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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un mu Mar 19. 2023

쉬운 게 아니란다, 세진아!

누나 둘 아래 늦둥이 남동생 






1남 2녀 중 막내.

큰 누나와 15살 차이.

작은 누나와 12살 차이로 띠동갑.

'아들'만을 낳기 위함은 아니었지만 늦게 생긴 아이, 이왕이면 딸이 둘이나 있으니 아들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 아이.

태명은 '전진'.

뱃속부터 화제의 아이였기에 앞으로만 나아가라는 의미로 동네 아주머니들이 지어주신 이름. '박전진'.

그렇게 더위에 찌들어 중복이 지난 99년 7월 22일.

더위를 식히듯 비가 주룩주룩 오던 날 많은 이들의 축복과 축하 속에 건강하게 태어났다.

진짜 예정일을 앞두고 갑자기 양수가 터져서 오늘 꼭 나오겠다고 외치는 것처럼.

그 아이는 전진이가 아니라 세진이가 되었다.

이름을 지을 때 정말 고민을 많이 했는데 정말 전진이가 될 수도 있었다.

엄마가 다니는 절의 스님께서 지어주신 이름. 세진.


당시에 늦둥이 동생을 보는 친구들도 신기하게 몇 있었지만 그때와 지금의 세월이 다름을 느끼는 건 39살이었던 우리 엄마가 노산이라며 처음부터 제왕절개 권유를 받았다는 것이다.

나도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았고 제왕절개를 해서 엄마와 나란히 앉아 그 고통에 대해 얘기를 나누기도 했다.

엄마와 딸이 아닌 같이 출산을 해본 그것도 제왕절개란 공통점을 갖고 그 아픔을 아는 이의 만남처럼 수다를 떨었던 순간을 그려보면 같이 나이를 먹어가는 것도 느껴진다.

요즘 결혼을 하는 이들의 평균 연령과 그만큼 초산 연령도 높아지는데 당시 세 번째 출산임에도 30대 후반이라는 이유로 39세에 엄청난 노산 취급이었다.

아직 39살이면 쌩쌩한데 그땐 또 그랬다.


여동생도 있으니 남동생도 있으면 좋겠다 싶었던 큰 누나인 나는 이 아이가 참 예뻤다.

언니도 되고 누나도 되어서 좋았다.

12년간 막내로 귀여움 받던 여동생은 갑자기 누나가 되면서 막내 자리를 넘기고 나니 억울한가 보다.

누군가 그랬다. 가운데 껴 있는 둘째들은 늘 억울하다고 말이다.

동생 말론 정말 그렇단다. 억울하단다. 

그래도 남동생과 제일 이야기 많이 하고 연락을 자주 하는 건 여동생이다.

동생이 어릴 적 이뻐하긴 했지만 일찍 결혼을 하고 타지에 나와 사는 누나라 동생이 자라면서 함께 하지 못한 것도 참 많은데 작은 누나가 그걸 채워 주었을 것이다.

늦둥이라 이뻤지만 한편으론 우리가 터울 없이 자랐으면 박 터지게 싸웠어도 혼자 노는 일을 덜했을 텐데 싶은 마음에 짠하기도 하다.


그 나이대 남자아이 치고 애교도 많고 다정다감 하지만 고집도 있어서 어릴 때 동네 이장 아저씨가 그러셨단다.

"나한테 기죽지 않고 덤비는 아이는 너밖에 없었어!"

우락부락한 인상의 아저씨라 보통 아이라면 울고 기죽을 법도 한데 남동생은 쉽게 꺾이지 않던 탓에 아저씨가 웃으며 저렇게 얘기하셨단다.

지금은 바르게 잘 컸는데 한때 엄마가 "내가 왜 늦게 아이를 낳아서 이 고생인가" 했다고 했을 때 이해도 되었다. 

아직도 어린 시절의 남동생 얘기 들으면 세상 제일 꼴통이었던 것 같다.

그래도 '지랄 총량의 법칙'이 있는지 그러셨다. 내가 아이로 인해 힘들 때 '저런 애들'이 나중에 다 잘할 거라고 말이다. 가끔 지랄 총량의 법칙을 믿고 싶다. 믿는다. 



이런 남동생이 자기는 무엇을 해 나가야 하는지 고민 중인 것 같다.

제2의 사춘기를 겪고 있는 지금 지랄 총량의 법칙 당사자인 만큼 잘하리라 믿는다.

그러면서 며칠 전,

가족 단톡방에 통영으로 여행 간 엄마와 아빠에게 보내는 내용이 떴다.

'지침'을 표현하는 이모티콘을 넣고서는 [탄이와 아롱이 밥도 주고 물도 갈아 주었어요.] 하면서 말이다

우리 집에 있는 강아지들의 밥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작은 누나는 우쭈쭈 하지만 큰 누나는 그게 안되나 보다.

[누구 밥 챙기는 게 쉬운 게 아니란다, 세진아!!!] 하고 마치 더글로리 동은이가 연진아, 혜정아, 사라야 하고 부르듯이 그게 쉬운 건 줄 알았니 하는 느낌으로 적어 전송을 해버렸다.

진심이었다. 

엄마아빠가 챙겨주는 네 밥그릇 감사히 생각하란 마음도 있었다.


 

누나 둘, 그것도 나이 차이 많이 나는 누나 들 밑에서 크면서 혹독하게 자랐다고 본인은 얘기한다.

"누나, 기억 안 나? 나 어릴 때 소변을 변기에 실수한 거 누나들이 나한테 다시 한번 또 그러면 고추 잘라버린다고 난리 쳐서 나 정말 싹 고쳤어. 다 닦고 나와" 했다.

난 기억 안 난다. 여동생도 기억 안 난단다.

그걸 기억 못 하냐고 어이없어하던 동생인데 이해도 된다. 누나들은 그랬을 것이다.

기억은 없지만 공포였다면 미안하다. 

 

그래도 우리 집 막내야.

네 덕분에 웃고 떠든 날이 참 많다.

어릴 땐 마치 내 자식같이 이뻤다. 지금도 키도 크고 목소리도 굵고 수염도 있어서 걸걸한 남자지만 그래도 내 눈엔 여전히 어리고 귀엽다.

앞으로 고민도 걱정도 힘들일도 많은 네 앞날이지만 그만큼 밝은 날도 많을 거란 걸 차근히 알아가길 바란다.

그리고 무엇보다 [누구 밥 챙기는 게 쉬운 게 아니란다, 세진아!!!] 엄아 아빠가 차려주는 밥 제일 맛있게 먹어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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