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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도시사람의 싱그러운 로망

by 글꿈

가끔은 도시에서 멀어져 그곳에서 살면 어떨까 생각해 봅니다. 아직 젊디 젊은 나이에, 태생부터 도시사람인 제가 도시가 아닌 공간을 싱그러운 로망처럼 그리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그곳에서 느꼈던 기분 탓이겠지요. 제가 사는 도시는 꽤나 빽빽하고, 눈이 부시고, 숫자가 난무하는 공간이니까요. 도시에 살아서 누리는 편리함이 있지만 도시사람들은 도시가 아닌 곳에서 한숨을 돌립니다. 도시를 벗어나서야 한층 표정을 편안하게 짓고 먼 풍경을 바라보지요. 도시가 아닌 곳으로 가면 저 먼 곳까지 내다보이는 게 참 신기합니다. 도시였다면 당장 눈앞의 건물에 가려져 보이지도 않았을 시야였을 텐데요. 온 사방이 푸르고, 맑고, 신선합니다. 맑은 강물이 흐르고, 새들이 지저귀며 날아다니고, 진분홍꽃이 피어 풍경에 색감을 더해주지요.


"이런 곳에서 살면 어떨까?"


생각에도 없는 말을 괜히 내뱉어보는 것으로 이 공간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봅니다. 아무렴 도시를 벗어난다고 해서 경쟁이 사라지고 숫자와 멀어질 수는 없을 테니까요. 그래도 조금은 여유롭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아주 잠깐 이상을 펼쳐보곤 합니다. 한참 열심히 살아가던 시기에 잠깐 도시를 벗어나 삶을 돌아보면 내가 무엇을 위해 달려가고 있을까, 인생이 별 거 있나 생각에 빠지게 됩니다. 누구나 바람결에 흔들리는 나뭇잎을 바라본다면, 햇살이 부서지는 물결을 바라본다면 들 수 있는 생각이지요.


여름이면 냇가에 시원하게 발 담그고 수박을 잘라 나눠먹고, 가을이면 온 주변에 물든 단풍을 즐기고, 겨울엔 소복이 쌓인 눈꽃을, 봄에는 향긋한 새싹과 여린 꽃잎을 한껏 누리는 싱그러운 상상에 젖어들어요. 이처럼 자연과 계절은 사람이 더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감싸 안아주는 우리 삶의 일부입니다. 새로운 도시를 건설할 때도 녹지공간을 중요하게 고려하여 계획하는 것은 우리 눈에 초록 없이 살 수는 없기 때문이겠죠. 아무리 그래도 초록색 맑은 공기를 마셔야 하고, 초록빛 잔디밭에 돗자리를 깔고 앉는 시간이 필요하니까요.


사실 도시가 아닌 곳에서 여유를 찾을 수 있겠다고 잠시 생각했던 것은 저렴한 집값 때문이었습니다. 낭만과는 어울리지 않게 집값이라니. 우리 삶에 있어서 여유라는 것을 돈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있을까요. 넓은 땅 푸른 공간에 부담 없는 가격의 집을 사서 자연을 누리며 살 수 있다는 것도 수많은 삶의 선택지 중 하나니까요. 어떤 아파트는 상가만 작게 있을 뿐, 주변에 아무것도 없이 오직 산으로 둘러싸여 있었어요. 저런 집엔 누가 살까, 팔리긴 할까? 생각해 보다가 자연의 푸릇함을 누리되 아파트의 편리함도 누리고 싶은 사람들이 저기에 살지 않을까 결론을 내렸습니다. 제가 생각했던 것처럼, 그런 삶을 소망한다면 충분히 고려해 볼 선택지일 것 같아서요. 삶의 형태에 정답은 없는 법이고요.


어릴 땐 자연경관의 아름다움이라든지, 문화재의 웅장함을 잘 깨닫지 못하고 심드렁했었는데 서른이 넘은 지금은 어쩐지 의미 있게 다가옵니다. 이렇듯 마음이 혹할 정도로요. 사람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가 없는 오직 자연만이 줄 수 있는 아늑함과 감히 넘보지 못할 위엄이 크게 느껴집니다. 사람의 마음을 쉽게 흔들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하고요. 그런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지금도 여전히 수많은 글 속에는 별과 바람, 꽃과 풀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마주할 때마다 싱그러움을 느끼며 글을 읽어 내려가지요. 자연이란 언제 마주하여도 식상하지 않은 그런 존재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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