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eam 3(in the midst of my life)-막스 리히터
요 근래에는 하루에 대여섯 시간밖에 자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도서관에 가면 오전에 20분, 오후에 20분 정도 책상에 엎드리게 되는 것이다.
어제도 컨디션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지난 일요일부터 목이 칼칼하게 아파와서 인후통에 먹는 약을 매일 먹고 있고, 도서관 책상 위에는 독서대가 정중앙에, 뒤편에는 온갖 잡다한 책, 필통, 필기구, 450ml 스타벅스 텀블러(정확하진 않지만 하여간 톨사이즈), 탁상용 전자시계, 포스트잇이 너절하게 흩뿌려져 있었다. 내가 엎드리는 시간에도 규칙은 있는데, 아무리 피곤해도 10분 이상은 엎드리지 말기 (왜냐하면 위가 눌려서 속에 가스가 찬다.), 50분 단위에서만 쉴 수 있음(10시 50분~11시, 혹은 14시 50분~3시 이런 식으로 휴식한다는 뜻이다)이 그 규칙이다.
대개 2시 30분 정도가 되면 졸리고, 이따 꾹 참았다가 50분에 맛있게(?) 자야지, 하면서 버티다가 엎드리면 얼마나 달콤한지 모른다. 아무튼 간에, 어제도 그렇게 기다리고 잠을 잤다. 핸드폰 알람이나 손목시계 알람을 맞춰두고 엎드려서 잔다. 그러고 정각이 되면 일어나서 또 책장을 편다.
그렇게 또 한 시간을 보냈나… 갑자기 내 바지에 물이 뚝뚝 떨어진다. 이게 뭔가, 해서 독서대 말고 책상표면을 봤더니 세상에, 홍수가 나고 있었다.
텀블러 입구가 막힌 채로 엎어져서 스멀스멀 물이 새고 있던 것이다. 근데 그것도 모르고 엎드려서 휴식하고, 공부하다가 책상이 흥건해지고 나서야 알아챈 것이다. 수영장,.. 물놀이… 뭐 그런 것…
잽싸게 전선이 위험한 건 없는지 확인하고 화장실로 가서 휴지를 왕창 뽑아왔다. 두 바퀴, 세 바퀴, 네 바퀴 돌려서 한 번 닦고, 또 화장실 가서 휴지를 뽑아와서 다시 닦고, 그렇게 네 번 반복해서야 책상의 물기가 사라졌다.
나는 책상을 닦으면서 왠지 서러웠다. 양 옆에 사람이 있는데 왜 아무도 “저기, 물병 쓰러져서 물 나와요.”라고 말해주지 않은 거지라는 원망 섞인 생각이 들었다. 도서관 열람실 좌석 간격은 60cm 정도이다. 특히 사선에서 보면 물이 스멀스멀 나오는 것도 다 보였을 것 같은데.. 아무튼 이건 내 생각이고, 안 보였을 수도 있다. 각자 공부에 열중하고, 더군다나 무선 이어폰 장착이 일반적인 시대에 살고 있으니까. 어쩌면 무관심이 더 도와주는 거다, 생각하는 것일지도 모르고.
하지만 그땐 당혹스러우니까 누군가를 원망하는 소리를 하게 되는 것이다. 나라면, 말해줬을 것 같은데.
나는 매일 아침 건강차를 텀블러에 넣어가는데, 그날은 건조된 작두콩 깍지와 돼지감자를 넣어 간 날이었다. 책상에서 구수하고 왠지 달콤한 향기가 났다.
책이 침수당하지 않아서 운이 좋았고, 주변 사람들한테까지 피해 주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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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매일 달리지는 못한다. 월, 수, 금 오전 6시에 눈떠서 30분 정도 달린다. 또 그렇게 빠르게 달리지도 못한다. 지난해 오월달부터 달리기 시작했고, 그때 한 달여간은 매일 아침에 땡볕에 나가 달리는 내가 좀 기특해 보였는지 아빠께서 가민 스마트워치를 선물해 줬다. 기록이 쌓여가는 걸 보면 더 뿌듯할 거라고, 독려하는 의미로 주셨는데 솔직히 나는 그다지 필요하지 않을 것 같다고 느꼈었다, 당시에는.
하지만 막상 써보니 아주 유용한 데가 많았다. 이게 달리기용 스마트워치 광고용 글은 아니니까 그냥 연이어 서술하자면 우선 충전 텀이 굉장히 길고(충전 후 일주일 간은 충전하지 않아도 된다.), 스톱워치 기능이 아주 유용하며, 알람기능이 굉장히 쓸모가 많고, 그리고 무엇보다 운동을 할 때 더 높은 목표를 설정해서 달릴 수 있게 알림을 준다.
아무튼 간에 매우 잘 쓰고 있단 뜻이다.
다시 오늘 아침으로 돌아와서, 오늘도 늘 그랬듯이 아침 여섯 시에 눈을 떠서 바지만 갈아입고 밖으로 나간다. 나는 파자마를 입고 자는 스타일이 아니라 그냥 내일 아침 운동복을 미리 입고 잔다. 그 운동복이라는 것도 그냥 일반적인 면티일 뿐이다. 바지만 수면잠옷을 입고 자는데, 그래서인지 신속하게 바지만 운동용 바지로 갈아입고 나갈 수 있는 것이다.
겨울의 여섯 시는 생각보다 포근하다. 바람이 부는 날이나 기온이 영하 10도가량으로 떨어지는 날은 춥지만 그래도 그 외의 날은 생각보다 포근하고, 조용하다. 새벽공기를 마시면서 아파트 내부에 있는 지하 헬스장에 간다. 뭔가 고급같이 느껴지는 단어의 연속인데 - 아파트+헬스장 - 그렇진 않다. 10년~15년 된 러닝머신 두 대가 너무 나이 들어서 교체되어야 할 정도였고, 바닥은 옛날 노란 장판이며, 바벨이나 아령은 낡고 지쳐서 한 구석에 놓여있다. 오히려 ‘시설이 노후되었다.’라고 말하는 게 정확하지 싶다. 그럼에도 나는 이런 쓰임이 많았던, 최신식이 아닌 이런 아파트 헬스장을 굉장히 애용한다. 우선 아파트 입주민이면 공짜로 갈 수 있다는 게 매우 큰 장점이고(요즘 헬스장 등록비만 해도 한 달에 15만 원 정도이다.), 그것보다 큰 장점은 우리 동 바로 앞에 헬스장 상가가 있다는 것이다. 운동시설은 현관문 앞에서부터 가까운 게 최고다.
최근 교체된 러닝머신 - 트레드밀이라고도 하는데 나는 러닝머신이 조금 더 익숙하다. 달리기+기계라는 직관적인 해석이 가능해서. - 위를 처음엔 슬금슬금 걷는다. 대략 속도는 3 정도? 그리고 1분이 지나면 속도 6 정도로 놓고 털레털레 뛰다가, 5분 정도 지나면 속도 8로 달린다. 그렇게 또 5분 정도를 뛰고,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이후의 속도는 자유다. 좀 더 나의 민첩성을 느끼고 싶으면 10까지도 올라가고, 대개는 9까지만 올려서 나머지 시간을 뛴다.
시작할 때 스트레칭을 따로 하는 건 없는데, 자기 전에 간단히 쟁기자세, 어깨서기 등의 자세로 스트레칭을 하고 자서 그렇다. 그리고 아침에 눈 뜨고 일어나면 발목 좀 돌리고, 꼼지락대는 시간이 조금 있다.
아무튼 간에, 그런 식으로 뛰면 대략 15분 후면 인중과 이마, 목 뒤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고 30분 뒤에는 뭔가 후련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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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앨범을 듣는다. 클래식 앨범을 애플 뮤직에서 디지털로(!) 듣는데 생각나는 게 있어서.
문득 '피아니스트가 악보를 읽는다', '독자가 책을 읽는다.'가 굉장히 유사하게 느껴져서 그렇다. 생각해 보니 피아니스트 콩쿠르도 굉장히 도톰한 악보를 읽고 그 내용을 정확하고 풍부하게 표현하는 사람을 우승자로 뽑는 것 아닌가. 그 악보도 굉장히 두툼한 것이고 위에서 아래로, 좌에서 우로 읽어나가는 것이며, 연주되는 음악을 들으면 어떤 정서나 풍경이 떠오르기도 하니까 책과 굉장히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책에 대해서는 '책을 읽고 풍부하게 표현해 내는 사람'이 '책 읽고 무언가로 표현하기 대회'에서 수상하는 일 같은 건 아직 없는 일이지만 말이다.
한편으로는 클래식 음악을 들으면 막연히 '어렵다.' 혹은 '졸리다.'라고 느낄 때가 있는데 그 음악에 담긴 주제를 '이해해야 한다'라는 마음이 들 때 그런 것 같다. 초등학교 다닐 때 감상문 쓰기를 하면 굉장히 난감했던 기억이 있다. 뭘 느꼈어야 할지 모르겠어서. 다행히 그때 명랑하기만 해서 그 음악에 대해 '무언가를 느끼지 못했다', 혹은 '연상되는 것이 딱히 없었다.'라는 게 내가 예술적인 감수성이 풍부하지 못해서,라는 생각은 딱히 못하고 지나갔던 것 같다. 지금도 딱히 뭘 느끼지 못한다는 게 그다지 죄책감 들진 않는다. 아무튼 간에 초등학생 때는 그때 그 음악을 만든 음악가는 '어떤 생애를 살았나'에 집중해서 감상문을 썼었다. 예나 지금이나 나는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지금도 어떤 음악을 들으면 '그 사람은 어떤 삶을 살길래 이런 음악이..'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간에 나는 클래식 음악 듣기를 즐긴다. 뭘 이해해서도 아니고 귀에 닿는 피아노 선율이 필요할 때가 있어서 그렇다. 사람의 목소리 말고 유려하게 음이 오르내리고 강약을 타며 주제를 변주하는 음악 말이다. 뭘 듣냐고 물으면 보통은 유명한 것을 듣는다. 조성진 피아니스트가 연주한 드뷔시의 달빛, Lamoureux Orchestrer(라무뢰 오케스트라)가 연주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가 잔잔하고 익숙하니 편안하다.
생각해 보니 피아니스트,라는 시연자는 전기수와 그 역할이 비슷한 것 같다. 참고로 전기수는 조선 후기(18세기)에 저잣거리나 담배 가게 등에서 소설책을 전문적으로 읽어주던 낭독가이다. 악보를 봐도 이해하고 피아노를 연주할 줄 모르면 까막눈과 다를 바 없는데 대표로 그 악보를 가장 잘 이해해서 대중들에게 소개해주는 역할이니까. 책 읽는 것도 이와 비슷한 것 같다. 아무리 읽어도 내가 알고 있는 게 모자라기 때문에 다양한 사람들의 해석도 들어보며 다양한 시각을 키워나가는 것.
잡설이 길어졌다. 아무튼 간에 심신이 지칠 땐 희멀건 죽 같은 클래식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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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내가 자존감이 낮다는 걸 자각하고 있다.
아무 이유 없이 초면의 누군가가 미워지면 나는 나를 미워하고 있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를 테면 나의 주변에 외모가 단정하지 못하고 스스로를 가꾸지 못한 인상을 가진 사람을 보면 부정적인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 사람의 외모는 그 사람의 영역이기 때문에 (물론, 그 얼굴을 타인이 볼 수 있음을 생각한다면 꼭 그 사람의 영역만의 것이 아니긴 하지만.) 내가 관여할 바가 아니지 않나. 그럼에도 왜 내 마음이 '그 사람이 깔끔하거나 단정하지 못함'에 쓰이는 건지 돌아보면, 나는 요즘 '세련되게 가꾸지 못하는 나'에 대해 콤플렉스가 있었던 것이다.
그 외에도 더 있다. 누군가가 도서관에 와서 책 펴놓고 스마트폰으로 딴짓을 하고 있으면, 그 사람이 굉장히 한심하다. 하지만 이것 역시 내 삶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게 마음 쓸 일이 아닌데, 왜 내 마음은 그 사람을 한심하게 여기는지를 돌아봤다. 이것 역시 무엇하나 제대로 선택하지 못하고 어영부영, 미지근하게 시간 보낸 과거의 나를 한심하게 여기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런 사람을 보면 내가 보여서 한심했던 것이다.
나 자신이 구리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게 싫지만, 구리다는 것을 모른 채 구질하게 사는 것보다 알아챌 기회라도 있는 게 다행이다. 난 나 자신이 가장 구리다고 여기는 것들 중 하나가 과한 열등감이다. 그리고 비대한 열등감에 걸맞지 않게 자기 자신에게 거는 기대는 크다. 자기 객관화가 안 되는 나. 자긍심으로 오해할만한 허영심 같은 것들. 이게 내가 생각하는 나의 가장 구린 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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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나는 스스로를 꽤 아낀다. 꾸준히 아침마다 운동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매일 장갑을 끼고 외출하는 것도 그렇고, 음료 대신 따뜻한 차를 자주 마시는 것도 나를 위하는 것이다. 글을 쓰는 것도 그렇고, 책을 읽는 것도 그렇고, 자기 전에 식물에 물을 주는 것도 그렇고, 따뜻한 이불 안에 누워서 잠을 자는 것도 그렇고.
생각해 보면 본인 스스로를 미워한다고 생각해도 또 그렇게까지 미워하는 건 아닌가 보다.
한편으로는, 왜 갑자기 자존감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냐면 나는 선택지가 있으면 무조건 나에게 최선인 것을 선택하기보다 '무리 없이' 적당한 것을 고르려는 성격이기 때문이다. 미리 앞서서 '그건 내 것이 아닐 거야.', '그렇게 멋지고 화려한 것은 내 자리 혹은 내 것이 아니지.'라고 생각한다.
아, 앞서 말한 내가 구린 점 중에 하나 또 추가다. 지레짐작해서 마음대로 생각하고 오해한다.
한편으로는 떡 줄 사람도 없는데 입 벌리고 있는 것이고, 또 한편으로는 문을 두드리지도 않고 거절당했다고 여기는 것이다. 밤길을 걸어오면서 나는 '자기 분수를 알아야지.' 하면서 큰 꿈을 꾸지 못(안)하는 소시민임을 느꼈다. 난 어떤 과감한 선택을 하고 싶길래 아쉬움을 느끼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