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기 불안과 완벽주의가 괴로움으로 변한 지점

자연의 영역까지 대비하려 했던 이유

by 두루박

앞선 글에서 예기 불안과 완벽주의라는 성향이 나의 삶을 어떻게 지탱해 왔는지를 이야기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그 성향이 왜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큰 괴로움으로 다가오게 되었는지, 그 원인을 차분히 정리해보고자 합니다.


---

본문

내가 이 성향으로 인해 괴로움을 느끼게 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중 하나는 내가 감히 자연의 영역에까지 도전하려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젊은 시절에 느끼는 예기 불안은 비교적 단순합니다. 시험을 앞둔 불안, 취업을 준비하며 느끼는 불안 등은 그 원인이 비교적 명확하고, 준비와 대책을 통해 실제로 해소가 가능한 경우가 많습니다. 공부를 하고, 자격을 준비하고, 정보를 수집하면 그 불안은 어느 정도 줄어들었고, 준비한 것들은 실제로 유용하게 작동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가며 불안의 성격은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직장 생활에서 인정받아야 한다는 불안은 그 범위가 매우 방대합니다. 하나의 업무를 수행할 때도 결과뿐만 아니라 과정, 평가, 주변의 시선까지 고려해야 하고, 완벽주의와 예기 불안 성향이 결합되면서 준비해야 할 요소는 끝없이 늘어납니다.

더 큰 문제는 인간관계입니다. 직장에서의 인정은 업무 능력만으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상급자와의 관계, 동료와의 관계, 조직의 분위기까지 영향을 미칩니다. 게다가 지금의 상급자가 앞으로도 같은 자리에 있을지, 조직이 어떻게 변할지, 누가 나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이 모든 것은 명백히 자연의 영역입니다.

그럼에도 나는 그 영역까지도 준비하고 대비하려 했습니다. 나의 성향은 “준비하면 통제할 수 있다”는 경험을 이미 여러 번 성공으로 증명해 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람과의 관계, 알 수 없는 미래까지 완벽하게 대비하려는 시도는 결국 너무 많은 에너지를 요구했고, 그 에너지는 고스란히 스트레스와 괴로움으로 돌아왔습니다.




돌이켜보면, 괴로움의 시작은 능력의 부족이 아니라 영역의 착각이었습니다. 준비와 대비로 다룰 수 있는 인간의 영역과, 아무리 애써도 통제할 수 없는 자연의 영역을 구분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 인식이 이후의 사고 전환을 위한 중요한 출발점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