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아 Feb 17. 2023

이월의 인연

with my puppy

몇 년 전만 해도 강아지와 아파트에서 동거할거라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어려서부터 개는 집 앞에 목줄을 차고 외부인을 경계하고 집을 지키는 역할을 하는 동물로만  봤으니까요. 어찌 됐던, 이제 우리의 동거는 곧 일 년이 돼 갑니다. 함께 살아보니 그는  집안에 기쁨을 가져다주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사춘기를 지나고 있는 아들, 쉰이 넘은 남편도 그리고 저도 각자는 서로에게 조금씩 지쳐가고 있아 보더라구요. 사소한 일들로 다투고  크게 언성을 높이기도 했으니까요. 소중하다는 생각만으로 살기엔 뭔가  각자 보고 싶은 방향만을 보고, 너그러이 곁을 내주지 못하고 있었으니까요.  이런 시기에 강아지가 왔는데, 처음엔 일 거리들이 많아 귀찮다고 , 산책도 매일 하다 보니 힘들다고 느껴 입양을 잘한 일인지 후회도 좀 되었지요.  요즘은 어떠냐고요? 길 가다 강아지들을 보면 그저 웃음이 납니다. 우리 집에 있는 녀석이 뭘 하고 있을까 하고 홈캠으로 들어가 거실 소파에 자고 있는 모습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습니다. 사람들을 만나 나랑은 이야기가 맞지 않다고 느낄 때, 시간이 낭비스럽게 느껴질 때는 집에 가서 녀석을 쓰다듬는 애틋한 행위만이 기다려질 때가 있습니다.

  우리 집 강아지는 아파트를 지키는 역할을 하진 않습니다.   그보다 더 큰 역할을 합니다. 이 녀석이 배를 드러내 눕거나 무릎을 베고 눕습니다. 전보다 가족들 간에 할 말도 많이 늘었습니다. 주로 강아지 이야기가 많지만, 이렇게 이야기가 시작되면 자연스레 하고 싶은 이야기들도 이어져가고 점차 냉랭하던 분위기가 풀어지고 있습니다. 녀석을 만지고, 터그놀이를 해주고, 하루에 두 번씩 매일 산책을 나갑니다. 가족들과 함께 나가기도 하는데 녀석이 뛰어가는 모습을 보면 엉덩이가 귀여워 웃음이 나고, 애견 운동장에 가서 개들과 함께 노는 걸 보면서, 마치 어려서 아이를 키우던 기억이 소환되곤 합니다. 제 집에 둘째가 온 것일까요? 매일 아침 6시 30분 경 어김없이 모닝콜하러 우리방을 노크하며 하루가 시작됩니다. 저녁엔 잠든 녀석을 한 번 만저 주고 잘 자라고 말하며 하루가 끝납니다. 같은 밥상에 앉아 밥을 먹지는 않지만 한 집에서 밥을 먹는 사이 식구가 된 것입니다. 그런 만큼 정도 들어가고 있나 봅니다. 눈빛을 보면 녀석이 원하는 바를 조금씩 알 것 같습니다.  그저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됩니다. 아흔아홉 번 잘하다 한 번 말 잘 못해 그간의 선들을 까먹는 인간과는 다릅니다. 의뭉스럽지 않아 더욱 좋습니다. 투명한 이 녀석, 제 감정을 숨길 필요도 없다는 말이지요. 언어는 달라도 우리는 지금 소통하고 서로 의지하고, 이 삶을 함께 견뎌주는 존재라 믿고 싶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이월의 문(moo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