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오십 Mar 22. 2024

가족관계에서 손해보는 것 같을 때.

Shake it off - Taylor Swift

나는 왜 손해 보는 인생을 사는 것 같지.

라는 생각에 며칠간 기분도 안 좋았다.


*


나는 키우기 편한, 순한 기질의 아이였다.

언니는 독립적이고 좋고 싫은 게 뚜렷한 아이였다.


*


화도 ‘갑’이 낼 수 있는 거다. 화낼 수 있는 건 관계가 끊어지지 않으리라는 확신, 권력이 있어서 화낼 수 있는 거다. 그래서 상대에게 쉽게 화내는 건 오만한 태도다.

그래서 나는 툭하면 나에게 화내는 언니가 참 미웠더랬다.



언니는 마음에 안 드는 게 있으면 부모가, 혹은 상대방이 불편함을 느낄지언정 자신의 감정, 원하는 걸 말하는 편이었다. 표현방식이 투박했다 뿐이지, 자신에게 필요한 걸 알고 이야기할 수 있는 건 참 좋은 특징이었다. 때론 상대방에게 넌 너무 이기적이야, 혹은 공격적이야,라고 이야기 들을 수 있고 주변의 관계가 우호적이진 않겠지만 말이다.


나는 관계에 초점을 많이 맞췄다. 상대방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생각하고 말하고, 상대가 불편함을 느낄 것 같다면 내가 싫어도 내가 참았다. 사람들은 그래서 나를 좋아했다. 뭘 해도 ‘겉’으로는 수용해 주는 것이라고 느끼기 때문에 더 편하게 느끼고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도 많았다.


*


언니는 필요한 게 있으면 요구하고, 설득해서 가졌다.


너, 이거 안 쓰지? 나 주라.

너 이거 안 쓰잖아. 나 줘.

나 이 게임하고 싶은데 우리 같이 할래? 대신 돈 반반 내자.

솔직히 너보다 내가 더 잘할 것 같은데…


*


언니는 내가 언니와의 관계를 많이 신경 쓴다는 걸 아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정말 주기 싫은 것에 대해 거절하면 언니는 ‘아.. 그것도 못 주냐.’ 혹은 ‘나 주지.. 다시 한번 생각해 봐.’라고 말하며 실망감 가득한 얼굴로 다음 기회를 다시 잡았다. 그런데 그럴수록 나는 언니가 싫어졌다.


왜, 자꾸 달라고 하지. 나도 용돈 모아서 산 건데.


*


언니는 제 뜻대로 안 되면 상대방이 보는 앞에서 성을 내기도 했다. 나는 그리고 언니가 화내는 게 두려웠다.


*


부모님도 언니가 화내는 상황에 대해 스트레스가 컸다. 인상을 찌푸리며 강한 어조로, 크게 다다다닥 쏘아붙이는 그런 상황이면 누구나 스트레스받을 것 같다.


그래서 우리 집은 대부분 언니에게 맞춰주며 생활했다. 자기주장이 강한 데다가 다른 사람의 주장을 그대로 수용하는 법이 없었다.

더 나은 방안을 찾기 위해 그런 거라고는 하지만, 가끔 점심식사 메뉴 고르는 것마저 그렇게 쉽게 흘러가지 않으니 힘들었다. 언니만 괜찮다고 하면 상황 종료다.


*


그래도 언니가 있어서 장점은 그렇게 까다로운 만큼 크게 실패하는 선택을 해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얼마 전에는 내가 부모님, 언니에게 크게 화를 냈다.


나는 성장기 내내 누군가에게 소리 질러본 적이 없다.

언니가 아무래도 가족들에게 쉽게 소리 지르는 성장기를 보내서 그게 얼마나 주변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일인지 잘 알았기 때문에 화가 나도 그냥 참았다. 내가 손해 봐도 참았다. 나만 참는 것도 아니고, 사람들 다 어느 정도 손해 보면서 살아가니까.


그런데 가끔 언니를 보면 왈칵, 화가 치밀 때가 있다.

하나도 손해보지 않으려고 하는, 그런 태도. 금전적으로나, 관계에서나. 언니를 보면 그리 유쾌한 기분이 들지 않았다.


*


그래서 왜 부모님과 언니에게 화를 냈나,…


엄마는 언니에게 연민이 있는 것 같다. 청소년기에 아빠와 대판 싸우면서 혼자 방에 들어가서 우는 언니가 많이 짠했고, 그럼에도 잘 성장한 게 기특한지 주말에 언니가 오면 매번 밥을 잘 차려준다. 언니가 먹고 싶어 하는 음식을 차려준다.


엄마는 나를 편한 딸로 인식하는 것 같다. 자라오면서 말썽하나 안 피우고 늘 정서적으로 안정되어(보이는) 있는 나를 좀 더 대하기 편해했다. 언니에게는 안 시키는 일도 나에겐 시켰다. 내가 화를 내지 않을 걸 알아서, 혹은 내가 엄마를 좋아하니까 엄마를 위해 자발적으로 하던 일이 익숙해져서인지…


내가 화를 냈던 그날도 엄마는 날 서운하게 했다.


*


그날은 아빠 환갑이었다.


집에서 친척 어르신들과 밥 먹는 자리를 가졌는데, 엄마와 내가 상 차리는 걸 같이 했다. 잡채, 나물반찬, 깍두기, 배추김치, 장아찌는 반찬가게에서 사 왔기 때문에 덜어서 두면 됐고, 삶은 주꾸미와 백합탕을 만드는 게 목표였다.


그 전날 밤부터 엄마와 아빠는 집안의 접시를 다 꺼내서 닦고 난리도 아니었다. 수저 젓가락을 새로 구입하고, 필요한 식재료도 미리 주문해 두고, 구워 먹을 고기도 사두고…

파절이도 무쳐놓고, 대파도 썰고, 고추도 썰고, 상추를 다듬어서 준비하고, 주꾸미를 깨끗하게 씻어내는 등의 일을 하는데 엄마가 정말 여유 없어 보였다.


*


엄마는 사업가라면 사업 가고, 디자이너라면 디자이너고, 커리어우먼이라면 커리어우먼이다.


엄마는 말 그대로 나에게 ‘시켰다’.

이거, 이거, 이것 좀 해줘.


즐거우려고 하는 건데 엄마는 정말 진지하고 초조하게 준비했다.

나는 그런 엄마를 보면 여유 없는 ‘나’를 보는 것 같아서 기분이 나빴다. 고생하는 엄마가 안쓰러운 건 덤이었다. 무거운 감정의 연속.

고맙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었는데 엄마는 영혼 없이 바쁘게 모든 일을 준비하느라 주꾸미가 예쁘게 만들어졌는지가 더 중요했다.


*


엄마는 정서적으로 나에게 덜 관심을 줬다.

언니가 더 예민해서 언니에게 관심을 더 주느라, 나의 성장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표면적으로는 긍정적인 상호작용이 많았다.

그렇지만 내가 가진 진심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지지 못했다. 앞서 말했듯이 집안을 굴러가게 하느라 바쁘기도 하고, 겉으로는 내가 알아서 ‘잘’ 자라고 있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사실 나는 엄마와의 소통에서 포기한 적이 많았다. 엄마가 바쁘니까, 엄마가 일을 해야 하니까, 언니가 더 예민하니까….


나도 잘한 건 없다. 배려라고 내가 싫거나 별로여도 그냥 다 고개 끄덕이며 맞춰줬으니 말이다.


엄마는 날 기분 좋게 하는 법을 모른다. 엄마뿐만 아니라 아빠도, 언니도. 되려 나를 기분 상하게 하는 일도 많은데 그것도 잘 모른다.

어쩌면 내가 더 예민해진 걸 수도 있다. 그런데 단지 그 이 유라기엔 너무 분노가 꾹꾹 눌러온 것처럼, 깊고 진했다.



긴 이야기였는데, 요약하자면 가족들이 ‘나’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는 게, 날 불편하게 하는데에 도가 텄다는 게 속상했다. 가족들이 나를 소홀히 대해도 되도록 내가 스스로 낮춰온 게 너무나도 싫어졌다.


*


지금 우리 집은 화목하다. 위기는 늘 있지만 그럼에도 잘 돌아갔다. 엄마도, 아빠도, 언니도… 나만 상황이 불안해 보일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 가족은 지지대가 되어주기도 한다. 아무리 내가 서운한 점을 앞서 이야기했지만, 내가 갈 곳이 없어서 온 곳은 집이었다.


*


그렇다고 내가 느낀 불편함에 대해서 무시할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가족들은 나를 막 대하니까. 내 의견을 물은 적은 허다하고(집안 막내라서 그럴 수 있긴 하다.), 자기들 필요할 때만 나를 갖다 쓴다.


그래서 나는 화가 났고, 며칠 째 그 생각 때문에 기분이 안 좋았다. 전화로 내 불만을 엄마아빠에게 말한 뒤로 부모님과의 관계도 꽤 안 불편해졌다. 물론 그럼에도 부모님은 굉장히 좋으신 분들이라 나에게 잘해주려고 하신다.


*


역시 가족 문제는 어렵다.


내가 이상한 걸지도 모른다.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


그런데 한 번 내가 가진 감정에 대해서 의구심을 갖기 시작하면 내가 왜 화가 났는지 잊을 수 있긴 하지만 상황이 변하지는 않는다.

나는 똑같은 상황에서 똑같이 불편함을 느낄 것이고, 또 나는 스스로 의심하면서 혼자 괜찮아지길 반복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다르게 행동했다. 과거에는 그럴 수도 있지, 진심이 그게 아니면 괜찮아,. 에서 상대방이 불편하더라도 내가 불편한 건 말하기로 바꿨다.


*


부모님은 늘 나에게 고마워하셨다. 투덜대는 언니에게 똑같이 화내지 않아서 고맙다고.

그런데 나는 고마움을 받을 큰 그릇이 아니었다. 나는 그 스트레스가 누적되었다고 느꼈고, 가끔 참을성이 임계치를 넘을락, 말락 한다.


그때 내게 왜 그렇게 했어.


그렇게 나는 말하고 싶지만 다들 그리 크게 기억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다들 삶에서 더 다양한 사건들을 사회에서 경험하느라 가정일은 사소한 사건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까먹은 사람에게 화를 내어 무엇하나, 그런 생각과 동시에 그냥… 그래도 감사해 보기로 한다.


그래도 가족이 있어서 감사하다.

나를 속상하게 할 가족이 있어서 감사하다.

내 마음을 몰라준다고 생각할 가족이 있어서 감사하다.


이제 화는 좀 풀고 털어내 버리기로… 그래도 한참 쌓인 게 있어서 불쑥 화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생각보다 화를 내니까 시원한 맛이 있었다. 물론 관계에는 좋지 않겠지만….







이전 14화 심즈에서 철학까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