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민달팽이는 어디로 갔을까

아파트의 정원

by 우주속의 먼지

나는 지은 지 5년 정도 된 신도시의 어느 아파트에 살고 있다. 이 정도 되는 아파트가 다 그렇듯 주차장은 모두 지하로 들어가 있고 지상엔 놀이터와 공원과 화단으로 아주 잘 꾸며놓았다. 규모가 작지만 인공연못과 미니폭포(?) 같은 것도 만들어놨다. 옵션도 아니면서 옵션이라고 이름 붙어있던 베란다를 일괄적으로 없애버린 건 싫지만 넓고 쾌적한 공동의 정원이 있는 건 가장 좋은 점이다.


아파트 단지 내에서 산책하는 것은 그래서 즐겁다. 특히 밤 산책을 즐기는데 이유는 조금 더 조용하기 때문이다. 낮에는 아무래도 동내 꼬마들에게 거의 모든 공간을 점유당하기 때문에 살짝 이방인이 된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러나 밤에는 오롯이 산책을 위한 산책을 할 수 있다. 주변도 보고 하늘도 보고, 조금 선선한 바람도 쐴 수 있어서 더없이 좋다. 밤 산책은 내 일상의 즐거운 루틴 중의 하나가 되었다.


그런데 비가 조금 오거나 비 온 뒤 젖은 땅일 때는 산책이 좀 힘들었다. 길에 달팽이와 민달팽이들이 사방에 나뒹굴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땅에 있는 살아있는 것들(=벌레나 곤충들)은 작은 것도 잘 캐치하는 편이다. 개미 안 밟고 걷기 대회가 있다면 일등 할 자신이 있다.


이리저리 피해 다니며 걷다 보면 내가 산책을 하는 건지 까치발로 달팽이 없는 곳을 지나는 미션을 수행하는 건지 헷갈린다. 민달팽이는 차마 손으로 건들지 못하고(나는 거의 모든 곤충을 만지지 못한다) 달팽이가 길 한가운데 있을 경우 등에 달린 집 부분을 손으로 겨우 잡고 풀밭으로 데려다준다. 그렇게 몇 미터 걷지 못하고 멈추기를 반복한다. 그리고 궁금해진다.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은 바닥을 살피며 걸을까?


아닌 것 같다. 이미 깔려 죽은 아이들이 많다. 집이 부서진 채 납작하게 된 달팽이, 바닥에 껌딱지처럼 들러붙어버린 민달팽이, 가끔 꼬리나 머리가 눌려버린 지렁이도 있다. 꽤 눈이 좋은 나도 밤에 산책하다 보면 바닥에 있는 거뭇거뭇한 것이 돌인지 얘네들인지 자세히 봐야 보일 때도 있다. 그러니 다른 사람들은 오죽할까. 모르긴 해도 내 발에 깔린 아이들도 있을 것이다.


어느 날은 민달팽이들이 단체로 아파트 입구 근처에 깔려 있었는데 아랑곳 않고 터벅터벅 담배를 들고 걸어 나가는 아저씨를 봤다. 뭐라고 할 수 없었다. 뭐라고 할 것인가? ‘아저씨, 바닥에 민달팽이들이 많으니 피해서 좀 걸으세요.’라고 할 것인가? 그렇다고 내가 고기를 안 먹는 것도 아니고 화분에 생긴 날파리를 안 죽이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 장면은 내 가슴을 후벼 팠다. 그저 촉촉한 땅이 좋아 오랜만에 기분 좋게 나들이 한 죄 없는 아이들이 인정사정없이 ‘짓밟히는’, 그것도 싸워서 지거나 사냥당하는 것도 아닌 아무 이유도 의미도 없는 죽음을 맞는 것이 슬펐다. 밟은 인간은 그들의 존재도 모른 채 가던 길을 간다.


결국 나는 피하는 걸 선택했다. 비가 오거나 비 온 뒤 산책은 하지 않기로 했다. 괴로운 광경을 눈에 담고 싶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내가 ‘민달팽이와 달팽이 살리기’ 운동을 하지도 않을 것이므로.







그리고 몇 달이 지났을까, 비 온 뒤에는 늘 한 치의 예외도 없이 나타났던 달팽이들이 한순간이 없어졌다. 지렁이도, 민달팽이도, 그리고 인공연못에서 단체로 울어대던 개구리들도.


모두 밟혀 죽은 건 아닐 테지. 혹시 살충제 같은 것 때문에 살기 어렵게 된 것일까? 누군가 민원을 넣어서 단체로 소탕당했을까? 신도시에 사는 깔끔한 입주민들이 내놓을 법한 의견이긴 하다. 제발 아니길 바란다. 자연과 가까워지려고 사방에 정원을 만들어놓고, 그 정원을 다른 생물과 나누지 못하는 건 이상하고 슬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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