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사진 한 장 없는 가족여행

by 살곰살곰

4박 5일의 제주도 여행이 마무리되었다.

어쩌면 이번이 우리 가족 모두가 함께 하는 마지막 가족여행이 될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큰 아이는 다음 달에 군대를 간다. 군대를 다녀오면 타지에서 근무하게 될 것이기에 시간을 맞춰 함께 여행하는 일이 쉽지 않을 것이다. 회사나 타지에서 살게 되는 시간이 아니더라도 성인이 된 아들에게는 가족여행보다는 친구나 연인과 함께 하는 시간이 우선이 될 것이다.


제주도에서의 네 번째 날, 성산 일출봉을 첫 목적지로 잡고 향하던 중 딸아이가 자신은 가지 않겠다는 생각을 전해왔다. 자연보다는 화려함이나 직접 체험하는 시간을 좋아하는 딸아이에게 차가운 바람을 뚫고 성산 일출봉을 올라가는 일은 힘겨움이었을 것이다. 혼자 카페에서 쉬길 바라는 아이를 근처 카페에 데려다주고 셋이서 다녀오기로 했다. 먼저 입구로 가있겠다는 큰 아이와 잠시 헤어진 후 카페에 작은 아이를 데려다주고 나오려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어디세요? 저 그냥 먼저 올라가요"


기다림에 지쳤는지 큰 아이의 목소리가 좋지 않다. 가고 있으니 조금만 기다리라고 한 후 발걸음을 서둘렀다.

입구에서 만난 아이의 기분을 살피며 성산일출봉 정상으로 향하던 길, 큰 아이는 빠른 걸음으로 앞서가기 시작했다. 무릎관절이 좋지 않은 남편의 속도에 맞춰 우리 부부는 천천히 올라갔다. 오르는 중에도 만날 수 있는 풍경과 감정이 많을 텐데 정상을 향해서만 가는 아들을 보며 아쉽기도 했지만 아이에게 내색하지는 않아야 한다.


정상에 오르니 지친듯한 아들의 모습이 저 멀리 보인다. 그렇게 조금 쉬고 다시 내려오는 길, 내 눈에 보이는 건 역시나 아들의 뒷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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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중간 sns에 사진을 올리고 친구들과 소통하거나 사진을 찍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던 아들...


"자기야, 아무래도 이번 여행이 우리 가족이 다 함께 하는 마지막 여행 같죠?"

"당연하죠. 스무 살이 넘었는데 가족과 함께 하는 여행이 우선이면 그게 더 이상한 거예요"


힘들었는지 쉬다 가자는 아들과 함께 딸아이가 있는 카페로 향했다. 이제 다 같이 모이는구나 싶던 순간 카페 다른 테이블에 앉아서 쉬는 아들이 보였다. 피곤해서 그럴까, 아님 입구에서 많이 기다리게 해서 기분이 좋지 않았나, 그것도 아니면 동생과 맞지 않았던 여행 취향으로 불편했던 감정이 아직 남아있는 걸까... 직접 물어보지 않았지만 아마 물어본다면 이런 답이 돌아왔을 것이다.


"그냥 보이는 자리에 앉은 거예요."


다음 목적지는 제주도에 오기 전부터 작은 아이가 기대했던 아쿠아리움이다. 온라인으로 표를 예매하고 나니 이번 목적지는 아들이 가지 않겠다고 한다. 제주도에 사는 친구와 저녁에 약속이 있긴 했지만 아직 시간이 남았기에 함께 보고 갔으면 했는데 아쿠아리움은 가지 않겠다고 한다. 예매했던 표를 취소하고 결국 딸아이와 단둘이 아쿠아리움으로 향했고 남편은 아들과 함께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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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기대를 하지 않았던 아쿠아리움에서 4시간 가까이 있었다. 즐거워하는 딸아이를 보는 것도 행복했고 나 역시도 해녀물질시연과 미구엘 슈발리에 특별전을 보며 벅찬 감동을 느꼈기에 어떻게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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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녀가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동안 남편은 큰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다 버스정류장까지 아들을 데려다준 후 그다음 코스로 함께 할 섭지코지에 가본다는 문자를 받았다. 많이 걷는 것을 힘들어하는 딸아이를 위해 어떻게 하면 편하게 다녀올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아쿠아리움에서의 즐거움에 다리가 아픈지도 몰랐던 딸아이가 섭지코지로 향하던 길에 힘겨움을 털어놓았다. 남편은 이미 다녀왔으니 나만 보면 되겠다 싶어 빠른 걸음으로 혼자 다녀오자 마음먹었다. 먼저 빠른 걸음으로 가고 있자니 남편이 뒤따라온다.


"누리랑 천천히 오지 왜 빨리 왔어요?"

"누리가 엄마랑 같이 가라는데요"


피곤하거나 힘들 때는 혼자 있고 싶어 하는 딸아이다. 천천히 섭지코지를 둘러보고 싶었지만 내 욕심 같아 중간에 다시 발걸음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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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더 안 가도 될 것 같아요. 멀리서 다 보기도 했구요."


그러고 보니 여행 내내 취향 차이로 서로 감정이 좋지 않았던 남매의 눈치를 보느라 가족사진 한 장 찍지 못했다. 섭지코지에서 아이들을 달래 가족사진 한 장을 찍으려 했는데 뜻대로 되지 않았다. 이번 여행 중 내가 찍은 사진 속 아이들 모습은 대부분 뒷모습이다.


아이들이 커갈수록 뒷모습을 지켜보는 존재가 부모인지도 모르겠다. 가족사진은 찍지 못했지만 엄마, 아빠의 사진을 찍어달라는 부탁은 잘 들어주는 아이들 덕분에 우리 부부의 사진은 여러 장이다. 그런데 우리 부부 사진 역시 뒷모습이 몇 장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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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모습은 담고 싶지만 싫어할까 싶어 조심스레 뒷모습을 찍는 나와는 달리 딸아이는 감성 사진(?)을 위해 의도적인 뒷모습 사진을 찍는다. 협재 해수욕장에서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하니 뒤를 돌아서 서보라고 주문하던 딸아이에 의해 우리의 뒷모습이 담겼다.


어쩌면 아이들 역시 우리의 뒷모습에서 많은 것을 느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모르는 사이 아이가 원할 때 뒤돌아서 있었던 순간도 있었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제주도에서의 마지막 밤, 친구를 만나고 뒤늦게 숙소로 온 아들의 모습이 밝아 보였다. 남편 말대로 여행 계획을 짜고 인솔해 주는 최소한의 역할만 하면 되는 시기인가 보다. 이제는 앞에서 아이들의 손을 잡아주려 하기보다는 내 삶을 충실히 살아가며 어떤 걸음과 뒷모습을 보여주는 부모가 되어야 할지 고민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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