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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담 Sep 08. 2015

흔하디 흔한 어느 사무실의 탕비실에서 쓰다

그냥 그렇다고...

비스듬한 아침해가 떴다. 차려입은 사람들이 잔디밭을 뒤로 하고 건물 속으로 들어온다. 외부를 온통 유리창으로 마감한 건물이다. 햇빛을 받아 영롱하게 빛난다.


처음으로 사무실을 들어온 사람이 자기 등 뒤의 창문을 하나만 연다. 곧바로 탕비실이라고 쓰여있는 어원 불명의 이름을 달고 있는 방으로 들어간다. 한 손에는 텀블러를 쥐고 있다. 커피메이커를 동작시키고 자기 책상에 다시 와서 마우스를 흔들흔들. 컴퓨터는 켜져 있다.


다른 사람이 사무실로 들어왔다. 오자마자 회의실 탁자 위 화분에 물을 준다. 물티슈를 한 장 꺼내 회의 탁자를 꼼꼼히 닦는다. 커피 향을 잠시 맡는 것 같다. 다시 닦는다. 이번에는 창틀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난을 들여다본다. 리모컨으로 블라인드를 조금 올린다. 난에 햇빛을 비춘다. 난들이 어제보다 조금 더 자란 것 같다.


분홍색 트레이닝복을 상하 세트로 입은 여자가 주차장으로 어슬렁 거리며 걸어 들어온다. 짙은 선글라스를 쓰고 있다. 걸음은 여유가 넘친다. 트레이닝복 하의는 적당히 늘어나서  나팔바지처럼 하단이 넓다. 건물 뒤로 돌아서 사라졌다.


사방이 파티션으로 둘러싸인 자리 주인이 출근했다. 성벽처럼 둘러친 파티션으로 보호받는 책상 위는 말끔하다. 컴퓨터도 없다. 거대한 수석만 덩그러니. 수석에 물을 준다. 어제보다 조금 더 침식이 일어난 것 같다.


세 명이 목례를 나눈다.

수석에 물을 끼얹던 사람에게 다른 두 명이 먼저 목례를 건넨다.

컴퓨터를 켜 놓고 다니는 사람에게 테이블을 닦던 사람이 인사를 건넨다.


탕비실로 들어간다. 탕비실에는 이 공간을 공유하는 모든 사람들의 취향이 반영되어 있는 것 같다.

아. 예외도 한 명 있다. 회의실 테이블을 닦던 사람은 아직도 탕비실에 들어가지 않았다.


한 사람이 더 왔다. 외투를 벗어 사물함에 넣는다. 역시 탕비실로 들어간다. 커피가 모두 팔려나가서 다시 커피를 내린다. 10인용 커피메이커는 종이컵 기준인가? 내리고 또 내려도 금방 바닥이 보인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사무실에 아직 3명밖에 출근하지 않았다는 걸 알아차리지 못했다. 커피가 쪼르르 흘러내리는 것을 보며 생각한다. '이 사람들 커피를 도대체 얼마나 마시는 걸까.' 그러나 딱히 답을 알고 싶지는 않다.


앳된 얼굴의 사람은 팔뚝을 톡톡 두드리며 출입문 바로 앞에 있는 책상에 앉아 시원한 물을 들이켰다.

다른 세 명은 갖내린 뜨거운 커피를 홀짝이며 같은 생각을 했다.

'아침해가 빨리 이 건물의 옥상에 비추길... 그리고 빨리 서산으로 사라져버리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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