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기 불안과 완벽주의가 강점에서 괴로움이 되기까지

불안을 대비로 바꾸며 살아온 사람

by 두루박

사람은 저마다 타고난 기질과 천성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어떤 기질은 삶을 단단하게 지탱해 주는 힘이 되기도 하고, 또 어떤 순간에는 스스로를 괴롭히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기질과 천성에는 예기 불안과 완벽주의 성향이 있습니다. 이 두 가지가 함께 있다 보니, 앞으로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문제에 대해 미리 불안을 느끼고 그 불안을 없애기 위해 여러 대안책을 사전에 고민하며 최대한 완벽하게 준비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실제로 나는 그렇게 살아왔고, 생활하는 데 큰 문제는 없었습니다. 오히려 이러한 성향 덕분에 준비성이 철저하다, 꼼꼼하다, 성실하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주변 사람들로부터 자주 들었습니다. 어떤 일을 맡더라도 미리 상황을 가정하고 대비하는 자세는 사회생활에서도 큰 도움이 되었고, 학창 시절의 공부나 졸업 이후의 진로 선택, 그리고 삶의 미래를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실제적인 성과로 이어졌습니다.

에너지와 열정, 그리고 젊음이 충분하던 시기에는 이 성향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나는 그것을 나만의 강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문제를 미리 파악하고, 그에 대한 대비책을 세우고, 실수가 없도록 준비하는 태도는 나를 안정적으로 만들어 주었고, 삶을 통제하고 있다는 감각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며 한 가지 질문이 마음속에 생겨났습니다.
“왜 예전에는 괜찮았던 이 성향이, 지금은 괴로움으로 느껴지는가?”

아마도 그 이유는 너무 많은 에너지를 이 성향에 쏟아왔기 때문일 것입니다. 예기 불안은 끊임없이 미래를 앞당겨 살아가게 만들고, 완벽주의는 그 미래를 통제하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게 합니다. 문제는 실제로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해 이미 감정과 에너지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젊을 때는 그 에너지 소모가 크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추진력처럼 작용했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며 체력과 정서적 여유가 줄어들자, 같은 방식의 사고와 행동이 점점 부담으로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준비가 끝나지 않으면 쉬지 못했고, 대비가 충분하지 않으면 불안이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나의 강점이던 성향은 어느 순간부터 나를 쉬지 못하게 만드는 구조가 되었습니다.

문제는 기질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기질을 다루는 방식에 있었습니다. 예기 불안과 완벽주의는 분명 나를 여기까지 오게 만든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그대로 유지한 채 나이 들어가는 삶까지 끌고 가기에는, 감당해야 할 정서적 비용이 너무 커졌던 것입니다.




기질은 바꿀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이해하고 다스려야 할 대상입니다. 한때 나를 성장시키던 성향이 어느 순간 괴로움으로 느껴진다면, 그것은 실패가 아니라 삶의 국면이 바뀌었다는 신호일지도 모릅니다. 이제는 나의 기질을 부정하기보다, 그 성향이 요구하는 에너지의 크기와 나의 현재 상태를 함께 바라보는 일이 필요함을 느끼게 됩니다. 이 인식이 앞으로의 삶을 조금 더 편안한 방향으로 이끌어 줄 것이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