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직 공무원은 이런 일도 합니다.

하늘에서 내리는 눈은 더이상 예쁘지 않고 그저 원망스러운 존재가 됩니다.

by 솔직히

요며칠 비가 많이 왔다. 집중호우로 인해 전국적으로 많은 피해가 생겼다는 기사를 보고 마음이 속상하고 편하지 않았다. 세차게 내리는 비를 보며 내 안에 생겨버린 비상근무에 대한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오기도 했다.


공무원이 되기 전 나는 공무원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9시에 정시 출근해서 한산한 사무실에서 간단하게 서류를 발급하고 6시가 되면 퇴근을 하는, 걱정없고 마음편한 모습이 내 상상 속 공무원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런 내 환상은 임용되고 3일만에 깨지고 말았다. 눈을 치우러 새벽 5시까지 출근하라는 문자를 시작으로 말이다. (나는 1월에 임용이 되었는데 그 겨울엔 일주일에 3번은 폭설이 내렸다.)

공무원은 여름에 폭우가 오거나 겨울에 폭설이 와서 경보나 주의보가 발령되면 1시간 내에 비상근무에 응소를 해야 한다. 즉 출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눈이나 비는 예정된 시간에 오지 않고 갑자기 오기 때문에 만약 하늘이 꾸물꾸물하다 싶으면 그날은 집에 가는 것을 포기하거나 집에가서 씻고 바로 나올 각오를 해야 한다.


생각보다 공무원은 본인의 고유업무 외에 해야하는 일이 많았다.

주변에서는 자조적으로 "우리는 공노비다"라고 이야기할 정도로, 비상근무 외에도 동원되는 일들이 종종 있었는데 그 중 기억에 남았던 일들을 소개해보자면..




1.

날씨가 안좋으면 제 마음도 무너집니다.. 눈, 비가 오면 출근해야 하는 공무원의 비상근무


나는 1월에 임용이 되었다. 임용식 당일에 근무할 곳에 가서 인사를 드리고 뻘쭘하게 앉아있다가 다음날부터 바로 업무에 투입이 되었다. 인감증명서가 뭔지도 몰랐던 나는 3일만에 인감 등록, 인감증명서 발급, 인감증명서 대리발급, 인감도장 변경 등 다양한 인감 파생 업무를 해내고 있었다. 매번 새로운 종류의 민원들을 마주 했지만 옆에 있는 직원들도 민원을 보면서 나를 알려주는 상황이었길래 매번 물어보기가 미안하고 눈치보였다. 한달은 매일을 울면서 퇴근했던 것 같다. 그런데 하루 온종일을 시달리고 집에서 씻고 자려는데 문자가 하나 왔다. 오늘 밤부터 눈이 많이 올 예정이니 내일 새벽 5시까지 출근하라는 문자였다.

당시 근무지는 집에서 걸어서 50분 정도 걸리는 곳이었는데, 대중교통을 이용하기에는 위치가 애매하고 나는 운전을 못해서 걸어다니고 있었다.

새벽 5시까지 출근하려면 4시에 출근을 해야하는건가..

안그래도 업무가 익숙하지 않아 정시에 출근하는 것도 힘든데 눈을 치우라고 차편도 없는 새벽에 출근하라는 연락이 너무 원망스러웠다.

딸이 공무원이 됐다고 좋아하셨던 부모님은 생각보다 아침에 태워다주시겠다고 하셨지만 눈이 많이 오는 미끄러운 도로를 운전해달라고 하는 불효자식이 되는 것 같아 꿋꿋하게 걸어가겠다고 했다.

(하지만 결국 눈이 너무 쌓여 걷기조차 힘들어서 부모님의 차를 타고 출근했다. )

아직 해도 뜨지 않은 어스름한 새벽, 먼저 도착한 직원과 동장님은 넉가래를 들고 주변을 쓸고 계셨다.

(열심히 눈을 푸시는 동장님의 뒷모습을 보았을 때, 그때 탈출했어야 하는데.. 하는 생각이 지금도 종종 든다.)

나도 내 키보다 훨씬 큰 넉가래를 들고 열심히 따라서 눈을 쓰는 척을 하기 시작했다. 눈으로는 눈사람이나 만들어봤지, 쓸어보기는 처음이라 잘 쓸리지도 않았다. 눈을 치워 한참동안 길을 내고 뒤를 돌아봤을 때, 다시 눈이 쌓여서 원상복구된 도로를 보자니 괜히 화가 났다. 일을 할 때 효율성을 상당히 중시하는 나에게 이 일은 효율성이 0%는커녕 마이너스인 업무였다. 몇시간 눈을 쓸고 눈이 소강상태에 이르자 직원들은 하나 둘 사무실에 들어가 물을 올려 컵라면을 먹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 나는 일단 겨울이 싫어졌다. 눈이 온다는 예보가 있으면 혹시라도 출근하라는 연락을 못받을까 핸드폰을 진동모드에서 소리모드로 바꾸고 잠도 푹 잠들지 못했다.

하지만 눈이 전부가 아니었다. 여름 장마철엔 퇴근하자마자 9시까지 출근하라는 전화를 받고 비를 뚫고 출근해 사무실에서 밤을 새기도 했고, 건조한 봄엔 산불방지를 위해 돌아가면서 주말에 사무실에 출근했다.

폭우와 오는 어느 밤엔 솔직히 좀 무서웠다. 장화까지 야무지게 챙겨신고 나갔는데도 빗물이 장화 속으로 다 들어올만큼 비가 많이 오던 날, 지나다니는 사람은 거의 없고 다리 근처의 천은 거의 다리만큼 비가 차올라서 곧 있으면 넘칠 것 같은데 이러다가 내가 잘못되면 나의 안전은 누가 책임져줄까 하는 불안감이 들었다.

이렇듯 날씨에 따라 주말출근을 하거나 퇴근 후 다시 출근을 해야할 수도 있기에 나는 날씨에 상당히 예민해졌다. 하늘에서 무언가가 내려온다는 소식이 들리면, 그날 하루 퇴근 후 집에가서 편히 쉬겠다는 내 기대도 무너졌었다.



2.

차출되는 각종 행사, 그 중의 꽃은 선거

공무원은 생각보다 각종 행사에 차출이 많이 되었다. 작게는 공무원 시험감독부터 각종 시,군 체육대회와 같은 행사까지.. 공공과 관련된 행사들에는 웬만하면 차출되는 것 같다.

그 중 나는 선거가 단연 차출의 꽃(고통스러움의 꽃)이라고 생각한다.

선거가 있을때는 행정복지센터에서 근무하면 안된다는 농담반 진담반의 말이 있다. 행정복지센터에서 선거를 위한 준비의 대부분을 담당해서 하기 때문에 야근을 정말 많이 한다고 한다. 그나마 행정복지센터가 아닌 다른 곳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은 (선거 담당업무를 맡고있지 않는다면) 공보지 작업이나 선거교육 등에 참석하고 선거당일에만 출근하면 되니 상대적인 부담은 동 직원에 비해 덜한 편이다.

가장 국민적인 관심이 큰 대선을 나는 두번 경험했는데 하루종일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었다.

대선과 총선 그리고 보궐선거까지.. 선거의 종류가 생각보다 많아 나는 5년동안 거의 매년 선거를 경험했던 것 같다. 투표에는 사전투표와 본투표가 있는데, 둘을 비교해보자면 사전투표의 경우 전국 투표소에서 투표가 가능해서 사람이 좀 더 많이 올 수 있는 대신 기계에서 투표용지가 나오고 신분증을 확인할 수 있는 기계도 제공해주어 나름 전자적인 방법으로 빠르게 용지를 배부할 수 있다. 하지만 보통 이틀에 걸쳐 이루어지기 때문에 새벽 4시에 일어나서(투표소와 집이 멀 경우 더 일찍 일어나야 한다.) 저녁 7시는 되어야 끝나는 업무를 위해 강제 미라클모닝을 이틀이나 연속으로 경험해야하는 피로감이 있다.

반면 본투표는 주소에 따라 배정되는 투표소에서만 투표할 수 있는 대신 명부대조를 해야하므로 눈이 안좋을 경우 힘들 수 있다. (예전에 같이 근무했던 직원에게 같이 명부대조를 하기로 한 직원이 눈이 침침해서 혼자 명부대조를 하느라 너무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적도 있다.) 사전투표때 제공해주는 자동화된 기기도 왜인지 주지 않는다.

선거에는 사람들의 관심이 주목되기 때문에 하루종일 긴장되는 시간의 연속이다. 최대한 논란이 될만한 거리를 만들면 안되기에 옷도 검정색을 입는 것이 좋겠고, 무언가를 가리킬때도 손가락보다는 손을 다 펴서 가리키라는 투표소관리관님의 말을 명심했다.

올해 대선에서 투표사무원이 본인과 남편 신분증으로 두 번 투표를 했던 사건이 뉴스에 크게 보도된 것을 보았다. 투표사무소에서 유권자가 쓰러졌다는 기사를 보기도 했다. 기사가 날 만큼의 일이 일어났을 경우 그날 그 투표소의 투표감독관과 투표사무원들이 겪을 상황들은 상상만 해도 머리가 아프다. 그동안 투표사무원으로 근무하는 동안 다행히도 기사에 나거나 경찰관이 올 만큼의 일을 겪어보진 않았다. 무사히 선거업무가 끝나고 봉투에 담긴 일당을 받아가는 순간만이 선거업무를 하고 유일하게 뿌듯한 순간이다.



3.

지원금이요? 저희는 아직 전달받은 바가 없는데..

코로나가 한창 유행할 때 전국 공무원들은 비상이었다. 본인의 업무도 해야하는 와중에 자가격리자들을 관리하거나 지원금을 주는 업무에 돌아가면서 투입되곤 했다.

내가 행정복지센터에 있을 때는 지원금을 주는 업무를 했었는데 지원금에 대한 내용이 확실히 내려오지 않은 상태에서 기사가 먼저 나서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기사를 본 사람들이 행정복지센터에 가서 신청만 하면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당장 달라며 난리가 난 것이다. 며칠 내에 긴급하게 지원금 지급에 대한 구체적 내용이 내려오기는 했지만 잘못 나간 기사때문에 민원인들을 달래서 돌려보내기가 처음엔 쉽지 않았다. 원래 이 곳은 체계가 없는 곳이라는 이야기를 스스로 해주며 달랬지만 그때는 정말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긴 했었다.

당장 다음주부터 민생회복소비쿠폰을 지급한다고 하는데.. 그래도 몇 번 지원금 업무가 있었으니 이번에는 체계가 잡혀서 지급될거라는 약간의 기대를 가져본다.


한 3년 정도 전에, 코로나 자가격리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전까지 나는 자가격리자 관리도 해봤는데 물품 배달도 해야하고 자가격리자가 격리장소에서 벗어났는지를 수시로 확인해야 했었다. 내가 관리했던 할머니는 본인은 하루종일 집에 있었다고 하는데도 어플에서는 자꾸 격리장소를 이탈했다는 알림이 떴다. 처음에 할머니한테 집에 계셔야 하고 나가시면 안된다고 몇차례 이야기했더니 그 분의 자녀분께 연락이 왔다. 본인 어머니는 집에 있는데 왜 자꾸 전화를 하냐고 말이다. 그 이후부터는 전화도 받지 않으셨다. 열심히 하려다 안좋은 소리만 들어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자가격리자 관리 어플에 오류가 자주 뜨기도 한다는 주변 직원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 이후에는 문자만 간간히 남기고 관리했다. 격리기간이 끝나고 그분의 자녀분께 너무 답답해서 짜증을 내서 미안했다. 하지만 본인 어머니는 정말 집에서 계속 계셨고 그동안 고생했다는 사과가 담긴 전화를 받고 조금은 마음이 풀렸다.


이 외에도 내가 아직 경험하지 못한 다양한 지원업무들이 있을 것이다. 평소에 담당하는 업무들의 양도 적지 않은데 그 위에 얹혀지는 추가업무들은 내가 다시 이 조직으로 복직을 할 수 있을까? 에 대한 물음에 대한 확신을 떨어뜨린다. 앞으로도 행정기관에서 하는 업무들은 더 넓어질 것 같은데.. 생각이 많아지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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