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사진
병사들은 모두 진흙탕에 처박힌 채 고향에 대한 단꿈에서 깨어나야 했다. '만약에 우리가 여기에 없었다면, 그리고 독일군이 저 위에 없었다면'이라는 따위의 생각도 집어치워야 했다. 정상까지는 아직 2천여 미터나 남아있었고, 그곳에서 버티는 것은 전진하는 것만큼이나 위험한 상황이었다. 때문에 우리는 포탄이 터질 때마다 흙탕물을 뒤집어쓰고, 다시 포복으로 전진하다가 흙탕물을 뒤집어쓰는 상황을 반복했다. 그 와중에 누군가가 위생병이라도 부르면, 모두 '이제 다음 총알은 내 차례가 되겠구나'하고 생각하곤 했다.
...
나는 배를 깔고 엎드렸다. 머리는 큰 돌 뒤에 숨기고, 양 옆구리는 내 양쪽 옆에 엎드린 군인 두 명의 보호를 받으면서. 매번 포탄이 작렬하고 나면 나는 머리를 들고 내 앞에 납작하게 엎드린 병사와 옅게 흩날리는 포연을 사진에 담았다. 얼마 안 가 내가 숨은 참호 위로 포탄 대열이 다가왔다. 더 이상 머리를 들 수 없었다. 10여 미터 앞쪽에서 포탄이 터졌고, 곧 무언가가 내 등을 때렸다. 나는 온몸을 휘감는 공포 때문에 고개를 돌려 살펴볼 생각도 하지 못했다. 다음 포탄은 더 가까운 곳에 떨어질지도 몰랐다. 나는 떨리는 손을 등 뒤로 갖다 댔다. 다행히 피는 나지 않았다. 포탄이 터지면서 날아온 커다란 돌조각이 내 등을 때린 것 같았다.
내 오른편에 있던 중사는 포탄 파편에 맞아 명예부상장에 해당될 만큼 큰 부상을 입었다. 오른팔이 찢어진 것이다. 내 왼편에 있던 병사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는 크리스마스 선물꾸러미를 영영 풀어볼 수 없게 됐다. 153p
전쟁
아침에 멋진 편대를 이루고 출격에 나섰던 비행기는 모두 스물네 대였다. 그러나 돌아온 비행기는 온 하늘을 들춰봐도 열일곱 대밖에 안 됐다.
귀환한 비행기들은 관제탑을 중심으로 원을 그리며 착륙허가를 기다렸다. 그중 한 대는 착륙장치 부위의 동체가 파손된 데다 기내에 심각한 부상자가 탑승하고 있었다. 관제탑은 그 비행기를 우선 착륙시키기로 결정하고, 동체착륙 지시를 내렸다.
나는 콘탁스 카메라를 꺼내 들고 그 비행기가 착륙하여 정지할 때까지의 모습을 한 통의 필름에 꽉 채워 담았다. 그러고는 기체 앞으로 달려가 두 번째 콘탁스 카메라의 초점을 맞췄다. 승강구가 열리고, 부상당한 승무원이 대기 중인 의료진에게 인도됐다. 그는 아직도 신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뒤이어 두 사람이 더 실려 나왔다. 하지만 그들은 아무런 신음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조종사가 내려왔다. 이마에 베인 상처 자국을 제외하면 그는 무사한 것 같았다. 나는 클로즈업 사진을 찍기 위해 그에게로 다가갔다. 비행기에서 내리던 그가 갑자기 멈춰 서더니 내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봐, 사진사! 이게 당신이 기다리던 장면들인가?" 47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