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아이들을 보면 저마다 애착인형을 하나씩 가지고 있습니다. 잘 때도, 밥 먹을 때도 꼭 자신의 분신처럼 안고 다니죠. 고작 인형 하나이지만 아이에게는 위안을 가져다주는 소중한 물건인 것이에요. 온 세상이 엄마와 아빠로 가득했던 아이가 부모와 잠시 떨어져 생활해야 할 때, 어쩌면 자신의 세상 전부가 날아간 것 같은 느낌이 들지도 모르겠어요. 조그마한 아이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말이에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작은 애착인형 하나가 아이의 마음을 다독여줍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스스로 마음을 조절하고 가라앉히죠. 어른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곧 만날 엄마, 아빠와의 헤어짐이 별 것 아닌 일이지만 살아온 날이 5년도 채 되지 않은 작고 어린아이에게는 충분히 낯설고 힘겨운 과정일 수 있겠다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초조하고 불안한 마음을 기특하게도 제 힘으로 다루어보지요.
우리 어른들도 애착인형이 하나씩 필요한 것이 아닌지 생각해 봅니다. 가끔씩은 어른들보다도 아이들이 오히려 자기의 마음을 잘 어루만지는 것 같다고 느낄 때가 있거든요. 슬프면 눈물을 흘리고, 불안하면 안기고, 화가 난 마음을 참고만 있지 않죠. 감정이라는 건 표출해야 정화의 과정을 거치는 법이거든요. 그런데 우리 어른들은 자꾸만 눈치가 늘어서 속으로 꾹꾹 눌러 참는 것에 익숙합니다. 경험적으로 쌓아온 기억들이 우리를 자꾸만 눈치 보게 만들었는지도 모르죠. 어른답지 못하다는 이유로 말이죠.
그래도 아주 옛날보다는 동심을 찾는 어른들이 많아진 것 같기도 합니다. 어린아이들이나 누릴 것 같은 문화를 어른들도 마음껏 누리기 시작하면서 '키덜트'라는 말도 자연스럽게 통용되기 시작했으니요. 이미 이런 트렌드는 10년이 넘게 지속되고 있습니다. 저의 경우만 해도 퍼즐이나 레고 같은 취미를 즐기곤 하는데 1000 pcs 퍼즐이나 성인 수준의 레고세트가 다양하게 출시되어서 즐거운 마음으로 고를 수 있더라고요. 쇼핑몰을 돌아다니다 보면 가지각색의 피규어 앞에 어른들이 모여있는 모습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고요. 어른들이 즐길 수 있는 트램펄린이나 놀이기구, 체험들도 다양해지고 있는 추세입니다. 그런 어른들을 철이 없거나 이상하게 바라보는 시각도 많이 줄어들었어요.
이렇듯 어른들이 자꾸만 동심을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이시절을 지나 어른이 되면 당연하게도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일을 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어른들을 좌절을 느끼고요. 사회의 냉혹함과 쓴 맛에 상처를 입는데 어떤 방법으로 치유해 나가야 할지 방황하게 됩니다. 그래서인지 어린 시절 아무런 걱정 없이 재미있게 놀았던 기억이 자꾸만 우리를 찾아오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내 방에 예쁜 인형이나 멋진 로봇이 하나 생기면 그 시간이 온통 기쁨으로 가득 찾던 기억이 우리의 마음 한 구석에 남아있는 거겠죠. 어른이 되어서도 즐거웠던 놀이와 좋아하는 장난감에 관한 기억은 짠한 추억으로 남는 가봐요.
혹시 이런 기억도 있지 않나요? 나는 저 장난감이 제일 마음에 드는데 비싸다는 이유로 마지못해 다른 것을 골랐던 기억 말이에요. 오랜만에 장난감 선물 하나 고르러 갔다가 최선책이 아닌 차선책을 골라야만 하는 상황에 어릴 때부터 타협이라는 걸 배우게 되었던 기억이요. 어른이 된 지금은 돈도 벌겠다, 어릴 때 이루지 못한 꿈을 마음껏 실현시킬 수 있는 것이죠. 충족되지 못한 만족감을 늦게서라도 충족시키고 싶은 그런 마음이 자꾸만 키덜트들을 움직이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가장 솔직하고도 건강한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위에서도 말했듯, 우리 어른들도 애착 인형이 하나씩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