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솜씨는 정말 훔치고 싶을 정도로 좋아서 그의 손놀림을 보기만 해도 경외감이 든다. 오늘은 내가 훔칠 수만 있다면 가지고 싶은 손재주를 보유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그의 이름은 하나 하다첵, 얀 하다첵의 엄마이자 안드레이 하다첵의 아내이다. 나는 얀을 따라 그의 집을 갔을 때 처음 하나를 만났다. 하나는 둥근 눈에 둥근 얼굴에 단발머리를 하고서 나를 반겼다. 전체적으로 웃는 얼굴이 활짝 핀 꽃 같았다. 그런 느낌은 괜히 풍기는 것이 아니었는데, 하나의 집 역시도 그렇게 꾸며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집에 처음 들어섰을 때는 유럽 인테리어 전시장을 들어온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집 안 구석구석 말린 꽃이며 작은 도자기며 벽에 걸어놓은 조그마한 달력과 직접 만든 쿠션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어떤 공간은 그 자체만으로도 사람을 황홀하게 하는구나. 잠깐 동안은 내 소개를 하는 것도 잊고 집을 살펴보았더랬다.
그중에서도 내가 사진으로 남길 만큼 예쁜 장소가 있었는데, 이 곳은 소파와 티브이가 있는 중앙 거실이었다. 중앙에 놓인 탁자 위에는 튤립이 꽂인 화병이 놓여 있었고 그 밑을 포근해 보이는 카페가 덮고 있었다. 하얀 커튼이며 밑으로 내려온 조명이며 옆에 세워진 큰 화분까지 모든 것이 완벽해서 이 곳에서는 소파에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한 번은 하나가 나를 이 곳에 불렀다. 얀이 컴퓨터를 고쳐야 해서 한 시간 정도 작업을 해야 하니 그동안 나랑 같이 있자는 것이었다. 그러며 하나는 주섬주섬 봉투를 꺼냈다.
그 봉투 안에는 실과 바늘이 잔뜩 들어 있었다. 모두 뜨개질을 위한 것들이었다. 굵은 실, 덜 굵은 실, 종이 같은 실, 털이 날리는 실, 색깔이 섞인 실 등등 여러 뭉치의 실이 있었고 굵은 바늘, 얇은 바늘, 쇠 바늘, 나무 바늘, 플라스틱 바늘 등 여러 종류의 바늘이 꽂혀 있었다. 중학교 때 수행평가로 딱 한 번 뜨개질을 해 본 나는 그렇게 많은 종류의 실이 있는지도 몰랐고 바늘에 숫자가 있는지는 더욱 몰랐다. 무엇보다 하나가 보여준 바늘은 하나같이 고유한 숫자가 쓰여 있었는데, 하나 말에 따르면 숫자에 맞는 실과 바늘을 써야 한다고 했다. 실도 숫자가 있다니. 스물여섯 해만에 그러한 사실을 깨달은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하나는 그 바늘과 실 뭉텅이를 보여주더니 어디론가 달려가서 이번에는 스웨터 뭉텅이를 가져와 보여주었다. 그 스웨터들은 족히 열 벌은 되어 보였는데 모두 짜임새가 다르고 소매의 모양새도 달랐다. 하나는 각기 다른 스웨터를 하나씩 펼쳤다가 접었다를 반복하며 어떤 디자인으로 만든 스웨터인지를 설명했다. 나는 이 모든 옷들이 하나의 손을 거쳤다는 것을 알 수 있었는데, 옷을 설명하며 뿌듯해하는 하나의 표정 때문이었다.
나는 그런 하나의 표정을 보며 물었다.
와... 이걸 다 직접 만드신 거예요? 대단하세요. 어떻게 배우게 되신 거예요?
하나는 그 질문에 뜻밖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내가 어렸을 때는 이 나라가 공산주의였어요. 그래서 예쁜 옷을 입고 싶어도 살 수가 없는 거예요. 다 나라에서 파는 옷들은 하나 같이 질도 떨어지고 마음에 안 들고 다 똑같이 생겼고. 그래서 우리 엄마가 나를 위해서 카디건을 만들어주기 시작했어요. 나는 그것을 보고 배웠고요. 우리는 옷을 만들어 입었는데 그 덕분에 지금 스웨터도 잘 만들고 좋은 취미가 생겼지 뭐예요.
하나는 그러며 스웨터들을 쓰다듬었다. 나는 하나의 손을 물끄러미 보며 그의 엄마가 그의 딸을 위해 뜨개질했을 것을 생각했다.
지금으로부터 30여 년 전만 해도 체코는 공산주의와 사회주의 체제의 나라였다. 이 곳은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냉전시대를 겪으며 약 45년 가까이 그 체제를 유지했다. 이후 1989년에 혁명을 통해 첫 선거를 하며 민주주의 자본주의 체제로 바뀌었다. 하나가 1960대에 태어난 사람임을 감안하면 유년기를 모두 공산주의 사회주의였던 시절에 보낸 것이었다. 한창 꾸미고 싶을 나이에 원하는 옷을 살 수 없으니 하나하나 만들어 입었을 하나와 또 그것을 가르쳤을 하나의 어머니가 그려졌다.
그제야 그의 뜨개질이 왜 이리도 뛰어난지 조금 짐작이 갔다. 하나의 뜨개질은 취미의 경지를 넘어선 어떤 자부심과 같은 무언가가 있었는데, 그에게 털실과 바늘은 취미 이상의 삶의 일부인 것이었다. 스웨터를 쓰다듬는 손은 둘도 없는 자식을 쓰다듬는 것 같았다.
하나는 나를 잡고 그의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뜨개질을 알려주기 시작했다. 손에 실을 감고 구멍에 바늘을 이리저리 넣어 돌리면 코가 완성되었고 그 코에 바늘을 푹 찌르고 실을 감으면 한 땀을 지어졌다. 정말 장인정신으로 한 땀 한 땀 지어 입는 옷은 얼마나 소중할까. 내가 그렇게 옷을 지어 입는다면 나는 구멍이 나더라도 그 구멍을 기워 입지 않았을까 상상을 했다. 자본주의의 풍족 속에서 헤지 기도 전에 버린 옷들에게도 안부를 물었다. 그녀의 솜씨 덕분에 해 본 신기한 상상이었다.
이후 나는 내 손으로도 무언가를 만들어보는 시도를 했는데 작은 화분 받침을 만들고는 진작에 관두었다. 그래서 훔칠 수만 있다면 그녀의 솜씨를 훔쳐보겠노라 기이한 상상만 하며 글을 쓴다. 도둑놈의 심보. 자본주의의 영향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