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안은 타고난 모험가 집안이었다.
하루라도 집에 있으면 몸이 쑤셔서 견딜 수 없는, 마치 집안에는 산소가 없는 듯이 숨 쉴 공기를 찾듯이 밖으로 떠났다. 부모님은 남들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대륙과 산맥을 다니며 집에는 드물게 돌아왔고 위성전화 없이는 연락조차 안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게다가 해외에 간다고 남들처럼 5성 호텔에서 관광을 한 것이 아닌 대용량 도이터 등산가방에 군용 식량과 경량텐트를 챙겨 채워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 곳곳과 파키스탄 카라코람 산맥 등 세계의 오지를 걷고 야영하며 다니셨다. 곰이 나온다고 식량을 곰통이라는 곳에 담아 따로 묻어둔다는 말을 들으면 걱정이 안 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나는 집에서 특이하게도 자신의 방을 가장 사랑하는 내향적인 사람이었고 다들 이런 나를 의아해했다. 그러나 어른이 되며 역시 피는 속이지 못한다며 오늘도 세상을 돌아다니며 책을 보고 있다.
누구보다 평범하게 지내던 나는 지난 8년간 어린 내가 감당하기 힘든 불행이 반복되며 삐뚤어지기 시작했고 결국 퇴사 후 퇴직금을 아껴가며 가난한 배낭여행자로 9개국 31개 도시에서 202박을 보냈다. 그동안 백 권이 넘는 책을 보았다. 혼자 생각하는 사람은 우울한 철학가가 된다는 말이 있다. 그 말이 딱 맞는 듯하다.
우울함을 알기에 행복이 얼마나 빛나는 존재임을 알았고 아무 일 없이 지루한 것이 축복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쇼펜하우어는 삶은 권태와 고통 사이의 시계추라고 했다. 그렇기에 나는 나의 시계추를 권태로 밀어두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결국 깨닫고야 말았다. 인생이라는 시계추는 내가 건드릴 수 없는 것이다. 내가 정할 수 있는 것은 삶에 대한 태도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