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의 모순/9회/마흔의 봄

by 모순


지난 주 수요일은 아침부터 비가 왔다.

노란 비옷을 입은 아이를 학교로 보내고

집에 들어와 라디오 어플을 켜고

KBS 클래식 FM을 맞춘다.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오는

<김미숙의 가정음악>을 들으며

침대 위 이불을 개고 아이 방문을 닫고 나온다.

필라테스 수업을 듣는 날이다.


우산을 쓰고 천천히 학원으로 향했다.

걸음을 멈추고 비 머금은 꽃도 본다.

시간에 쫓기지 않고

내가 원하는 속도로 걷고

풍경을 보기 위해 멈추는 순간

부자가 된 기분이 든다.


회사에 다닐 때

수요일은 일주일이라는 능선에서

가장 험준한 고개로 느껴졌다.

비 오는 날은 특히 더했다.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비에 젖은 신발로 광역 버스에 올라탈 때면

고단함이 창문의 김처럼 서렸다.

하염없이 길은 막히고

예정된 지각 앞에서 가슴도 답답했다.


지난 비 오는 수요일의 기억이 떠올라

선생님과 함께 내 몸에 집중하는

이 순간이 더 소중하고 감사하게 느껴졌다.

이번 주에도 어깨에 힘을 빼는 대신

턱을 내밀고 많이 헤맸지만

내 몸을 알아가는 것이 기쁘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제일 친절해요.

나를 보고 항상 웃고 화내지 않아요."


아이는 ( ) 베스트를 뽑는 것을 좋아한다.

좋아하는 음식 베스트 파이브

좋아하는 장소 베스트 파이브

준이 베스트 파이브 시상식

친절한 사람 분야 1, 2위에

뽑힌 사람이 나의 부모님이었다.


아이의 말을 듣고 생각해보니

나의 엄마, 아빠는

손주인 준이에게 항상 따뜻하다.

부모와는 다른 역할, 다른 사랑의 경지인 걸까?

양가 조부모님과

시간을 오래 보낸 준이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좋아한다.

얼마전에는 아파트 경로당에 들어가서

놀고 오기도 했다.


"할머니가 더 나이 들어 보이는 할머니한테

언니라고 부른다요?"


아이 눈에는 그 모습이 신기했나 보다.

나도 할머니가 되어서도

언니하고 부르며 놀 수 있는

사람들이 곁에 있으면 좋겠다.





"아이고 예뻐라."


자전거 타기

꽃구경

4월, 지금 취할 수 있는 기쁨이다.

겹벚나무 꽃을 보고 있는데

처음 보는 언니들이 너무 예쁘죠? 하고 말을 건다.


좋은 것을 온 마음으로 느끼고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내 앞에 펼쳐진 중년 언니의 시간이 좋다.

하고 싶은 공부와 일을 하는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