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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담 Aug 18. 2016

공시생 일기 - 5 - 대화 공동체

공감 소설

도서관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내가 야구팀이라고 이름 붙인 스터디 그룹에 대한 이야기다. 7~9명 내외로 구성된 이 그룹은 공무원 준비를 하는 사람들이다. 모두 교정직 공무원을 준비하는 걸로 안다. 점심 도시락을 거의 매일같이 먹다보니 여러가지 정보를 알고 있다.

도서관 점심시간은 12시다. 별도로 마련된 휴게실에서 주로 도시락을 먹고 몇몇은 컵라면을 먹는다. 도서관측에서 컵라면을 금지했기 때문에 이들은 위축된 자세로 숨기는 듯한 자세로 허겁지겁 컵라면을 먹는다. 대게 이들도 얼마안가서 도시락을 싸온다. 11시 50분부터 하나 둘 그렇게 모여든다.

오래된 도서관의 시설은 열악하다. 다른 도서관에서 충분히 쓰고 내다 놓은것 같은 낡은 50평형 업소용 에어콘을 가져다가 10여평 내외의 조그만 휴게실에 설치했다. 곧 문을 닫을 도서관에서 그래도 이용자를 배려한 부분이라서 감사하다. 아주 약하게 틀어도 금방 안경에 뿌연 김이 어릴정도로 강력한 냉방이 된다. 샌드위치 패널로 지은 가건물 속으로 한여름의 태양열도 침투하지 못했다.

도시락을 나누어 먹는 점심 시간이 야구팀에게는 가장 즐거운 시간 같아 보였다. 서로의 안부도 묻고 맛있는 반찬은 골고루 분배하여 나누어 먹었다. 그 중에는 그룹을 이탈하여 취업한 팀원도 있었는데 도서관에 가끔 나타났다. 피자나 탕수육, 치킨 등을 사들고 왔다. 피자 한 판에 축제가 개최되었고 탕수육 한 접시에 파티가 열렸다. 이런 날 그들의 기나긴 대화는 도서관 문 닫을 시간까지 끝날줄 몰랐다. 게임 이야기, 스포츠 이야기, 정치 이야기, 연애 이야기 등등. 특히 정치 이야기는 한 번 시작하면 열변을 토해내며 아주 오랫동안 휴게실이 시끌벅쩍했다. 그 사이 휴게실 밖으로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야구팀을 다시 만난 것은 휴게실에서 도시락을 먹던 시절로부터 10년이 지난 후였다. 야구팀은 더이상 팀이라 칭하기 어려웠다. 2명만 남아있었고 다른 팀원은 보이지 않았다. 한 명은 팔에 자외선 차단 팔토시를 착용하고 암기를 위해 적어둔 종이를 들고 1층 로비를 빙빙 돌고 있었다. 뭔가 잘 외워지지 않을 때는 머리를 콩콩 찧기도 했다. 슬리퍼 바닥의 패턴은 사라졌고 발등을 지나는 삼선은 절반만 연결되어 있었다. 가장자리 종이가 돌돌말려있는 연습장 뭉치를 들고 로비를 빙빙 돌고 있었다.

또 다른 한 명은 팔토시랑 친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둘은 분명 같은 팀원이었는데 말을 섞지도 않았고 밥을 같이 먹지도 않았다. 둘이 다투기라도 한 걸까. 서로를 경계하는게 보였다. 청바지 밑단으로 로비를 쓸고 다니는 이 야구팀원은 거의 매일 중국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중국집 사장에게 덜맵게 만든 불쟁반짜장 1인분을 당당히 요구했다. 내가 들고 있는 메뉴에는 "불쟁반짜장 2인분 부터" 라고 쓰여있었다. 그는 서빙 서비스를 제공해주는 아르바이트 학생과 농담을 주고 받기도 하고 단무지와 춘장과 양파를 능숙하게 퍼다 먹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갈때는 그릇을 정리하며 사용한 휴지는 쓰레기통에 버렸다. 계산하면서 주방에 그릇을 넣어주기까지 했다. 그는 듣기 좋은 목소리 톤으로 주방장과 알바에게 인사를 건내고 미닫이 문을 열고 나갔다.

투명창에 비친 내 얼굴에 표정이 없다. 입꼬리도 내려갔다. 어렴풋히 보이는 내 눈빛이 슬프다. 도서관에는 슬픈 눈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주르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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