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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숙희 Dusky Jan 18. 2021

10년 만에 다시 찾은 도쿄

아사쿠사바시 - 아키하바라 - 카구라자카

2018년 2월 7일


나는 드디어 도쿄행 비행기에 올랐다. 이제는 잦은 여행으로 익숙할 대로 익숙해진 비행이었지만 여행 전날이면 여행에 대한 생각들로 밤을 새우는 일이 잦은 나는 결국 도쿄 가기 전날도 밤을 꼬박 새우고야 말았다. 그래서 결국 비행기에서 간단한 일본어 몇 마디라도 익혀두려 챙겨둔 공부할 거리들이 무색하게 나는 비행기가 이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기절하듯 잠들어 버렸다. 여행 생각에 미쳐 밤을 꼬박 새운 자의 말로, 자업자득이었다.

비행기에서 바라본 도쿄 착륙 전. 저 멀리 후지산이 보인다.

나는 원래 속된 말로 '빡세게' 여행하는 여행자에 가깝다. 빠른 여행에 방해가 될 커다란 캐리어는 사본적도 없는 나는 캐리어의 무게만큼이나 무거운 배낭 하나를 어깨에서 내려놓는 일 없이 거의 쉬지 않고 움직이며 여행하는 편이다. 그래서 나의 여행은 공항에서 짐을 찾아야 하는 귀찮은 일이 없고, 숙소에 먼저 체크인하지 않고 곧바로 여행을 시작해도 된다는 장점이 있긴 하지만 여행 간에 몸이 엄청 고생한다는 치명적인 단점도 있다. 


아무튼 그래서 가진 짐이라곤 기내에 들고 탄 배낭 하나가 전부였던 나는 누구보다도 먼저 나리타 공항의 출국 수속을 마치고 빠른 걸음으로 열차를 타는 곳을 향해 걸었다. 열차 탈 곳을 가리키는 안내 문구와 시끌시끌한 안내방송 모두 일본어라는 것을 눈치챌 즈음 나는 내가 일본에 도착했다는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여행의 기쁨에 마음은 이미 들뜨기 시작했지만 괜히 도쿄에 처음 와본 뜨내기처럼 보이기 싫었던 탓인지 나는 자꾸만 올라가는 입꼬리에 힘을 주며 담담한 표정을 지으려 애썼다. 하지만 사방을 두리번대며 '열차는 언제 오나', '이 열차가 내 열차가 맞나?' 하는 불안감에 안절부절못하던 나의 모습은 아마 누가 봐도 '도쿄 뜨내기 관광객' 바로 그 자체였을 것이다. 


뭐, 그래도 상관없다. 일본의 열차 시스템은 정말 복잡하고 어렵기도 하거니와, 어쨌거나 나리타 공항에 무사히 잘 도착했으니까 말이다. 

복잡하고 어렵기로 유명한 도쿄 지하철 노선도. 한국과는 다르게 여러 회사들이 각각의 노선을 운영한다.




공항에서 도쿄 시내까지 들어가는 일이야 미리 알아봐 두었기 때문에 어렵지 않았지만 그다음이 문제였다. 오늘 밤에 방문할 재즈 클럽 Mash Records 외에는 어딜 갈지, 무얼 해야 할지 아무런 계획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이 열차가 지나가는 아사쿠사바시 역 근처에서 우선 당장의 출출함을 해결하기로 하고 구글맵을 이용하여 어디 괜찮은 식당이 없나 검색하기 시작했다. 유난히 이 지역에는 라멘집이 많이 검색되었는데 평점과 동선이 모두 나쁘지 않은 라멘집 하나를 골랐다. 서둘러야 했다. 오후 비행기로 온 탓에 해지기 전까지 남은 시간이 별로 없었다. 


아사쿠사바시 역에 도착한 나는 칸다강을 따라 식당 방향으로 걸으며 10년 만의 도쿄를 만끽하기 시작했다. 의미 없는 곳을 바라보아도, 마냥 한적한 골목길을 걸어도 그저 좋았던 나는 나의 생에 첫 카메라를 조심스레 배낭에서 꺼내어 주변의 풍경들을 담기 시작했다. 

GX85로 촬영한 첫 여행 사진들. @아사쿠사바시




아오시마 쇼쿠도 (青島食堂 秋葉原店)


다행히 해가 지기 전에 열차에서 찾아둔 라멘집에 도착했다. 바로 생강과 간장을 사용한 베이스로 유명한 로컬 라멘집 아오시마 쇼쿠도 (青島食堂 秋葉原店)였다. 생강과 간장, 육수로 맛을 낸 베이스에 , 시금치, 멘마(죽순), 돼지고기 등의 고명이 올라가는 이 라멘의 육수와 가볍게 구워내는 고기 고명은 한국의 족발집을 연상시키는 향을 냈고 요리사의 면 삶는 테크닉이 또 기가 막혀서 기분 좋게 쫄깃한 면을 맛볼 수 있었다. 내가 도착한 시간이 4시경으로 아직 저녁 식사 시간 전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었는데 한국에서는 아직 볼 수 없는 새로운 맛이면서도, 또 왠지 익숙한 느낌에 거부감 없이 먹을 수 있었던 좋은 라멘이었다. 

생강과 간장, 육수로 맛을 낸 베이스에 김, 시금치, 멘마(죽순), 돼지고기 등의 고명이 올라간다.




해가 지기 전에 든든하게 한 끼를 해결하고 나니 나는 자연스럽게 맛있는 커피가 마시고 싶어 졌다. 대부분의 기호식품을 좋아하는 나는 커피 역시 좋아하고 자주 즐기는 편이다. 2018년 2월 당시 도쿄에서는 약배전(커피콩을 많이 볶지 않은) 원두로 내린 산미 있는 커피가 한참 유행하기 시작했었고 당시 약배전과 핸드드립으로 대표되는 도쿄의 새로운 커피 문화를 대표하는 브랜드 글리치 커피 (Glitch Coffee and Roasters)가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것을 확인한 나는 망설임 없이 그곳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아키하바라에서 글리치 커피를 향해 걸으며 찍은 사진들. 저 유명한 SEGA 오락실 건물은 코로나 여파로 지금은 없어졌다.




글리치 커피 (Glitch Coffee and Roasters)


항상 '일본의 커피' 하면 이미 내려놓은 커피에 물을 부어 주는 내 취향에는 다소 심심한 커피를 떠올렸었다. 과거 일본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커피 브랜드 도토루(DOUTOR)에 가보아도, 꽤 알려진 지역 커피숍을 가보더라도 이미 내려놓은 밋밋한 커피를 내어주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8년 당시 도쿄에서는 약배전 원두를 핸드드립으로 내려 향과 풍미를 강하게 느낄 수 있는 새로운 스타일의 커피가 유행하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이 새로운 도쿄의 커피 문화를 선두 했다고 하는 대표적인 브랜드 중 하나가 바로 글리치 커피 (Glitch Coffee and Roasters)이다.

Glitch Coffee의 원두들이 바리스타 앞에 진열되어 있다.




도보로 도쿄 시내를 이동하며 든든한 식사에 커피까지 한 잔 마시고 나니 어느덧 밤이 되어있었다. 이번 도쿄 여행의 첫 4일간의 숙소는 카구라자카(神楽坂)역 인근으로 정했었는데 숙소를 이곳으로 정한 이유는 이번 일본 여행의 첫 번째 목적인 집시 재즈 관련 공연이나 행사가 도쿄 내에서 가장 활발한 곳이기도 했고, 한국으로 치면 서래 마을과도 같은 일본의 프랑스 마을 카구라자카의 분위기가 아마 나랑 잘 맞지 않을까 해서였다.


늦은 시간에 움직였던 터라 주변을 파악하기는 어려웠지만 내일 날이 밝으면 주변을 둘러볼 것을 기약하며 나는 어둠을 뚫고 오늘의 숙소인 언플랜 카구라자카 (Unplan Kagurazaka)에 무사히 도착했다. 도착한 숙소에서는 소바와 니혼주를 무료로  즐길 수 있는 이벤트가 한창이었다. 숙소에서 머물고 있는 여러 국가의 사람들이 모두 모여 이벤트를 만끽하며 마치 파티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소바 장인이 소바 면을 즉석에서 만들고 있었다.

아마 오늘 같은 날이 매일 있는 게 아니란 걸 알았다면 나는 분명 곧바로 외출하는 것을 재고했을 테지만 숙소에 늦게 도착한 나는 괜히 급한 마음에 더 늦어지기 전에 곧바로 가까운 곳에서 열리는 잼 세션에 가기로 결정했다. 10년 만에 다시 찾은 도쿄에서의 첫날밤. 나는 Mash Records에서 열리는 전통 재즈 세션(Trad Jazz Session)에 참여하기 위해 즐거워 보이는 파티를 뒤로한 채 오늘의 음악 여행을 완성하기 위해 아쉬운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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