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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의 윤슬 Aug 03. 2022

 그때 카파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3)

전쟁





사진



일반적인 종군기자 후발대와 동행하며 기사와 사진을 정돈해 본국으로 보내는 역할 정도만 수행했습니다. 전투가 끝나 폐허로 변한 곳이나 전장으로 향하는 군인들 뒷모습 사진이면 충분했죠. 하지만 카파는 그걸로 만족할 수 없었습니다.



병사들은 모두 진흙탕에 처박힌 채 고향에 대한 단꿈에서 깨어나야 했다. '만약에 우리가 여기에 없었다면, 그리고 독일군이 저 위에 없었다면'이라는 따위의 생각도 집어치워야 했다. 정상까지는 아직 2천여 미터나 남아있었고, 그곳에서 버티는 것은 전진하는 것만큼이나 위험한 상황이었다. 때문에 우리는 포탄이 터질 때마다 흙탕물을 뒤집어쓰고, 다시 포복으로 전진하다가 흙탕물을 뒤집어쓰는 상황을 반복했다. 그 와중에 누군가가 위생병이라도 부르면, 모두 '이제 다음 총알은 내 차례가 되겠구나'하고 생각하곤 했다.

 ...

 나는 배를 깔고 엎드렸다. 머리는 큰 돌 뒤에 숨기고, 양 옆구리는 내 양쪽 옆에 엎드린 군인 두 명의 보호를 받으면서. 매번 포탄이 작렬하고 나면 나는 머리를 들고 내 앞에 납작하게 엎드린 병사와 옅게 흩날리는 포연을 사진에 담았다. 얼마 안 가 내가 숨은 참호 위로 포탄 대열이 다가왔다. 더 이상 머리를 들 수 없었다. 10여 미터 앞쪽에서 포탄이 터졌고, 곧 무언가가 내 등을 때렸다. 나는 온몸을 휘감는 공포 때문에 고개를 돌려 살펴볼 생각도 하지 못했다. 다음 포탄은 더 가까운 곳에 떨어질지도 몰랐다. 나는 떨리는 손을 등 뒤로 갖다 댔다. 다행히 피는 나지 않았다. 포탄이 터지면서 날아온 커다란 돌조각이 내 등을 때린 것 같았다.
 내 오른편에 있던 중사는 포탄 파편에 맞아 명예부상장에 해당될 만큼 큰 부상을 입었다. 오른팔이 찢어진 것이다. 내 왼편에 있던 병사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는 크리스마스 선물꾸러미를 영영 풀어볼 수 없게 됐다. 153p



카파는 교전지역 한가운데로 들어가 병사들과 함께 행동습니다. 총이 아닌 카메라를 들고 있다는 사실은 포격 반경 안에서 아무 의미 없었습니다. 병사들과 함께 하는 행위는 적에겐 아무 위협도 주지 못하면서 아군에게 가해지는 위협은 모두 감수한다는 뜻이었습니다. 게다가 그 위협이란, '적을 죽이거나 적에게 죽지 않는다'라고 요약할 수 있는 형태가 아니었죠. 카파의 샷shot은 적군이 아닌 아군을 향해야 했고 살고 피해야 할 포격을 등 뒤에 두어야 했습니다. 그는 살기 위해 싸우는 옆모습을, 죽음을 각오한 앞모습을 찍고 싶어 했습니다.





치열한 사진을 찍기 위해 카파는 위험한 전장, 그 안에서도 격전이 벌어지 곳만 찾아다녔습니다. 군과 잡지가 원하는 사진은 숨이 보장되는 곳에선 얻을 수 없었니까요.

삶을 지속하기 위해 죽음이 기다리는 으로 향했다는 점에서 카파는 여느 군인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군인생존에 집중할 때 카파는 생존만큼이나 죽음에 집중해야 했다는 사실이 차이라면 차이입니다.





종군기자 찍은 사진이 위력을 발휘함에 따라 선봉에 서 있는 로버트 카파 역시 명성 아졌습니다. 군 장성은 높은 위험이 수반되는 상륙 작전이나 공수 작전에 카파를 동행시키고 싶어 했죠. 카파는 기꺼이 그 요구를 받아들였습니다. 거기에 더해 더 이상 찍을 장면이 없으면 더 위협적인 곳으로 보내달라고 군과 잡지사에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전쟁





사진과 함께 언급될 때 로버트 카파는 영웅이었지만 전장에서는 종종 그렇지 못했습니다. 병사들은 그에게 흥미를 보이다가도 부상시신을 촬영하는 행동은 못마땅하게 여겼습니다. '보도사진가로 산다는 것과 다정한 마음을 잃지 않고 간직한다는 것이 양립할 수 있는가'에 대 자문자답하던 카파는 종군기자 로버트 카파를 완성시키기 위해 다정한 마음을 가진 로버트 카파를 소모시키기로 결정합니다.

그는 종군신부가 신에게 애원하는 야전병원에서 '플래시를 터트려 교회에 서린 죽음의 주술을 무자비하게 깨뜨리는' 사람이 되어야 했습니다. 이탈리아 수녀들이 부상자들을 돌보고 군의관이 중상자를 치료하고 독일 포로마저도 바닥을 닦는 그곳에서 카파는 종군기자였고 종군기자가 할 일은 도가 아니었습니다.

전쟁이 막바지로 향하던 1945년 3월 독일 라이프치히에서도 비슷한 일은 있었습니다. 카파가 '최후의 병사'로 명명한 병사는 앳된 얼굴을 제외하면 여느 병사들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마지막 총을 쏘는 마지막 병사는 최초의 사격을 가하는 최초의 병사의 모습과 다를 것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를 것이 없었던 그 병사는 2차 대전에서 가장 유명한 병사 중 한 병이 됩니다. 적군이 쏜 총에 맞아 죽어가는 장면이 카파에 의해 생생하게 촬영됐기 때문입니다. 카파는 필름에 담아 영원히 기록하는 방식으로 고인을 애도했고, 다정한 마음을 가진 로버트 카파가 그런 식으로 조금 더 소모된 덕에 인류는 전쟁이 남긴 참상을 더 가까이서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을 남기고 진실을 전해야 하는 사진기자 로버트 카파에겐 달갑지 않은 꼬리표가 붙어있습니다. 사진을 조작했다는 혐의죠. 사람들은 카파가 찍은 사진에 열광했지만 사진과 상황이 너무나 극적이라는 점은 잘 정돈되지 못했던 사생활과 맞물려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전술한 <어느 인민전선파 병사의 죽음>의 경우, 같은 날 찍은 다른 사진들이 2009년에 발견되면서 작된 사진임이 밝혀졌습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 사진들에 대해선 정황적 의이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그는 언제 죽을지 모를 전장에서는 도박과 술에 의지하고 평화로운 본국에서는 여성편력에 의지했습니다. 책의 또 다른 축인 애인 '핑키'에 대해 다루지 않은 이유도 책에 기록된 감동적인 이야기 이후에 벌어진 일들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카파는 공포에 굴복하는 겁쟁이고 도박과 술에 기대 살았으며 유명 여성들과 끝없이 염문을 뿌리기도 했습니다. 카파는 전쟁터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었고 영웅적 기질을 갖추지도 못했습니다. 그는 안전한 곳에서 재능을 발휘하며 살아야 하는 인이었습니다. 전장이 아니라요.


중요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모두가 잘 알고 있지만 최선을 다해 잊고 사는 이야기. 바로 전쟁에 대한 이야깁니다.

로버트 카파는 예측하기 어려운 인물이었고 도와 정신에 결점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군인은커녕 전쟁과 가장 멀리 떨어뜨려놓아야 할 이죠. 중요한 이야기는, 전쟁이라는 놈에게 그딴 건 관심사가 아니라는 니다.


전쟁은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곳에 필요한 만큼 인명을 집어던집니다. 개체가 가진 특징은 고려되지 않습니다. 총이 주어지면 사람을 쏴야 하고 낙하산이 주어지면 비행기에서 뛰어내려야 합니다. 쟁이 안개처럼 세상을 뒤덮었던 시국에서, 생활고에 시달리는 적국 출신 사진가에겐 선택사항 없었습니다. 더 과격한 위험을 감수하는 사람이 위대한 인물이 되는 전쟁 논리는 전쟁과 가장 거리가 먼 사람을 영웅으로 만들었고, 시대는 전쟁이 빚어낸 영웅이 자기 인간성과 맞바꾼 사진을 기꺼이 소했습니다.



아침에 멋진 편대를 이루고 출격에 나섰던 비행기는 모두 스물네 대였다. 그러나 돌아온 비행기는 온 하늘을 들춰봐도 열일곱 대밖에 안 됐다.
 귀환한 비행기들은 관제탑을 중심으로 원을 그리며 착륙허가를 기다렸다. 그중 한 대는 착륙장치 부위의 동체가 파손된 데다 기내에 심각한 부상자가 탑승하고 있었다. 관제탑은 그 비행기를 우선 착륙시키기로 결정하고, 동체착륙 지시를 내렸다.
 나는 콘탁스 카메라를 꺼내 들고 그 비행기가 착륙하여 정지할 때까지의 모습을 한 통의 필름에 꽉 채워 담았다. 그러고는 기체 앞으로 달려가 두 번째 콘탁스 카메라의 초점을 맞췄다. 승강구가 열리고, 부상당한 승무원이 대기 중인 의료진에게 인도됐다. 그는 아직도 신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뒤이어 두 사람이 더 실려 나왔다. 하지만 그들은 아무런 신음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조종사가 내려왔다. 이마에 베인 상처 자국을 제외하면 그는 무사한 것 같았다. 나는 클로즈업 사진을 찍기 위해 그에게로 다가갔다. 비행기에서 내리던 그가 갑자기 멈춰 서더니 내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봐, 사진사! 이게 당신이 기다리던 장면들인가?" 47p



원칙과 상식이 반영되지 않는 전쟁 속에서 로버트 카파는 옳은 일인가가 아니라 필요한 일인가를 선택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남긴 결과를 취사선택해 분리하거나 일반화할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1936년 스페인 내전에서 찍은 <어느 인민전선파 병사의 죽음>으로 명성을 얻지 못했더라면 <콜리어스>지에서 그를 고용하는 일도 없었을 테고, 적국인으로 분류된 백수 기자는 2차 대전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죠. 그리고 인류사는 화약냄새가 진동하는 카파의 사진들을 격하지 못했을 니다.

의 삶과 사진에 얽힌 논란을 들여다보려면, 동시대에서 끌어올 수 있는 모든 동력을 먹어치워야 굴러가던 전쟁 특징과 그 속에서 삶을 지속해야 하는 개인의 상황도 함께 고려되어야 합니다.






(4부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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