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은 일을 하면서도 과정에 집중하는 유일한 방법
그렇다면 질문이 남습니다. 현실에서 하기 싫은 일을 하면서도 과정에 집중할 수는 없는 것일까요? 직장생활처럼 피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결과를 붙잡지 않고 편안한 마음을 유지할 수는 없는 것일까요? 저는 그 가능성이 ‘기술’이 아니라 ‘관점’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삶의 기준이 어디에 놓여 있는지가 바뀌어야 비로소 가능해집니다.
하기 싫은 일을 하면서도 과정의 행동에 집중하는 방법이 있을까요?
저는 그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 방법은 일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는 데서 시작됩니다.
우리가 하기 싫은 일을 할 때 참고 버티는 이유는 결과를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가 삶에서 중요하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직장에서 상사가 지시한 일을 잘하고 싶어 열심히 업무를 수행한다고 해보겠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업무를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지만,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사실은 “인정받고 싶다”는 마음입니다.
그리고 인정받고 싶은 이유는 직장생활에서 그것이 나를 평가하는 기준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 평가가 곧 내 가치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이 순간부터 사람은 빠져나오기 힘든 굴레에 들어갑니다.
왜냐하면 타인의 인정과 시선은 내가 행동할 수 없는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즉 자연의 영역입니다.
자연의 영역에 내 삶의 가치를 걸어버리면, 기쁨과 괴로움이 필연적으로 따라옵니다. 인정받으면 기쁘고, 인정받지 못하면 괴롭습니다. 결국 삶은 타인의 반응에 따라 흔들리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의 근본적인 가치는 다른 곳에 있어야 합니다.
자연의 순리 관점에서 인간에게 가장 큰 가치는
괴로움과 불편함이 없는 편안하고 안정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자연의 순리 속에서 이보다 더 큰 가치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순간순간의 일들이 내 근본적인 가치를 대변할 수 없음을 인식해야 합니다.
타인의 인정이 내 근본적인 가치를 대변할 수 없음을 인식해야 합니다.
남이 바라보는 시선 또한 내 근본적인 가치를 대변할 수 없음을 인식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기 싫은 일을 할 때, 스스로에게 질문할 필요가 있습니다.
“나의 삶의 가치가 타인의 인정과 시선에 있어야 합니까?”
“그들의 인정이 내 삶의 근본적인 가치를 대변합니까?”
그 질문이 진심으로 이해되기 시작하면, 관점이 바뀝니다.
직장생활에서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누군가 나를 한심하게 보더라도,
내가 지금 괴로움과 불편함 없이 편안하고 안정된 상태라면
나는 내 삶의 근본적인 가치를 지키며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자연의 순리를 따르는 삶입니다.
그래서 지금부터라도 타인의 평가가 신경 쓰여 괴로움이 생긴다면 스스로에게 말해보아야 합니다.
“내 삶은 괴로움과 불편함이 없는 편안하고 안정적인 삶을 지키는 데 가치가 있습니다.”
“당신들의 평가나 인정이 내 삶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내 삶의 근본적인 가치를 위해 지금 현재의 나 자신을 보고, 지금의 나의 행동에 집중하겠습니다.”
“나머지는 모두 자연의 순리에 흘려보내고 맡겨버리겠습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다면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물론 한순간에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바뀌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운동을 통해 몸을 단련하듯, 이 또한 꾸준히 연습하고 훈련해야 합니다.
그것을 특별한 수행이나 고행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배고프면 밥을 먹듯이, 괴로움이 생기는 순간마다 반복해서 연습하면 됩니다.
하기 싫은 일을 하면서도 과정에 집중하는 방법은 결국 하나입니다. 삶의 근본적인 가치를 타인의 인정과 결과에 두지 않는 것입니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평가와 미래에 내 삶을 맡기면, 기쁨과 괴로움은 반드시 반복됩니다. 그러나 나의 삶의 기준을 ‘편안하고 안정된 상태’에 두면 지금의 행동으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그렇게 반복하다 보면 어느 순간, 사람은 결과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기 삶의 근본적인 가치를 지키며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