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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담 Aug 10. 2016

공시생 일기 - 1 - 선착순 사물함

공감 소설

책, 책 스탠드, 도넛 방석, 형광팬 세트, 양지다이어리, 삼선 슬리퍼, 츄리닝, 백팩, 에코백 두 개, 후드티.... 등등...
615번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도서관을 경유하는 버스다. 05시 45분 첫차를 타려고 4시 30분에 일어났다. 어제 집에서 저녁을 먹고 일찍 잠든 이유가 있다. 오늘은 2개월에 한 번 사물함을 배정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백팩과 양손 무겁게 에코백을 들고 집을 나왔다.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미칠것 같다. 너무 무거워. 어제만해도 사물함에 고이 모셔져 있던 책들이다. 8시부터 선착순. 사물함조차 경쟁해야한다. 먼저 도착한 사람에게 사물함을 우선 배정하기 때문에 빨리 도착해야 한다. 7시 이전에 반드시 도서관에 도착해야한다. 안내문에 8시부터 배포라고 써있다고 8시에 맞춰서 도착하면 500명 넘게 기다리는 광경을 보게 된다. 사물함의 자리는 그렇게 넉넉하게 주어지지 않는다. 버스가 천천히 내 앞에 정차했다. 차에 오르기 딱 좋은 위치다. 책을 등짐지고 양팔 무겁게 들고서 버스에 올랐다. 버스에는 수험생이 나를 비롯해 십여명쯤 보였다. 수험생이 아닌 사람들은 호기심을 담은 시선으로 나와 주위 책 운반자들을 바라봤다. 고맙게도 버스 기사님이 내가 자리에 앉을 때 까지 출발하지 않고 기다려 주셨다. 다리 사이에 책들을 단단히 끼워 넣었다. 나는 되도록 출구에 가까운 자리에 앉았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달려갈 생각이다. 십 여명 중에서 1등을 해야한다. 사물함의 위치도 내겐 중요하기 때문이다. 내가 공부하는 4층 열람실에서 가까워야 한다. 허리에 통증이 있어서 허리를 많이 숙이지 않고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뜨거운 물을 받는 정수기와도 가까워야 한다. 화장실과도 가까워야 한다. 사물함 중심으로 도서관 생활이 돌아가기 때문에 몇 가지 조건이 맞는 자리여야 한다. 지난 1년 동안 한 곳만 사용했고, 오늘도 바로 그 자리를 얻고 싶다. 아... 아니다. 딱 한번 그 자리를 뺏긴 적이 있다. 나는 그 두 달 동안 공부가 거의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래서 그 이후로 서두르게 되었다. 오늘 하루 공부를 못하더라도 그 자리 만큼은 내 차지가 되어야 한다. 몇 명을 앞질러야하는지 명수를 헤아렸다. 표정을 보니 다들 피곤해보인다. 수험 생활은 건강을 많이 빼앗기는 시간이다. 나도 거의 10키로그램이나 살이 쪘다. 적게 먹는 전략으로 다이어트를 계획했지만 매일 내일로 그 시작을 미루고 있다. 체중은 우상향 그래프를 그리고 있다. 성적도 이렇게 꾸준히 오르면 얼마나 좋을까? 먹는 걸로 스트레스 푸는 내게 먹은 것을 줄이는 일은 불가능해 보인다. 다이어트는 내일부터 시작해야겠다. 걷기 다이어트. 버스에 오른 사람들이 하나 둘 단어장을 꺼냈다. 백팩의 겉에 달린 주머니에 영어 단어장이 있다. 많이 봐서 낡았다. 이쪽 세계에서 낡은 단어장은 자랑거리다. 나도 꺼내 봐야겠다. 다들 보고있잖아. 그런데 눈이 자꾸 감기려고 한다. 피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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