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 주사님 자리에는 소금 좀 뿌려야겠어요."

feat. 나를 울게 만들었던 민원인들

by 솔직히

5년정도 공무원으로 근무하며, 나는 8개월정도를 제외하고는 모두 민원 업무를 봤다.

"공무원 업무의 꽃은 민원이다", "민원업무가 공무원 업무 중에 그래도 쉬운 업무다." 라는 말로 주변에서 민원 경력만 쌓여가는 나를 위로했다. 하지만 확인강박과 사회공포증을 가지고 있는 나에게 민원업무는 아무리 해도 익숙해지거나 편해지지 않았다.

내 앞에서 굳은 표정으로 업무처리가 빨리 완료되기를 기다리는 민원인도 괴로웠겠지만 그를 앉혀두고 조급한 마음으로 두세번 지나치게 확인하고 업무를 처리했던 나 또한 꽤나 괴로웠다.

확인강박이란 불을 꺼놓고 나왔지만 불을 켜놓은 것 같아 반복해서 확인하는 행동과 같은 강박증의 일종인데 실수하는 것을 지나치게 두려워하는 나는 나 자신을 믿지 못하고 반복행동을 하곤 했었다.

그와중에 앞에 있는 민원인의 눈치까지 살피다 보니 퇴근할때쯤 되면 나는 마치 주전자가 끓으며 김이 빠지듯 내 머릿속에서도 김이 빠져나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참 희한했던것이.. 나에게 찾아오는 민원인들은 뭐랄까.. 꽤나 난이도가 높은 민원인들이 많았다.

가끔, 정말 가끔 웃는 얼굴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라고 인자한 미소를 남기고 가는 민원인도 가뭄에 콩 나듯 있었지만 그 비율은 너무나 희소했다.

같이 일했던 직원중에 한명은 "주사님 자리에는 소금 뿌려야 될 거 같아. 왜 저런 사람들이 주사님 자리에만 오는지 몰라 ㅠㅠ" 라고 얘기한 적도 있고 심지어 동장님실에 주로 계시는 동장님마저도 오르락내리락하는 손동작을 하시며 "00씨 자리에 오는 사람들은 편차가 너무 심해. 힘들겠어"라고 공감을 해주신 적도 있었다.

가뜩이나 키가 작고, 인사이드아웃에 나오는 슬픔이를 닮은 내 인상때문인가 싶어서 같이 근무하는 직원한테 스모키 화장을 받아보기도 했고, 어깨에 잔뜩 뽕이 들어간 자켓을 입고 앉아있기도 했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원래 기억은 지날수록 미화되는 경향이 있다는데, 힘든 민원인들에게 너무 세게 데인 상처들은 굳은살처럼 여전히 생생하게 박혀버렸다. 나는 참았다 우는 성격은 되지 못해서 민원대에 앉아서 엉엉 울기도 많이 울었는데 나를 울렸던 몇 가지 에피소드를 소개하자면..


1. 더운 날 자신을 화나게 만들었으니 전화해서 사과를 할 것을 요구했던 그녀

행정복지센터 민원대에서는 다양한 업무를 한다. 단순 등,초본과 같은 서류발급도 하지만 전입신고, 출생신고와 같은 신고업무도 있고 부동산계약서에 확정일자를 부여하는 업무도 한다.

그 중 확정일자 부여의 경우 부동산 보증금과 관련된 효력을 가지기 때문에 종종 싸움이 날 때가 있었다. 이를테면 계약서 원본을 가져와야 하는데 원본은 부동산에서 가져갔기 때문에 사본에다가 해달라(왜 원본을 부동산에게 주시는건가요..?)며 우기는 사람들부터 계약서에 내용이 다 기재되어 있지 않은데 들고 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날은 매우 무덥고 습한 여름날이었다. 50대 정도 되어보이는 여성분의 번호표를 당겼는데, 다가올때부터 범상치 않은 느낌이 들었다. 확정일자를 받으러 왔다며 계약서를 내미는데, 빈칸채우기 학습지처럼 계약서에 비어있는 곳이 너무 많았다. 전산에 입력해야 하는 사항이 다 나와있지 않으니 보완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하자 임차인인 민원인은 계약서의 비어있는 곳에 열심히 무언가를 기입하기 시작했다. 계약은 임대인과 임차인이 한 것이므로 임대인 또한 이 내용을 확인해야 하는데 지금 혼자 작성하셨으므로 지금 기입하신 내용 옆에 임대인분의 확인을 받아오셔야 한다고 안내하니 갑자기 화를 내기 시작했다. 자신의 딸도 얼마전에 공무원이 되었다는 tmi를 흐뭇하게 웃으며 이야기하던 옆 창구 민원인의 표정이 그 아주머니를 보며 굳어지기 시작했다. 임대인이 지금 여기에 없는데 어떻게 하냐고 막 화를 내고 돌아가더니 국민신문고에 민원을 넣었다. 본인이 잘못한 것은 하나도 적지 않았고 더운 날 본인을 기분나쁘게 만들었으니 사과하라는 내용이었다.

날씨가 더운건 본인한테만 더운것이 아니고, 본인이 미비한 서류를 가져와서 일을 처리해주지 못한건데..

나는 잘못한 것이 없는데 (정말 양심에 손을 얹어도 나는 불친절하게 행동하지 않았다.) 왜 사과를 해야하는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 민원인은 내가 사과하려 전화를 걸었을 때 본인이 못받을수도 있으니 그럴 경우 문자를 남겨놓으면 다시 전화를 할 것이며 그때 사과하라는 글까지 친절하게 남겼다.

내가 너무 온실속의 화초처럼 곱게 자라서인걸까.. 조용히 넘어가기 위해서는 내가 사과를 하는게 가장 간단한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사과하고 싶지 않았다.

도리어 나한테 사과를 해야할 사람은 그 민원인이라고 생각했다. 실랑이하는 과정에서 그 민원인이 나에게 계약서와 신분증을 던지기도 했는데, 그 장면이 cctv에 녹화되어있다면 그걸 언론에 제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당시 그 상황을 다 보신 팀장님은 나한테 사과하고 싶지 않으면 사과하지 않아도 된다고 이야기해주셨다. 팀장님께는 내 또래의 자녀분이 있으셔서 늘 엄마같은 마음으로 나를 대해주시곤 했다. 내 멘탈이 다른 사람보다 약하기 때문에 강화할 필요성이 있다고 늘 말씀하시면서도 무슨 일이 있을때는 함께 논의해주시고 직원을 보호해주시는 팀장님이셨다. 신문고 답변을 담당하는 직원도 나를 많이 이해해주는 직원이어서 본인이 답변을 달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해주었고 그 일은 고마운 사람들 덕분에 나에게 며칠의 후유증만을 남긴 채 마무리가 되었다.



2. "어디서 호되게 당하고 나를 의심해?"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을 해준 그녀.

행정복지센터에서 소리가 크게 나는 원인 1순위는 단연코 인감증명서 관련된 상황일 것이다.

인감증명서의 효력은 가히 대단하다. 대출을 받거나 부동산이나 자동차을 매도,매수하는데도 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특히 타인의 인감증명서를 발급하는 대리발급의 상황에서 문제가 생기고 큰소리가 난다.

대리발급을 할 때에는 위임해주는 사람이 직접 자필로 쓴, 정해진 서식의 위임장이 필요하다. 큰 소리가 난 그날도 바로 그 위임장때문에 문제가 생겼다.

어떤 50대 여성분과 그분의 둘째 자녀가 첫째 자녀의 인감증명서를 대리발급하는 상황이었다. 고상함과 부티나는 것이 추구미인 듯한 민원인은 나에게 난생 처음보는 인감증명서 대리발급을 위한 서식을 내밀었다.

사실 그냥 a4용지에 '나 000은 엄마 000에게 인감증명서 발급을 위임한다'라는 내용이 써져있는 종이였다.

위임장에는 정해진 서식이 있어서 이 서류로는 안된다고 안내하니 갑자기 화를 내기 시작했다.

"아니, 어디서 호되게 당해놓고 나를 의심해? 이거 내 아들이 쓴 거 맞다니까??? 지금 걔가 해외에 있는데 어떻게 받아와요"

둘째 아들은 명패에 있는 내 이름을 확인하고 옆에서 거들기 시작했다.

"아니, 당신때문에 우리 계약 못하면 당신이 책임 질거야? 그렇게 되면 우리 가만히 안있을거야.

행정소송 걸거라고!!"

"뭐 이런 여자가 다 있어? 해주면 되는거지. 우리가 해달라면 해줘야지. 정말 진상이 따로없네. "

내가 그분들께 하고 싶은 말이 그분들의 입에서 나오는 걸 들으며, 나는 잠시 감정의 스위치를 끄고 그냥 듣고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었기에 나는 내 나름대로 세게도 말해보고, 안된다고 사정도 해보며 1시간 이상을 그분들에게 시달렸다. 결국 지쳐버린 그들은 예정된 계약이 처리되지 않을 경우 날 고소할 거라고 예고를 한 채 유유히 사라졌다.

예전같으면 민원대에서 울고도 남았을 난데 그때는 눈물도 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복사기 옆에서 무언가를 복사하는데 같이 근무하는 도우미여사님께서 내 어깨에 손을 올려놓으시며 "아니 뭐 저런 사람들이 다있냐? 주사님 고생했어요."라고 한마디를 해주셨고 그때서야 눈물이 펑펑 쏟아지기 시작했다. 강해진 줄 알았는데 강해진 건 아니었던 것 같다. 그냥 조금 더 어른같이 보이려고 애쓰는 모습이 잠시 효력을 발휘했던 것 같다.


3. "나 여기서 몇십년 산 보통 아닌 여자야. 남자들 데리고 가서 너 가만히 안둘거야. "

신고업무를 하는 부서에서 업무를 할 때였다. 이때도 중년 여성분에게 전화가 왔었는데(나는 중년 여성들과는 케미가 맞지 않는걸까..) 본인 딸이 어떤 신고를 했는데 신고당시 상황에 대해(누가 신고했는지 등등) 알려달라는 전화였다. 그 부서에서는 신고에 대한 전화문의가 많아 직원들이 전화로도 상담을 많이 해주었고, 본인 일이 아닌 가족의 일에 대한 상담도 많이 하다보니 이 정보를 알려주어도 되는지에 대한 확신이 들지 않았다.

팀장님과 상의를 하였고, 개인정보보호법을 근거로 알려주면 안되는 사항같다는 결론이 나왔다.

민원인에게 이 이야기를 하자 민원인은 갑자기 돌변했다.

"아니, 당신 이름이 뭐야? 내 자식인데 왜 안알려줘. 나 00지역에서 몇십년 넘게 산, 보통아닌 여자야. 나 구청장 찾아갈거야."

흠.. 연고지에서 일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도 내가 근무하는 곳에서 20년 가까이 살았고, 보통사람들하고는 좀 다른, 특이하다는 이야기도 꽤 듣는 편이니 나도 보통은 아닌 여자인거같은데..

나름 민원경력이 쌓여서 여유가 생긴건지,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며 개인정보보호법 조항을 들며 "죄송하지만 알려드릴 수 없다"는 이야기를 반복했다. 그러자 민원인은 갑자기 남자들을 데리고 나를 찾아와서 가만히 안두겠다고 했다. 굳이 남자들을 데리고 오겠다는 건 데리고 와서 나를 패겠다는 걸까..

마땅히 할 말을 찾지 못하던 나는 결국 저희는 정보를 알려드릴 수 없으니 필요하시다면 정보공개청구를 해보셔야 할 것 같다고 안내드리고 1시간정도를 더 시달리다 전화를 끊을 수 있었다.

가족끼리 이야기하면 될 것을, 왜 중간에 나를 끼고 이렇게 힘들게 하는건지 그 민원인의 딸이 너무나 원망스러웠다. 그 와중에 다음날 그 아주머니가 찾아올까봐 솔직히 좀 무서웠다. 그래서 대직자에게 양해를 구하고 팀장님께 죄송하지만 내일 연가를 좀 써야할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하루 쉬고 다음날 출근하니 내 내선전화기에는 같은 번호로 20통 넘게 부재중 전화가 와있었다. 다행인 건 그 이후에 그 민원인이 직접 찾아오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이 외에도 참 다양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봤다. 등초본 가격이 왜이렇게 비싼지 짜증을 내는 사람부터.. 더 쓰자면 책 한권을 쓸 수도 있을만큼 참 다양한 사람들이 많음을 깨닫는 시간이었다.

내 자리에 정말 소금이라도 뿌려야 하는걸까? 부적이라도 한번 써볼까? 하는 생각도 장난 반 진심 반으로 해본적이 있다. 나의 응대가 부족했었을수도 있었을테지만.. 나의 태도나 업무처리방식에 감사함을 표현해준 민원인들도 있었으니 그냥 내가 운이 좀 없었던걸로 하고싶다.


이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께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공공기관에서 업무를 보시고 감사합니다. 한마디와 함께 싱긋 웃어주신다면, 그 행동 하나가 그 업무를 처리한 공무원에게는 남은 하루를 버틸 수 있는 힘이 되어준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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