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위에 쓴 묘생(猫生)의 기록
이른 오후의 산책길, 순백의 설원 위로 깊게 파인 작은 별들을 발견했습니다.
이 길목의 주인이라면 아마 열 살을 훌쩍 넘긴 엄마냥이의 흔적이겠지요.
“이 시린 날, 포근한 겨울집에나 있지 무엇하러 이리 바삐 다녔을까...” 저의 나지막한 걱정이 눈발 사이로 맺힙니다.
동네를 두어 번 크게 휘돌아보니, 길 위엔 더 많은 이야기들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어느 가게 앞, 묵직하고 통통하게 찍힌 발자국. 이건 분명 제 집으로 퇴근하던 짠한 노랑이의 당당한 걸음걸이일 테죠.
좁은 골목 카페 앞, 촘촘히 박힌 흔적들은 겁은 많지만 조심성은 빵점인 마고가 간식을 찾아 달려간 급한 마음일 것입니다.
귤이와 밤이가 지나간 자리를 지나 보이는 주차장의 수호의 늠름한 보폭과, 이층집 카오스 고양이 일호의 가벼운 발걸음까지.
아이들의 영역과 루틴을 꿰뚫고 있는 저는 보물 찾기를 하듯 일부러 그 발자국 뒤를 포개어 걸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어느덧 이 작은 생명들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깊은 정의 늪에 빠져 있었습니다.
혹독한 겨울바람이 저 멀리 불어가고 이 동네에 볕 좋은 봄이 찾아오면, 제가 이곳의 고양이 이웃이 된 지도 꼬박 일 년이 됩니다. 하지만 다가올 봄은 이름만 같은 계절일 뿐이겠지요. 새 꽃이 피어날 그 계절에 저는 이곳을 떠날 운명이니까요. (ㅠㅠ...)
저의 기억은 영하의 기온에 꽁꽁 얼어붙던 급식소의 물그릇처럼 단단하게 마음 한구석에 오래도록 머물 것 같습니다.
고양이를 사랑하고 돌보는 모든 이들의 마음이 다 이와 같겠지요. 한 생명을 이토록 오래 지켜보고 사랑했는데, 어찌 잊을 용기 따위가 쉽게 생기겠습니까...
요즘은 사진보다 영상으로 아이들을 담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떠나기 전 사진을 많이 찍어서 근사한 화보집을 만들고 싶다던 저 혼자만의 작은 소원을 잠시 뒤로하고 아이들의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고 편집하는 작업을 먼저 시작했습니다.
이름이 있는 길 위의 아이들을 마음껏 부르고 사랑했던 날들이 영원히 재생됐으면 좋겠는 마음이네요.
SNS에서도 만나보실 분들을 위해 제가 최근에 시작한 계정을 남기겠습니다.
인스타그램 @jongno_ca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