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e out and play - Billie Eilish
알아차림이라는 용어를 아시는지요.
저는 알아차림을 심리상담센터에서 처음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후에 요가를 배우고 그 단어를 수도 없이 들었습니다.
"숨을 깊게 들이쉬고, 내쉬고 다시, 들이쉬고, 내쉬고... 내 숨을 알아차립니다. 오늘 하루 동안 회사에서, 또는 학교에서 어떤 이유로 화가 났는지, 긴장했는지, 기뻤는지 생각하지 말고 호흡에 집중합니다. 공기가 폐로 들어가고, 아침부터 분주하게 살아오느라 몰랐던 내 숨에 집중합니다."
"짧아져있던 숨을 고르고, 길게, 깊게 들이쉬고 내쉽니다. 근육도 짧아져있던 숨에 맞춰져 긴장되어 있을지도 몰라요. 우리는 숨에 집중하면서 점점 아래로 내려갈 거예요."
엉덩이를 바닥에 깊게 뿌리내리고 무릎을 쭉 편 채로 좌굴자세로 이어갑니다. 내려가는 자세에 몰입해서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다 보면 숨이 어느새 멎어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럴 땐 알아차리고 다시 숨을 길게 들이쉬고 내쉬는 것에 집중합니다. 모든 동작들의 수행보다 중요한 것은 숨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것입니다.
한 시간 반 가량의 요가수업을 마치면 따뜻한 차를 한 잔 마시곤 했습니다. 딱딱했던 온몸의 근육이 풀어져서 나른한 돌문어가 된 것 같습니다. 흐늘흐늘, 요가원 계단을 내려가 차가운 바깥공기를 마시면 오늘도 이만하면 잘 살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
저는 이따금씩 제 숨을 확인합니다.
숨이 너무 짧아져있지 않은지, 무얼 걱정하고 있는 건지, 불안한가?
갈비뼈 사이사이에도 근육이 있다는 걸 새삼 알게 된 것도 제 숨과 관련이 있습니다.
강의실에서 여느 때처럼 근엄한 가장의 얼굴을 한 교수님의 잔소리를 듣다가 두근거림을 느낀 적이 있습니다. 심장 박동이 지나치게 크게 느껴지고 숨이 잘 안 쉬어지는, 중세시대의 무거운 철 갑옷을 입고 있는 갑갑한 기분 말입니다, 질식할 것만 같았습니다. 공기도 무겁고, 제자들의 미래를 걱정하며 이래선 안 된다, 안 된다며 부정적인 이야기를 쏟아내는 교수의 말들. 분명 저는 갑옷을 입고 있지만 상대는 화학적 무기를 가지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제가 이렇게 죽을 것만 같은 기분에 느릿느릿, 겨우 강의실 문을 열고 복도로 나아갈 수 있었으니까요.
미음(ㅁ) 자 공대 건물의 중정으로 나오니 추위에도 굴하지 않는 빛이 벤치 위를 데우고 있었고, 조심스레 그 벤치에 앉았습니다. 무엇이 문제인 건지, 숨을 어떻게든 들이쉬고 내쉬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잘 안 쉬어진다는 그 공포감에 곧장 지역 내 정신과병원에 연락을 했습니다. 아무래도, 아무래도 신경이 너무 예민해진 탓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에 오늘 당장 진료를 볼 수 있는지 물었지만 가장 빠른 진료도 일주일 뒤에나 가능하다는 답변만 얻었습니다.
"그러면 다음 주 수요일, 오후 2시에 예약되셨습니다. 어떤 일이 생기셔서 취소하고 싶으시면 전날에 꼭 말해주세요."
제가 곧장 저의 정신적인, 심리적인 문제임을 직감하게 된 것은 이런 가슴의 답답함을 느낀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가슴의 답답함, 그러니까 명치를 세게 두드려서라도 숨을 틔우고 싶은 격한 욕구는 지난해에도 약하게 느껴왔던 것이기 때문입니다.
같은 사무실에서 동료가 본인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고, 제가 그 일을 떠안았어야 했습니다. 저는 그때도 그 사실을 그저 받아들이기보다 '왜' 이런 일이 생긴 것인지,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그런 질문을 수도 없이 던졌습니다. 이건 제 뇌의 문제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하게 된 계기입니다. 중학생 때 교우관계에 문제가 있을 때도 저는 제 안에서 원인을 찾으려고 노력했고, 고등학생 때 입시경쟁에서 만족하지 못했을 때도 저는 제 자신을 탓하고, 의심하고, 벼르고, 다그치고... 그렇게 행동했었거든요. 매일 저는 좌절했습니다. 왜 그랬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고, 지금 상황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 화가 났거든요. 아무리 봐도 제가 잘못한 건 부분이지, 전체가 아니었거든요. 때로는 제가 다 잘못한 건데 스스로 변명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도 했는데요, 그 과정이 저의 답답함을 풀어준 것도 아니었습니다.
사실 동료가 뭐 일을 못하건, 그 책임이 저에게까지 돌아왔건 조금 짜증 나는 일이지만 저에게 큰 영향을 줄 만큼 커다란 불행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제 머릿속에서 자꾸만 되풀이되는 미결의 사건들이 적층 되어 제 가슴을 눌러왔고, 저는 생각하느라 제 숨마저 잊어버리게 된 거라고, 지금은 그렇게 정리하고 있습니다.
*
다시는 그런 두근거림을 느끼고 싶지 않단 생각에 곧장 집으로 들어가서 보일러 전원을 누르고 30분 뒤에는 뜨끈해질 바닥에 엎어져 가만히 누워있었습니다. 최소한으로 움직이며, 가만히. 쌕쌕거리는 숨을 그때 들었는데 숨이 참 작았습니다.
일주일 뒤에 병원에 갈 땐 이게 현실인가, 꿈인가 싶었습니다.
대기번호를 뽑고 처음 진료를 받았을 때 의사 선생님 앞에서 저도 모르게 울었습니다.
선생님 말씀으로는 제가 지나치게 무기력하고, 우울해져 있는 상태라고 하더랍니다. 부교감신경 항진. 자율신경계 이상...
제가 울었던 건 저조차도 스스로 괜찮다고 억지로 버텨온 게 불쌍해서, 한편으로는 그와 동시에 '네가 뭐가 힘든데?'라는 다그침이 제 머릿속에 울렸기 때문입니다.
그날 이후로 한 달가량은 매일 아침, 저녁으로 약 서너 알을 먹었고, 점차 알약 개수를 줄여가며 결국엔 완치라는 것은 없다는 걸 알지만 지금에 와서는 약도 먹지 않고 잘 살고 있습니다. 잘 조절하는 게 중요하다고 하더라고요. 스트레스를 조절할 줄 알면 좀 삶이 편해질까. 생각을 멈출 줄 알면 조금 나아질까.
그래서 추운 겨울엔 따뜻한 실내에서 움직이는 요가를 했고, 봄이 오면 천변을 달렸습니다. 여름이 되면 집 안에서 겨울에 배웠던 요가 동작을 수행했고, 날이 선선한 날 저녁에는 천변을 걸었습니다. 가을도 똑같이 달렸습니다.
달리기도 하다 보면 늘더라고요. 호흡에 쓰이는 근육이 이렇게 섬세하게 많이 붙어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가끔 고민과 걱정이 압도하는 날에는 숨도 짧아져있고 뒷목도 뻐근한데 그럴 때 숨차게 달리고 나면 한결 나아집니다. 정말로, 정말로요. 달리는 게 딱히 좋아했던 건 아니었던 것 같은데, 달리고 나면 숨이 쉬어집니다. 음성으로든, 문자로든, 행동으로든 누군가가 나를 해칠지도 모른다는 긴장감과 두려움에 움츠리고 다니거나 과하게 두꺼운 갑옷을 입곤 했는데, 사실 제게는 스피드가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언제든, 무엇이든 피할 수 있도록 준비된 육체 말입니다.
글도 제게는 달리기와 비슷합니다. '쓴다'라는 행위에 집중하게 되어 급하게 돌아가던 생각회로를 타자 속도, 혹은 펜이 그려나가는 속도에 맞추어 느릿느릿하게 바뀝니다. 불안한 건 너무 빨라서이기도 하니까요.
다시 숨을 고르고, 요즘 하는 생각은..
어느 누군가가 무엇을 만들어내는 건 그 사람 그 자체, 하나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합니다. 모든 건 다 변주일 뿐이고, 결국 한 사람이 만들어 내는 소리, 움직임, 글, 등등 모두 하나의 메시지를 담고 있을지도 모르겠단 생각 말이요.
논리에 대해서도 책을 한 권 읽고 있습니다. 아니, 사실 두 권입니다.
기타 연습은 여전히 잘 되어가고 있습니다. 아니, 사실 실력이 정체기인 것 같습니다.
매일 아침 창문을 열어서 집 안 공기를 환기시킵니다. 차가운 공기가 집안의 공기를 몰아내고 있을 때 저는 청소기로 집안 구석구석을 밀고 다닙니다. 어쩌면 저는 이런 사람이군요. 환기가 중요한 사람. 경우에 따라 짧게는 10분, 길게는 1시간 정도 환기를 하고 나면 집안 환경도 조금은 나아진 것 같습니다. '나'라는 사람 자체는 그대로여도 환경이 나아진다는 건 어쩐지 잠재되어 있는 제 자신이 꽤 괜찮을지도 모르겠단 기분 좋은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오전에는 이렇게 글을 쓸 것이고, 오후에는 친구를 만날 겁니다.
삶이 조금 더 단순해지고, 문장도 단순해지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여전히 저는 어딘가에 빠져버리는 걸 잘하는데, 그러다 보면 또 숨 쉬는 것을 잊어버리게 됩니다. 숨을 쉬는 생명.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강력하고도 끈질긴 것인데 어째 저는 숨을 잊어버리는 걸까요. 살아서 숨 쉬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한 생명인데. 앗.. 또 생각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무언가 문장을 이어나가야 할 것 같은 어색한 기분에 저는 손가락을 멈추지 못했습니다. 사실 전하고자 하는 내용은 단순한데 말이죠, 무언가 부족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조급하게 만들고 과하게 만들곤 합니다.
저는 아마 계속 기억을 곱씹으며 그땐 왜 그랬지, 그럴 수밖에 없었을까, 이건 뭘까, 이렇게 혼자 빈 벽에 공을 던지고 혼자 받아치는 행위를 하는 인간일지도 모릅니다. 제가 쓰는 글도 다 이 모양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전엔 했던 말만 반복하는 게 두려웠는데 - 제가 쓰는 문장이 다양한 사건들에 대한 관성적인 대답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에 대한 두려움 - 그건 이제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고 경계해야 할 지점일 뿐이라고 느끼게 됩니다. 사람 한 명이 하는 말이 비슷하고, 그때 있었던 사건을 반복해서 이야기하고, 그런 것이 다 그럴 수 있다 싶습니다. 물론 듣는 입장에선 지겨울 수 있겠지만요. 그래서 내년엔 올해보다 새로운 걸 더 많이 경험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만 줄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