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 시
어둠이 내린 후에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서둘러 온 걸음을 잠시 멈추고, 문득 고개를 들었을 때 비로소 보이는 밤하늘의 달처럼 말입니다.
이상하게도 보름달은 바라보는 행위만으로 우리는 ‘꿈꾸는 기분’이 됩니다. 달의 뒷면을 상상해 보기도 하고, 어쩌면 동그란 빛이 지구에 뚫린 구멍은 아닐까 상상도 해 보는 거죠.
어제보다 조금 더 부풀었거나, 혹은 조금 더 움츠러들었을지 모를 오늘의 달.
'내일도 달이 뜨겠지만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서 보는 달은 유일'하다는 시인의 문장을 좋아합니다. 달의 어떤 모습도 유일하고 소중한 것처럼, 나의 모든 순간도 유일하며 자체로 소중하다는 말처럼 들리기 때문입니다. 어둠 속에, 때로는 미세먼지 안에 갇혀 있더라도 말이죠.
어제보다 나아지지 않았다고, 내일이 불안하다고 자책할 필요는 없습니다. 시 속에서 뿌연 미세 먼지 사이에서도 묵묵히 빛을 내는 달처럼, 나도 나의 자리에서 존재하고 있으니까요.
오늘 밤엔 또다시 산책을 나가서 나를 비추는 유일한 달빛을 온전히 맞아보려 합니다.
그리고 문득, 이 달빛 아래 함께하고 싶은 얼굴을 떠올릴 겁니다.
아마도 그는
때로는 반쪽 밖에 빛을 내지 못하더라도, 어떤 때는 다소 일그러져 있더라도.
오랜 시간을 함께 나눈 사이일 겁니다.
‘잘하고 있어’라는 말보다 ‘그냥 하늘 좀 봐’라는 한마디로 더 큰 위로를 주는 친구.
오늘의 내가 보름달이든 그믐달이든 상관없이, 그저 함께 밤하늘을 바라봐 주는 누군가의 존재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충분히 괜찮은 삶을 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니까 올 추석 때 보름달을 보지 못하더라도, 아쉬워할 이유는 없을 것 같아요.
우리가 보려는 건 보름달이 아니라, 옛 시간에 대한 반추와 오늘에 대한 위로를 함께 나누며 보는 풍경이죠.
주인공은 우리.
보름달은 그저 관객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