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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루주 Jun 04. 2020

06. 미용실에 가기 어려운 이유

해외생활의 뜬금없는 복병, 미용실

친구가 초대장을 보냈다. 이름하여 <숲속의 친구들>. 친구의 친구 중에 외국에서 살다 온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 왈, 외국의 파티 문화가 너무 좋았더랬다. 한국에서도 서로의 친구들을 초대해서 파티를 하고 싶어, 할머니 텃밭에 있는 작은 컨테이너를 빌렸단다. 그리고 각자의 친구를 초대하기 시작했다. 나는 요즘 유행하는 mbti 성격 유형 중 enfj이다. 무슨 말이냐면. 적당히 외향적이고 이런 파티를 언제나 환영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 초대장을 시작으로 16.9도의 알코올과 36.5도의 친구들이 만나 열기 가득한 여름밤을 보냈다. 


그곳에는 외국에서 살다 온 경험이 있는 친구들이 꽤 있었다. 오죽하면 술이 하나 둘 들어가기 시작하더니 구석에서 그들끼리 영어로 대화를 시작했다. 그 대화를 물끄러미 멀리서 쳐다봤던 기억이 있다. 그중에는 머리가 파인애플처럼 솟아 있는 남자가 한 명 있었다. 괌에서 1년간 호텔 근무를 했다고 말했다. 괌에서 일할 적, 미용실에서 머리를 해달라고 했다가 이런 머리를 얻어 왔다며 농담처럼 얘기했다. 반은 알코올에 절어있는 기억이라 정확하지 않지만 하늘을 찌를 듯 솟아있던 파인애플 머리만큼은 선명하다. 


그로부터 몇 달이 흘렀을까. 외국 생활을 동경하던 나는 두 발로 프라하 땅을 밟았다. 어쩌면 내가 프라하에 오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닌 계획일지도 모르겠다. 어릴 적부터 '외국'하면 나도 모르게 가슴이 뛰곤 했으니 말이다. 그 여름밤에 만났던 친구들처럼 나도 술이 거나하게 들어가면 영어가 나오려나? 아니면 파티 문화를 즐기고 찾게 되려나? 아니면 농담처럼 말할 수 있는 에피소드가 하나 둘 생기려나? 기분 좋은 기대감을 안고 한 달 두 달을 보냈다.


그런데 웬일. 내가 마주해야 하는 모든 현실은 그 기대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생각하지 못한 것이 있었으니. 바로 미용실에 가는 것이었다. 나는 한국에서 단발머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고수'라는 표현이 맞겠다. 태어나서 딱 한 번 머리를 길렀을 때, 나를 오랜만에 본 친척이 "현주 너는 절대 머리 기르지 말아라. 별로다."라고 말한 다음부터 단발을 쭉 유지했다. 나 스스로도 단발이 제일 잘 어울린다고 믿은 것도 있었다. 그래서 많게는 한 달에 두 번, 적게는 한 달에 한 번은 꼭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턱선 가까이 잘랐다. 프라하에 도착했을 때도 내 머리는 턱 가까이서 찰랑이고 있었다.


보통은 자른 뒤 두 달 정도가 지나면 미용실에 가야 하는데 프라하에서는 도통 어느 미용실을 가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물론 미용실은 많다. 다만 내가 이용할 수 없을 뿐. 도착한지 두 달 밖에 안 된 시절 나의 체코어는 최악에 가까웠다. 마트에 가서 소금을 사야 하는데 소금이 체코어로 뭔지 몰라서 장을 볼 때마다 구글 번역기를 사용했다. sul 소금. cukr 설탕. pivo 맥주. maso 고기. mleko 우유. 더듬더듬 음식을 겨우 샀다. 그런데 '머리는 이 정도로 잘라주시고요, 앞머리는 이렇게 해주세요, 아! 그 기장은 너무 짧아요! 네 그 정도가 적당해요 감사합니다.'를 어떻게 체코어로 말할 수 있을까. 불가능이었다.


그때 파인애플 머리 남자가 떠올랐다. 아, 나도 자칫하면 파인애플이 되어서 오겠구나. 경험상 한 번쯤 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만, 도착한지 얼마 안 되어서 뒤숭숭한 마음을 더 뒤집고 싶지 않았다. 구글 지도에 다짜고짜 korean salon을 검색해서 한인 미용실을 찾았다. 가격은 한국보다 비쌌지만 통역사를 붙였다 생각하고 그 값을 지불했다. 그곳에서 나를 반겨준 한국인 미용사분이 얼마나 구세주 같던지. 어깨까지 닿은 머리를 파마하고 왔다. 


"한국인분들 많이 오시나요?"


파마를 하다 말고 미용사분께 여쭈었다.


"네, 교민분들도 많이 오시고 장기 여행하시는 분들도 가끔 오시고 자주 찾아오세요."


아... 나 같은 사람이 한 둘이 아니구나.


외국에서까지 한국인을 만나고 한국 사람들 사이에 섞이는 것을 보며 한때 나는 어리석다고 생각했다. 외국에 살면 당연히 그 나라에 섞여 살아야 하는 게 아닌가. 좋은 기회를 활용할 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얼마나 내 시야가 좁았던 것인지. 머리 하나 자르는데도 korean을 찾고 있는 마당에 그들을 왈가왈부할 내가 아니었다. 동생도 한 집에선 원수여도 밖에 나가면 하나밖에 없는 내 편이 된다. 타지에서 만난 모든 한국인이 갑자기 배다른 형제자매가 됐다. 처음 만난 미용사분께 이런 얘기 저런 얘기를 하며 머리칼을 맡겼다.


그 뒤로 나는 머리를 길렀다. 처음으로 가슴까지 오는 머리를 얻고 머리끈으로 높이 머리도 묶어봤다. 한국에 있는 가족, 친구들과 영상통화로 화면 속에서 만날 때면 서로가 서로의 달라진 모습을 보고 놀라곤 했다. 특히 "오 현주 머리 많이 길렀네!"라는 소리를 백 번도 넘게 들었다. 한국에선 자칭 타칭 '단발 병'에 걸렸다며, 나는 죽을 때까지 머리를 기를 수 없으리라 다짐했건만. 내가 가장 기피하는 장소가 (현지) 미용실이 되고 난 다음부터는 태평하게 머리는 쭉쭉 자랐다. 


지금은 거금을 들여 긴 머리를 볶았다. 한인 미용실에서 머리를 할 때마다 큰마음을 먹는다. 일 년 동안 일한 나에게 주는 선물 같은 의미로 머리를 한다. 미용실 가는 것이 연 년 행사가 됐다. 가끔은 턱 가까이서 찰랑이는 머리를 되찾고 싶어 현지 미용실을 도전할까 생각해본다. '한 달에 한 번씩 가면 나름 미용사분이랑 친해질 수도 있고 좋지 않을까. 체코어도 배우고, 친구도 사귀고. 머리도 망하고, 돈도 잃고.' 장단점을 오가며 내적 갈등을 이리 했다 저리 했다 반복한다. 그러다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일 년에 한 번씩 한인 미용실에 가서 안부를 묻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언젠가 체코어로 '머리 이만큼 잘라주세요. 아! 그건 너무 짧아요. 네 이 정도가 적당해요.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는 날이 오길 바라며. 도전하고 나서 꼭 후기를 남겨야겠다. 파인애플만은 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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