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에서 시작되는 변화
자연의 영역까지 통제하려 했던 시도는 결국 또 다른 괴로움을 낳았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그 괴로움의 구조와, 그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내가 도달하게 된 결론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문제는 예측하고 준비했던 미래가 나의 예상과 전혀 다르게 전개되었을 때 발생했습니다. 그때 나는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준비가 부족했다고, 대책이 잘못되었다고 스스로를 자책했습니다. 마치 내가 충분히 노력했다면 모든 결과를 통제할 수 있었을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과연 인간이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요?
5년 전, 10년 전의 나를 떠올려 보면 그때 상상했던 현재의 모습과 지금의 나는 얼마나 일치하고 있는지 묻게 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 것입니다. 나 자신조차 내 미래를 정확히 알 수 없는데, 다른 사람의 선택과 관계의 흐름까지 예측한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럼에도 나는 자연의 영역까지도 대비하려 했고, 그 시도가 실패할 때마다 “왜 더 잘 준비하지 못했을까”라며 자신을 몰아붙였습니다. 이는 결국 내가 모든 것을 준비할 수 있는 존재라는 착각, 다시 말해 오만에서 비롯된 태도였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의 나는 나의 성향을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이 성향 덕분에 얻은 자신감과 성취가 분명히 있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성향 자체가 아니라, 그 성향으로 인해 생겨난 괴로움의 굴레였습니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성향을 바꾸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기질과 성향을 바꾸는 것은 인간이 수십만 년에 걸쳐 형성해 온 본성을 개인의 의지로 바꾸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수행자나 종교인조차 평생을 걸려 도전하는 영역을 일반적인 삶 속에서 바꾸려는 것은 현실적인 목표가 아닙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단 하나입니다.
나의 성향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예기 불안이 있고, 그 불안을 줄이기 위해 대비하고 준비하려는 완벽주의 성향이 있는 나 자신을 부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 이해와 수용이야말로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한 첫 번째 행동 변화입니다.
성향을 없애려는 노력은 또 다른 괴로움을 낳을 뿐입니다. 그러나 성향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순간, 그 성향이 만들어내는 괴로움의 구조는 비로소 보이기 시작합니다. 변화는 성향을 고치는 데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대하는 태도를 바꾸는 데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이제는 분명히 느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