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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의 윤슬 May 26. 2022

너무 한낮의 연애

내일은 모르겠는데, 오늘은 사랑하죠



너무 한낮의 연애


필용이란 사람이 있습니다. 문책성 인사이동을 통보받았음에도  업무보다는 명함 더 신경 쓰는 인물이죠. 심시간이 다가왔지만 료들과 사할 마음은 없습니다. 혼자 먹는 모습을 보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 종로에 있는 맥도날드로 향합니다. 대학시절 드나들던 곳이죠.


16년 만에 찾은 맥도날드는 위치와 건물, 테이블과 의자까지 그대로지만 필용이 즐겨먹던 피시버거만 사라진 상태입니다. 대표 메뉴가 사라질 수 있다니, 필용은 기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낍니다. 아르바이트생 증언에 따르면 피시버거는 유사하거나 변형된 형태로 살아남지 않고 순수한 피시버거 혈통을 유지한 채 사라졌다고 합니다.

아무 때나 점심을 먹어도 되는 영업팀장에서 식사시간을 줄여 일해야 하는 시설관리팀으로 바뀐 그 변형을 거부하고 결연하게 사라질 수 있을까요? 용은 고개를 젓습니다. 좌천은 권고사직뜻하지만 모른 척하기로 합니다. 결심을 다진 필용은 맞은편 건물에 걸린 현수막을 발견합니다.


[나무는 'ㅋㅋㅋ' 하고 웃지 않는다]


씹지도 않은 감자튀김을 삼 정도로 놀란 필용은 16년 전에 알았던 여인과 그녀가 쓰던 연극 대본을 떠올립니다.






양희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대학시절, 필용이 떠드는 허풍 섞인 수다를 얌전히 들어주던 과 후배죠. 둘은 종로 맥도날드에 시간을 보냈습니다. 주로 필용이 말하고 양희는 듣는 입장입니다. 두 사람 다 불만없습니다. 필용은 양희가 가진 위대한 듣기 능력이 좋았고, 양희는 필용을 사랑하고 있으니까요. 

오늘은 있지만 내일은 없어질지도 모를 그런 사랑입니다.



 "아니...... 네가 날 사랑한댔잖아. 킬킬킬킬...... 그 고백을 들은 거잖아, 지금.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하면 좋으냐고. 앞으로 우리 어떻게 되는 거냐고."
"모르죠, 그건. 알 수도 없고. 알 필요도 없고."
"알 필요가 없다고?"
"지금 사랑하는 것 같아서 그렇게 말했는데, 내일은 또 어떨지 모르니까요."
필용은 당황했다. 얘가 지금 누굴 놀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한다며?"
"네, 사랑하죠."
"그런데 내일은 어떨지 몰라?"
"네."
"사랑하는 건 맞잖아. 그렇잖아."
"네, 그래요."
"내일은?"
"모르겠어요."  26p



도무지 연애 상대로 느껴지지 않던 양희가 자기를 사랑한다는 사실과, 그 사랑이 언제 사라질지 모른다는 사실을 동시에 알게 된 필용 마음엔 묘한 감정이 돋아납니다.

맥도날드에 앉아 햄버거를 먹고 있어도, 창밖에 비가 내리고 있어도, 희가 고백한 사랑이 아직 거기에 있는지에만 신경이 쓰입니다. 오늘 사랑하고 있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내일은 사랑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이 무게 더합니다.


조금씩 조금씩 생활이 어질러집니다. 고백 한 후에도 태도나 옷차림, 머리 모양도 달라지지 않는 양희를 향해 필용은 거의 매일, 자신을 사랑하느냐고 묻습니다. 러면서도 한편으론 그녀가 유지하는 외모나 한심스러움, 생기 없음, 무기력함, 특히 연극반인 그녀가 꾸준히 쓰고 있는 '정말 더럽게도 재미없는 대본'에 대해 은근한 경멸을 느끼곤 했습니다.






그로부터 16년이 지났습니다. 더 이상 피시버거를 팔지 않는 종로 맥도날드에 앉아 현수막을 보던 필용은, '필용을 사랑하던 시절' 양희가 쓰던 정말 더럽게도 재미없는 대본 제목이 [나무는 'ㅋㅋㅋ'하고 웃지 않는다]였음을 기억해 냅니다. 삶이 침몰하고 있는 시점에 이곳에 온 이유는 건너편 소극장에서 양희를 만나기 위해서라고 그는 확신하죠. 


필용은 음날 현수막이 걸 소극장을 찾습니다. 입구에서 나눠주는 생수를 받아 들고 구석 자리에 앉 양희가 나타나길 기다립니다. 연극은 단순합니다. 전신 타이츠를 입은 배우가 듬성듬성 앉아 있는 관객 중 한 사람을 무대 위로 데려가 의자에 앉히고 마주 보는  입니다. 마주 보기만 하는데도 무대로 이끌린 관객은 울거나 웃거나 합니다. 필용은 시시하다고 느끼지만 아무래도 좋습니다. 양희가 배우로 나서지 않는다면 커튼콜에서 모습을 보일 테죠. 연극이 끝나자 유일한 배우인 타이츠 의상이 얼굴 부분을 벗습니다. 양희가 땀에 젖은 얼굴을 드러냅니다.

 

필용은 '어제 있던 사랑이 오늘은 없어진' 16년 전을 생각합니다.



 장마가 시작되었을 무렵 이런 괴상한 애정 전선에도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다른 날과 다름없이 햄버거를 먹으며 앉아 있는데 양희가 깜빡 잊을 뻔했다는 투로, 아, 선배 나 선배 안 해요. 사랑, 한 것이었다.
 "안 해?"
 "네."
 "왜?"
 "없어졌어요."
 필용은 믿을 수 없었다. 바로 어제만 해도 사랑하느냐고 물으면 표정 없는 얼굴이기는 했지만 고개를 끄덕였는데 말이 되는가?
 "없어? 아예?"
 "없어요." 36p



사랑한다는 말을 선선히 정할 때완 달리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은 순순히 인정 수 없습니다.

부정은 설득이 되고, 설득은 회유가 되고, 회유는 애원이 되었다가 마침내 모욕으로 바뀝니다.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필용이 퍼부어대는 모욕을 듣던 양희는 그를 떠나버립니다.


양희가 사라진 후 필용은 열병을 앓습니다. 이런저런 추측을 하며 양희에게 무심했음을 자책합니다. 확인만 하는 일방적인 사랑에 양희가 지쳐버렸으리라 판단합니다. 양희가 오리농장을 하 본가에 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필용은 친구 차를 빌려 그곳으로 향합니다. 없어졌다는 사랑을 제자리로 돌려놓고 둘 사이엔 고려하지도 않던 연민, 속박, 약속, 의무, 섹스를 시작하기로 합니다. 퀸 노래를 따라 부르며 힘차게 가속 페달을 밟는 필용 가슴엔 어느새 양희를 향한 사랑이 벅차오릅니다.

부푼 마음으로 문산 도착 필용은 리농장 대신 토굴 같은 집과 비참한 살림살이, 비상식적인 가족, 철망에 갇힌 새끼오리 몇 마리를 보게 됩니다. 그리고 어제까진 없다가 오늘 생긴 사랑은 내일도 기다리지 못하고 폭삭 내려앉습니다.


허풍 없 대화도 못 필용은 가 유지 외모나 한심스러움, 생기 없음, 무기력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문득 떠오르듯 생 사랑이 깜빡 잊을 뻔한 투로 사라지는 까닭도 이제는 이해합니다.

필용은 양희에게 사과합니다.



 "미안하다. 심한 말 해서."
 필용이 사과했다.
 "선배, 사과 같은 거 하지 말고 그냥 이런 나무 같은 거나 봐요."
 양희가 돌아서서 동네 어귀의 나무를 가리켰다. 거대한 느티나무였다.
 "언제 봐도 나무 앞에서는 부끄럽질 않으니까. 비웃질 않으니까 나무나 보라고요." 46p






인사팀장에게 불려 간 필용은 근무 태도를 지적받습니다. 점심시간마다 소극장으로 달려간 탓에 몇 분씩 모자란 업무시간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삶을 위해 현실로 돌아올 시간입니다. 그러려면 어둑한 소극장양희를 잊어야 합니다.

좌천당한 자리에서 열심히 일한 필용은 여름과 가을을 지나면서 치즈처럼 말랑말랑해집니다. 있는 듯 없는 듯하고, 나사가 빠진 듯하지만 그럴수록 입지는 안정됩니다. 세 계절을 지나 겨울로 접어들던 어느 날 필용은 감기에 걸리게 됩니다. 16년 전, 열병을 앓은 후 문산으로 향했듯 감기에 걸리자 종로로 향하는 필용. 마지막 공연이라는 안내를 받은 그는 머플러로 얼굴을 가리고 객석에 앉습니다. 이렇게 추운데도 여전히 전신 타이츠만 입은 양희가 등장합니다. 양희는 객석으로 내려와 유일한 관객인 필용에게 손을 내밉니다. 필용은 머플러를 풀어 얼굴을 보여주고 싶지만 용기가 나지 않습니다. 무대 위에 올라 양희 얼굴과 두 눈을 마주 보던 필용은 밀려드는 감정에 고개를 떨굽니다. 누군가 박수를 치는 소리. 자리로 돌아온 필용은 가방을 챙깁니다. 매표소 직원이 무대 인사를 합니다. 마지막 공연이 끝났습니다.

필용은 양희 맞은편에 앉아 울고 웃던 시시한 관객들과 자기가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양희가 똑같이 대했으니 똑같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필용은 무대 인사를 끝내고도 대기실로 돌아가지 않는 양희를 바라봅니다. 필용을 내려다보던 양희는 바람을 타는 나무처럼 두 팔을 벌리고 천천히 흔듭니다. 필용은, 양희가 오래전부터 그를 알아보고도 'ㅋㅋㅋ'하고 웃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커다란 느티나무를 보며 상처를 치유하던 양희는 소극장 안에서 스스로 나무가 되었습니다. 누구를 향해서도 'ㅋㅋㅋ' 웃지 않을 니다. 조롱도 비난도 충고도 칭찬도 하지 않을 니다. 그저 가만히 앉아 상대방을 바라보겠죠. 그 시선에서 무엇을 발견하든 그 사람 몫입니다. 무대 위로 이끌린 필용은 무엇을 마주했을까요. 양희를 모욕하고 양희를 사랑하고 양희로부터 도망친 과거가 보낸 시선이었을까요. 그 시선이 깨운 감정은 애초에 마음속에서 사라졌던 적이 있었을까요.

눈물범벅이 되어 소극장 밖으로 뛰쳐나간 필용은 아득한 얼굴이 되어 너무 한낮의 종로 거리를 바라봅니다.








수치심 서린 과거를 우리는 애를 써서 잊어냅니다. 잊어내고 또 잊어내다가 여의치 않으면 야기를 왜곡해 을 윤색합니다. 단편소설집 <너무 한낮의 연애>에 실린 아홉 작품은 그런 필사적인 왜곡 뒤에 숨어 있는 감정을 하나하나 포착해 한낮의 태양 아래 진열합니다.


실체도 없는 불완전한 감정에 를 부여하는 함.

혐오하는 구조를 수호함으로써 계급을 유지하는 자괴감. 

남루하고 허울뿐인 삶을 외면하기 위해 타자대상화하는 비겁함.

현실이 끔찍해 기억을 왜곡하는 무력. 

기억이 끔찍해 현실을 왜곡하는 참담함.

울타리 안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울타리 밖 약자를 린치하는 비열함.


각 작품엔 공감하기 싫은 감정들이 공감하고 싶은 이야기로 소개되어 당혹감을 안깁니다.

오랫동안 외면하면 없어지리라 믿었던 기억은 맥도날드 햄버거를 먹다가도 느닷없이 떠오르고, 왜곡을 반복해 모호해졌다고 믿은 기억은 나를 응시하는 나무만 있어도 명료해집니다. 한낮을 감당하기 싫어 눈을 가려본들 작고 초라한 기억은 그림자가 되어 따라붙습니다. 추억으로 쌓아 올린 매끈한 탑이 한낮의 태양 아래 치부를 드러냅니다. 위태롭게 금 뼈대 기워진 넝마 아래로 들춰집니다. 종로 거리에서 아득한 얼굴로 울음을 터뜨린 필용은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을까요. 그런 필용을 아득한 마음으로 바라보는 우리는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을까요.



선배, 사과 같은 거 하지 말고 그냥 이런 나무 같은 거나 봐요.
언제 봐도 나무 앞에서는 부끄럽질 않으니까. 비웃질 않으니까 나무나 보라고요.



기억과 상처는 한낮의 태양처럼 무심하고 집요하게 삶을 내리니다.

문산 어귀에서 양희가 했던 말은, 정오가 짓누른 그림자처럼 작고 초라한 기억 함께 살아가야 하는 모두를 향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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