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을 다한다는 것이 어떤 이에게는 감당하기 힘든 일이기도 하다.
"주사님, 초면에 이런 말씀 드리기 좀 그런데.. 혹시 찍히셨어요?"
하반기 정기인사발령사항이 게시판에 올라왔다.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나의 전임자와 후임자가 정해졌고, 이제는 신규라고 할 수도 없는 5년차인 나는 아직도 이 어수선하고 불안한 분위기에 익숙해지지 못한채 인수인계를 받으러 갔다.
그리고 저 말은 나와 만난지 10분도 되지 않은 내 예비전임자가 나에게 했던 말이었다.
내가 하게 될 업무가 행정처분을 내리는 업무라 쉽지 않을거라고 예상을 하고 나름 단단히 마음의 준비를 하고 갔지만.. 인수인계를 받으면 받을수록, 업무에 대해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내 머릿속은 복잡해져갔다.
전임자는 본인도 근무하면서 다양하고 고통스러운 업무를 했었지만 내가 맡게 될 이 업무는 가히 최악이라는 표현을 써가면서 나에게 어쩌다 이 곳으로 오게되었냐는 말을 몇번이나 반복했다.
원래 인사가 나고나면, 당연히 익숙하지 않은 업무이기에 일주일은 울면서라도 열심히 야근을 할 생각으로 다녀야겠다고 불안한 마음을 달랬다.
하지만 우선 걸림돌이 있었다. 나는 면허는 땄으나 운전에 익숙하지 못한 장롱면허의 소유자이다.
오죽하면 개인연수를 받고도 겁이나서, 동생에게 연수를 받다가 인내심 많은 동생에게 "누나는 그냥 자율주행자동차가 나올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좋겠다"는 말까지 들을 정도로 겁이 많아서 당장 운전하는 것은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내가 해야할 업무 중 가장 주된업무가 몇십개의 관내 기관을 출장다니며 행정처분을 내릴 사항을 파악하고 행정처분을 내리는 일이었다.
내 전임자는 운전을 할 줄 알았기에 하루에 출장이 2개씩 잡혀있었는데 우선 나는 기관들에 연락해 그 일정을 다시 조율해야 하는 상황이었고 최소 두달은 하루에 한 곳씩 출장을 가야되는 일정이었다.
하나하나 해보면 될거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5년이나 이곳에서 버티며 나름 맷집도 생겼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보다도 문제가 되었던 것은 출장을 가서 해야할 일이었다. 내가 내리는 행정처분은 강도가 셀 경우 업체를 문닫게 할 수도 있는 사항이었기에 매우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전임자는 행정처분을 내리는 것에 있어서 "주사님이 책자 보시면 돼요~ 잘 모르시겠으면 팀장님이랑 상의하시구요. 아 그런데 팀장님이나 과장님은 주사님 업무에 크게 관심은 없으세요. " 라는, 나에게는 너무 무책임하게 느껴지는 말을 남긴 채 자신의 업무를 인계받으러 갔다.
그리고 다음날 일이 익숙해질때까지는 출장을 몇번 같이 나가줄테니 나가서 무엇을 확인해야하는지 보라고 했던 그는 당장 다음날부터 죄송한데 본인이 바빠서 같이 나가기 힘들 것 같다라며 난색을 표했고 난 의지할 수 있는 곳이라곤 전임자밖에 없었기에 시간을 조정해서라도 같이 나가주면 안되겠냐고 사정을 해서 겨우겨우 두번째 출장을 같이 나갔다.
다음날, 나는 업무처리에 대해 팀장님과 상의를 좀 하고 싶었다. 아무리 팀장님이 팀원들의 업무 하나하나를 잘 모르신다고 해도 이렇게 인수인계를 받고는 나 혼자 판단을 하고 행정처분을 내릴 수 없을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팀장님은 "원래 00씨(전임자)가 두서가 좀 없어. 00씨가 찾아가면서 해야 해."라며 귀찮아하는 기색을 비치셨다. 전임자 말대로 팀장님은 나의 업무와 나에겐 관심이 없으셨다.
사내강사로도 활동중인 그는 체크무늬의 양복을 잘 차려입고 머리를 손질하는 것에 더 관심이 있어 보였다.
내가 그동안 너무 좋고 잘 챙겨주시는 팀장님들을 많이 만나서였던건지, 너무나 막막했다.
그리고 화장실에 다녀왔을 때 옆 직원이 대신 받아준, 내가 다시 전화해야 할 민원전화사항들을 본 순간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눈물이 흘러내렸고 숨이 답답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는 운전을 당장 못하는 것도, 겁이 너무나 많아서 누군가와 업무를 상의하고 싶었던 것도 다 부족한 나의 역량이 맞다. 죽고싶은데 밥은 많이 먹고싶다는 민원인에게 마음속으로는 저도 죽고싶어요를 외치며 적절한 서비스를 바로 안내해주지 못하며, 내가 담당자가 된 사업의 품질에 불만족하는 민원인의 얘기를 20분동안 들으며 울면서도 그의 심기를 건드리면 안된다는 강력한 의지로 조심스럽게 어떻게 처리를 해드리면 좋을까요 라고 물어보며.. 나는 정말로 살고싶지 않았다.
이렇게 몇달은 버텨내야할텐데 자신이 생기지 않았다. 나 혼자서 감당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처음으로 내가 왜 이렇게 시험에 합격해서 이 기관과 악연을 맺었을까 하는 나 자신에 대한 자책까지 들었다. 그냥 도망쳐버리고 싶었고 사라져버리고 싶었다. 그리고 몇년동안 생각만해왔던 사직에 대한 이야기를 팀장님께 드렸다. 팀장님은 너희 집에 돈이 많은게 아니라면 어떤 회사를 들어가도 똑같을 것이다. 라는 이야기를 하시며 과장님께 가서 이야기를 하라고 하셨다. 뵌 지 며칠 안된 직원이 사직 이야기를 하자 과장님은 안타까워하시며 휴직 이야기를 하셨고 마지막은 팀장님과 상의해보라고 하셨다. 사직서를 쓰러 가는 길에 예전에 같이 근무했던 팀장님을 만났다. 옆 팀 팀장님이셨는데 잘 지내고 있냐는 말에 난 울면서 웃으면서 지금 사직서 쓰러간다고 이야기했고 팀장님은 대책없이 사직은 하지 말고 휴직을 생각해보시라며 30분이 넘게 나를 설득하셨다. 내가 뭐라고 이렇게까지 설득을 해주실까 감사한 마음도 들었지만 그때의 나는 분노와 불안 그리고 감당할 수 없는 허세로 휩싸여 인사과에 가서 사직서를 쓰고 왔다.
사무실을 나가던 날, 팀장님은 저녁으로 라면을 끓인 직원들과 국장님 앞에서, 프로그램에서 게스트를 소개하듯 "오늘 00씨가 사직서를 냈습니다! 아 국장님, 이 자리가 민원전화도 센 게 많이 오고 해야할 일도 많으니 사람을 빨리 채워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라고 이야기를 했다.
그런 자리면 애초부터 역량이 되는, 적어도 운전이라도 자유자재로 하고 센 민원을 응대할 수 있는 직원을 받지 하는 원망이 들었다.
국장님께 조용히 말씀드렸으면 했는데.. 아직 어떤 결재도 나지 않았는데 마지막까지 다른 사람들 앞에서 창피를 주며 나를 보내는 팀장님을 보며 갑자기 화가 나기 시작했다. 익명의 힘을 빌어 이야기하자면 나는 불안장애와 우울증이 심해 병원에 오랜기간 내원해왔다. 완치라는게 없는 것이 우울증과 불안장애이기에 나름 장악되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치며 살아오고 있었는데 요즘은 그게 쉽지 않았다. 내 상태라면 두 달 진단서를 제출하고 병가를 들어갈 수 있는 상황일 것 같았다. 그런데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았고 내가 없으져야 빨리 다른 사람이라도 채워줄거라고 생각하여 사직서를 낸 마음도 있었는데 팀장님의 공개적인 말은 나에게 너무나 상처가 되었다. 그리고 대책없는 사직서를 내고 집에 돌아오고서야 이성을 되찾은 나는 부모님과 주변 사람들의 설득으로 사직서를 철회되고 6개월간의 휴직을 하게 되었다.
이런 일이 있고 후련해야 하는데 이상하게 나는 며칠을 무기력한 채로 그와중에 미친듯이 먹어대며 나 자신을 자책했다.
좀만 버텼어야 했는데.. 남들은 다 하는 일을 왜 못버텼을까.. 하는 자책이 가장 많이 들었고 복직하지 못할 것 같기에 뭐라도 빨리 찾아서 다른 진로를 위한 준비를 해야하는데 힘이 나지 않았고 부모님 눈치가 보였다.
옆 과에서 근무하는 눈치없는 직원이 우스갯소리로 "자기는 오래 살거야. 욕을 하도 먹어서" 라는 카톡을 보냈을 때 그 한마디에도 무너질 정도로 나는 너덜너덜해진 상태였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나 자신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벌어진 일들이고 그때 당시의 나는 견딜수가 없었기에 나는 나왔는데 다른 사람들의 기준에 맞추어 계속 나를 비교하고 자책하며 못살게 구는 내 자신이 어쩌면 나에게 상처가 되는 말을 했던 팀장님보다도 나를 함부로 대하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준 것도 맞고 나약한 것도 맞다. 하지만 일하면서 그동안 나보다 더 이기적으로 행동한 사람들을 많이 보기도 했기에 나도 그들 중 하나로 며칠 이야기되다 얼마 후 그들의 기억속에서 사라져버릴지도 모른다.
아직은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을 만큼 자존감이 높지는 못하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던 내 몸과 마음을 조금만 쉬게 해줘보자 하는 마음이 들었다. 쉬는것에 죄책감을 느끼지 말고 좋은 것을 먹고 하루종일 게으름도 부려가며 조금만 더 살아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오늘도 열심히 한시간정도 뛰고와서 맛있는 식사를 했다.
내 마음을 털어놓고 싶은 마음에 글도 써보기로 했다. 나름 정신과 장기고객으로서 느꼈던 우울증, 불안에 관한 이야기, 나름 자유로운 영혼을 가지고 있다고 이야기를 듣는 내가 공무원이라는 보수적인 조직에서 지내며 겪었던 에피소드들도 한번 써보고자 한다.
이 이야기들이 나와 비슷한 고민을 가지고 있는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공감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