시간과

감정, 경험이 당연하지 않게 느껴진다.

조급할 필요 없데이.


집중하고 귀 기울이는 것. 외부 세계에서 연결 고리와 관계를 찾는 것. 아름다움을 찾는 것. 이야기를 찾는 것. 가까이 몸을 숙이게 만드는 흥미로운 무언가를 알아차리는 것.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다음 작업에서 사용할 수 있으며, 그때 원료가 형태를 갖추어 나타나리라는 것을 아는 것이다.

창조적 행위: 존재의 방식 , 릭루빈 지음, 정지현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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