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도적인 시작과 충격적인 끝의 서사
독일의 나치 정권이 유대인을 핍박하던 시대와 배경을 두고 많은 문학작품이 나왔고 문학상 수상작도 꽤 있다. 하지만 어디에 초점을 뒀는지에 따라 체제의 모순과 부조리함이 기억에 남고 처절한 상황에서도 밝고 우스꽝스러운 평범함으로 인해 오히려 비범한 인간들이 기억에 남기도 한다. 프레드 울만 <동급생>은 자전적 소설이라고 기록된 것은 없으나 프레드 울만의 생애를 살펴보면 몇 가지 설정이 추가되고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것들을 바탕으로 쓴 것으로 추정된다. 1901년에 태어난 독일계 유대인으로서 변호사이자 화가이자 작가로, 유대인에 대한 핍박으로 인해 망명을 두 번이나 했다. 책은 오로지 <동급생> 하나만 남긴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책 한 권을 내자마자 곧장 인정받은 비슷한 예는 셀리 리드 <흐르는 강물처럼>이 있다. 개인이 자연의 흐름과 변화 속에서 어우러지며 역경 속에서도 진실과 가치를 쫓아 살아가는 여정을 평생 연구해 온 자연과 이주 1세대에 대한 지식을 망라하여 써냈기에 후기작을 쓰기 어려웠을 것이다. 프레드 울만도 <동급생>에서 이미 자신의 삶을 다 녹여냈고 워낙 독창적인 시작과 끝맺음으로 유명한 터라 후기작을 쓰기가 어려웠거나 또 책을 쓸 생각 자체가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일부 연예인들이 압도적인 캐릭터로 너무 큰 사랑을 받고 난 후 더 이상 주목받지 못하는 경우와 비슷한 양상이다. 모든 작가가 화수분처럼 아이디어가 넘치고 다루고 싶은 주제가 다양한 것은 아니기에 충분히 존중받을 만하다. 어쨌든 이토록 훌륭한 책을 써낸 단 한 번의 사실은 분명하니까.
p21. 그는 1932년 2월에 내 삶으로 들어와서 다시는 떠나지 않았다.(...) 내 가장 큰 행복과 가장 큰 절망의 원천이 될 그 소년에게 처음 눈길이 멈췄던 것이 어느 날 어느 때였는지를 나는 지금도 기억할 수 있다. 그것은 내 열여섯 번째 생일이 지나고 나서 이틀 뒤, 하늘이 잿빛으로 흐리고 어두컴컴했던 독일의 겨울날 오후 3시였다.
p37. 내가 콘라딘을 친구로 삼아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이 언제였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느 날엔가는 내 친구가 되리라는 것은 믿어 의심치 않고 있었다. 그가 전학을 올 때까지 내게는 친구가 하나도 없었다. 우리 반에는 내 우정의 로맨틱한 이상형을 충족시킬 수 있다고 여겨지는 아이가 하나도 없어서였다.
나도 가장 친한 친구를 잃고 절망할 뻔한 친구가 있다. 곧 출시할 플랫폼의 창립 멤버로 함께 일하고 있는 나의 절친은 나와 살아온 환경이 너무나 달랐지만 고등학교 입시가 있었던 시절에 성적이 비슷하여 같은 고등학교 입시를 준비하면서 친해졌다. 이 친구는 나와 같은 반도 아니었고 중학교 마지막 학년에 우리 학교로 전학을 온 다른 반 아이였다. 그 당시 나는 내가 속한 반에 정을 붙이지 못했다. 여럿 무리 안에 끼어 있기는 했으나 딱히 재밌지 않았고 하필 일진 무리 중 최악의 두어 명이 우리 반에 배정됨으로써 찐따들은 더 찐따가 되고 최악들은 더 최악이 되며 살얼음판 같은 형국이었다. 이 꼴 저 꼴 다 보기 싫어서 쉬는 시간이면 초등학교 때부터 친했던 몇 명이 있는 다른 반에 놀러 가 있곤 했다.
그러다 그 반에 전학 온 이 친구를 발견했다. 하얀 얼굴에 오목조목 귀여운 이목구비, 찰랑찰랑한 단발머리에 동그란 안경을 끼고 늘 그림을 그리거나 만화책 또는 무협지를 읽고 있던 아이였다. 생김새가 귀엽고 매사 조심스러운 모습 때문인지 '다람쥐'라는 별명이 있었다. 그 반 아이들은 대체로 그 친구에게 처음부터 꽤나 호의적이었다. 귀여운 외모와 달리 시크한 성격인데도 그것조차 매력으로 느끼는 듯 했다. 이제 막 전학 온 아이에게 그렇게 다들 호의적인 것이 그 당시에는 신기한 느낌이었고 분명 저 아이만이 풍기는 묘한 매력이 뭔지 궁금했다. 파워E인 내가 먼저 그 친구에게 말을 걸면서부터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그 친구는 나에게 적당히 대꾸하며 곧장 친밀하게 다가오는 느낌은 아니었는데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바로 옆에 와서 팔짱을 끼고 뒤로 숨듯 기대어 왔다. 노력 끝에 아주 예쁜 고양이에게 간택당한 기분이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다들 이 친구에게 처음부터 호의적이었던 건 이 친구에게서 풍기는 '여유'가 주는 편안함이 느껴져서였던 것 같다. 언제나 급할 것 없고 크게 신경 써야 할 것 없이 살아온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특유의 분위기. 아무리 같은 학교에서 같은 교복을 입고 있다 해도 아이들은 제각각 살고 있는 환경이 말과 행동에서 드러났고 직접적으로는 신발이나 가방, 소지품 하나하나로도 알 수 있었다. 나와 친구는 환경이 다른 정도가 아니라 차원이 다른 수준이었다. 나의 아빠는 깡패 출신이라 번듯한 직업 없이 이 일 저 일 전전하며 허구한 날 마누라와 자식을 패대며 자기 인생 분풀이를 하던 사람이었다. 친구의 아버지는 대기업의 중간관리자였고(수년 전부터는 부사장이 되셨다.) 딸들을 아끼고 사랑하는 다정한 아버지였다. 그런데 우리가 매일 붙어 다니는 절친이 되다니. 우린 그렇게 같은 고등학교에 합격해서 문과와 이과로 갈리고 한 번도 같은 반을 한 적이 없지만 계속 절친으로 지냈다.
고등학교 입학까지 정신력으로 버텨왔던 나는 고등학교 생활 내내 무너져갔다. 이혼 후 엄마가 나와 둘이 살게 되면서부터 벗어날 줄 알았던 지옥은 오히려 엄마 몰래 나 혼자 감당하는 지옥으로 변해서 이어졌다. 대학 학자금까지는 대준다는 명목으로 아빠는 공장에서 늦게 퇴근하는 엄마가 없는 시간에만 찾아와 툭하면 패고, 성적이 나오는 날은 더 패고, 예전보다 더 강도가 심해졌다. 하지만 난 그 사실을 3년간 말하지 않고 혼자 견뎠다. 다 큰 딸 목욕을 시켜줄 리도 없고, 얼굴은 멀쩡한 데다가 엄마도 그 당시 자궁근종이 점점 심해지는데 공장일을 하면서 박하사탕 중독에 빠져있을 정도로 예민하여 나에게는 크게 신경 쓰지 못했다. 자식이 더 망가질까 봐 이혼을 했지만 갑자기 혼자 딸을 키우며 살아야 하는 것에 스트레스를 적잖이 받았던 것 같다. 그래서 엄마에게 내가 겪는 상황을 이야기할 수 없었고 그저 버티다 스무 살이 되면 지옥이 끝날 거라고 생각했다.
잘난 아이들만 한데 모인 학교에서 내 성적은 난생처음으로 반에서 중간이나 겨우 하는 수준으로 시작하더니 그 마저도 유지는커녕 점점 곤두박질쳤다. 인생을 포기한 아이처럼 아무리 아빠가 성적이 이게 뭐냐고 후드려 패고 가도 공부를 하지 않았다. 책과 라디오에 빠져 살았다. 아빠는 이따위 성적으로 대학을 갈 거면 자기는 등록금을 못 대준다며 그땐 공장이나 다니라고 했다. 결국 나는 대학은커녕 정신줄을 놔버리고(해리성 기억장애 진단. 장기적인 극심한 스트레스로 유발된 것이라고 했고 언제 정상으로 돌아올지 기약할 수 없다고 했음.) 일상생활을 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이모와 병원 의사까지 동원되자 아빠는 그제서야 내 인생에서 사라져 주었다. 그로부터 2년 뒤에 정신을 되찾고 대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다. 아마 그 때 정신줄을 놔버리지 않고 곧잘 성적이 나와서 괜찮은 대학교에 바로 들어갔다면 여전히 아빠에게 시달리는 삶을 살았을 것이다. 스무 살 꽃다운 나이에 정신이 나간 것은 신이 나에게 처음으로 준 선물이었다.
그렇게 살고 있던 터라 고3 첫 수능이 끝나자마자 자살을 하러 분당 둑길을 따라 한강까지 하염없이 걸었다. 수능을 떠나서 재수를 하든 공장으로 내쳐지든 간에 또 아빠에게 시달리는 삶이 시작되는 걸 관두고 싶었다. 그런 나에게 그 친구가 문자로 '힘들겠지만 다 잘 될 거야.'라는 문자를 보내왔다. 너무 오랜 세월이 흘러서 그 앞의 말들은 기억이 안 난다. 모르긴 몰라도 늘 말이 길지 않은 친구라서 장황하게 말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어쨌거나 다들 나로 빙의 돼서 생각해 보시라. 그 문자에 힘이 났을지 화가 났을지. 물론 그 친구가 아니라 내 인생에 화가 난 것이지만 나는 어린 마음에 그 친구에게 문자로 욕을 하며 잘 되긴 뭐가 잘 되겠냐, 너 같은 애가 뭘 알긴 하냐 등 아주 무시무시한 대답을 해버렸다. 문자를 보내놓고 심장이 갓 잡은 활어처럼 날뛰었다. 그 뒤로 우리는 3년 정도 연락이 끊어졌다.
뒤늦게 정신이 온전히 돌아오고 늦깎이 대학생활을 하면서 그 친구를 잃었다는 게 떠올랐다. 시간도 너무 흘렀고 만회가 불가능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연락처가 바뀌었을지도 몰랐다. 오래 고민한 끝에 그 친구에게 메일을 보냈다. 그때는 내가 사는 게 너무 지옥 같다 보니 미쳤던 것 같다고, 결국 진짜로 정신이 나가서 병원 생활 오래 하다가 대학 다닌 지도 얼마 안 되었다고, 정신 차리고 보니 너에게 그렇게 한 게 너무 후회된다고, 너무 미안하다고. 대충 그런 내용이었다. 매일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집에 오면 보낸 메일함과 받은 메일함을 대학 합격자 명단 확인하듯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들여다봤다. 며칠 뒤 답장이 왔다. 그 친구다운 '여유'가 느껴지는 '충분히 이해한다'는 답장이었다. 일찌감치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하고 있던 친구와는 한참 뒤에나 만날 수 있었다. 그로부터 우리는 일 년에 한 번씩 만나고 새벽마다 교류하며 우정을 다시 이어가다가 이제는 플랫폼 창립 멤버로 일까지 함께하고 있다.
태생이 다른 두 아이가 운명처럼 이끌려 우정을 쌓고 결국은 역사적인 장을 맞아 비극적으로 헤어지는 이 책을 읽는 내내 그 친구 생각을 많이 했다. <동급생>의 주인공 한스는 콘라딘의 생각지 못한 행보에 충격을 받는다. 인생의 가장 절절했던 인연을 어쩔 수 없이 접어두고 살았건만! 허나 쉬이 연락할 수 있는 시절도 아니고 더구나 나치 체제에서 가장 취약한 유대인인 한스가 무엇을 더 할 수 있었겠는가. 만약에 한스가 독일을 떠난 후에 다시 콘라딘을 찾았다면 어땠을까. 콘라딘은 그때 한스에게 어떤 이야기를 했을까. 유년기 때와 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았을까. 그렇게 그들의 관계는 회복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회복까지는 힘들더라도 오해하지는 않을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런 상상을 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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