쓴다는 것은
쓴다는 것은 흑과 백의 세상에 회색을 찾아내는 일이다.
이건 흑이야
이건 백이야
모두가 단정 지을 때
내가 느끼는 회색은 이렇다고 고백하는 일이다.
쓴다는 것은 슬픔과 행복 사이 눈물 젖은 미소를 짓는 일이다.
이건 절망이고
이건 희망이다
누군가의 평가 앞에서
절망도 희망도 결국은 하나였음을 깨닫는 일이다.
쓴다는 것은 미움도 사랑에서 비롯되었음을 반성하는 일이다.
사무치게 사랑해야
사무치게 미울 수 있음을
내 마음은 무엇이든 그렇게 커진다는 것을 곱씹는 일이다.
쓴다는 것은 삶의 모순 속에서 기꺼이 이를 받드는 일이다.
어느 것도 완벽한 무엇은 없다고
내 삶에는 하나의 흑도 하나의 백도 없이
모두 회색빛의 장면들이 가득하다고 인정하는 일이다.
그리하여 손님처럼 찾아오는 모든 일들을
덤덤히 물 위에 띄워 보내는 일이다.
쓴다는 것은 어른이 되어 아이로 돌아가는 과정이요
아이처럼 웃고 분노하고 감사하고 사랑하고
태초의 나에게 가까워져 감이다.
그렇게 연필심은 더 짙어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