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행복한 미소 속에 같이 웃을 수 있음에
결국, 지난 글 말미에 썼던 대청소도 하지 못했고 노트북을 들고나가 단골카페에 가서 신상 딸기치즈케이크와 아메리카노를 먹으며 일하는 것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오늘은 지난번에 한다고 해놓고 못했던 대청소를 드디어 해냈다. 어젯밤 설거지를 하고 보니, 정리는 안 한 채 계속 쌓아 올려지기만 하는 설거지대가 마치 인도버스 같았다. 아슬아슬한 곡예를 하고 있는 그릇들은 강하지 않으면 개박살 날 판이었다. 정말 인도버스인 게, 그릇들을 다 걷어내면 드러나는 설거지대의 바닥은 갠지스강이나 다름없었다. 설거지대만 그런 게 아니라 겨우 청소기나 다급히 잉잉거렸을 뿐 집안 여기저기 정리할 것들이 너무 쌓여있었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빌라 4층인 집에서 분리수거만 4번을 왔다 갔다 했다.
아이 간식과 공부를 봐주면서 오후 느지막이 갑자기 시작한 대청소는 저녁 7시가 되어서야 끝이 났다. 새로운 저녁 메뉴를 만들 기력이 별로 없어서 밥만 새로 해 있는 반찬들에 밥을 먹을까 아니면 오늘은 시켜 먹을까 하던 참에 남편이 들어왔다. 다 들어내 바닥과 틀 모두 말끔히 닦여져있고 늘 그대로 있던 그릇들은 싹 찬장으로 들어가 비워져 있는 설거지대를 보고 남편은 감탄했다. 안방에서 옷을 갈아입는 남편의 말소리가 들린다.
"와 여기 이런 사진이 있었어?"
수납장 위에 웨딩 사진과 아이 사진을 거의 가리고 있던 온갖 것들이 정리된 모습에 놀란 모양이다. 거실에 버린다고 쌓아서 모아두기만 한 지 오래인 옷무더기와 아이의 지난 장난감과 책들도 다 치워져 있는 걸 보고 오늘 무슨 날이냐고 했다. 나는 이사를 가고 싶은데 계속 못 가서 이사놀이 중이라고 했다. 아이는 짜장면이 먹고 싶다고 했다. 대청소에 사력을 다하다가 짜장면을 먹으니 정말 이사 온 기분이었다. 이 기세로 내일은 아이가 학교에 가고 나서도 잠들지 않고 곧장 운동을 시작으로 하루를 정상적으로 보낼 수 있으면 좋겠다.
오늘의 대청소 외에는 지난 주중에 자잘한 서류 작업을 조금 했을 뿐, 또 형편없는 일주일을 보내다가 지난 주말에는 아이 피아노를 사주기 위해 낙원상가로 향했다. 작년 크리스마스 때 아이에게 사줬던 피아노는 사실 장난감 수준이나 다름없었는데 전용 충전기가 아닌 휴대폰 고속 충전기로 충전을 하는 바람에 고장 난 지 오래였다. 바이엘 4권 중인 아이는 가끔 연습이 필요해져서 이번 크리스마스 선물로 피아노를 좋은 것으로 사주기로 약속한 터였다. 차를 오래 타는 걸 싫어하는 딸은 자기 선물을 사러 간다는데도 얼마나 걸리냐는 질문을 하더니 나가기 싫다는 기색이었다. 명색이 크리스마스 선물인지라 둘만 보낼 수도 없어서 힘겹게 외출 준비를 하고 있는 내 속을 알리가 없다. 하지만 요즘 우울함을 분노로 둔갑하여 표출하는 짓을 그만하려고 노력 중이라 차분하게 가서 직접 봐야지 좋은 걸 살 수 있다고 설명해 주고 입을 옷을 챙겨주고 머리 드라이를 해주었다.
웃긴 건, 이왕 가는 거니까 광화문 크리스마스 마켓도 보고 오자고 말한 건 나였다. 내 상태가 이러하니까 크리스마스 즈음에 또 어딘가 나가는 건 쉽지 않을 것이고 이렇게 분명한 목적이 있어 나서는 김에 미리 크리스마스를 당겨 보내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아이는 무념무상이었고 남편도 크리스마스나 연말에 더욱 북적이는 것이 싫은 사람이라 지금이 차라리 낫겠다며 좋다고 했다. 하지만 비가 와서 일단은 우산을 챙겨나갔고 비가 계속 많이 오면 관두는 걸로 하고 출발했다. 낙원상가 인근인 종로 쪽은 남편과 내가 고작 두 달의 연애 기간 동안 가장 많이 데이트하던 장소였다. 언제부턴가 우리의 첫 만남이나, 연애 때의 기억을 잘 떠올리지 않는 편이라 남편이 옛날이야기를 꺼내는 것에 나는 건조한 대답만 이어갔다. 그보다는 '내가 지금 여기까지 나와 있네?'라는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낙원 상가 골목에 들어서자 공영주차장을 찾는 중에 갑자기 어느 할머니께서 튀어나오셔서 남편과 나는 식겁하며 차를 멈췄다. 차창을 똑똑 두들기셔서 창을 내리니 발레 파킹을 해주신다고. 우리는 다 내리고 할머니께서 좁디좁은 주차장에 우리 차를 아주 기가 막히게 거의 한쪽 벽에 다을랑 말랑하게 주차해 주셨다. 역시 이 동네는 참 흥미롭다. 근데 그 모습이 뭐라고 내 병증이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단순한 외출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장소에서 색다른 것을 접하는 것이 묘책일지도 모르겠다. 차에서 내린 할머니는 우리에게 어디 가냐고 물으셨다. 낙원상가에 간다고 했더니 바로 연결되는 엘리베이터를 알려주셨다. 2층을 누르면 된다는 간단한 설명과 함께.
낙원상가 인근에서 일도 했었고 남편 외에도 이 동네는 과거 연애사는 물론 과거에 친하게 지내던 시절 인연들과의 추억도 많은 동네라 친숙하지만 낙원상가 안에 들어가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할머니께서 알려주신 대로 2층으로 곧장 도착하여 내리니 조율 중인 기타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좀 더 안쪽으로 들어서자 상가 내 간이 카페에서 자리를 잡고 '로맨스'를 치고 있는 아저씨가 있었다. 다급히 화장실부터 찾아 나선 아빠를 기다리며 아이와 나는 연주를 가만히 듣고 있었다. 각자 가게에서 조명을 받으며 라인업 되어 있는 온갖 악기들을 보며 아이는 들떴다. 분명 피아노를 사러 와 놓고 갑자기 화려한 기타들에 현혹되어서는 갑자기 우쿨렐레를 사고 싶다고 했다.
피아노 가게를 돌아다니며 비교해 보았으나 소리가 좋고 쓸만하겠다 싶으면 40만 원이 훌쩍 넘었다. 진짜 마음에 들던 것은 55만 원이었다. 대충 20만 원 정도 생각하고 왔는데 그렇게 무리할 수는 없었다. 일단 후퇴하고 남편과 나는 구경하러 다니는 동안 가게 사장님들에게 들은 잡지식을 동원하여 인터넷으로 국내 제작 타 브랜드 피아노를 구매했다. 그렇게 유의미한 아이쇼핑을 마치고 비가 그쳤기를 기대했으나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다. 우산이 있지만 우산을 들고서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사진을 찍고 싶지는 않았기에 그 일정은 포기했다. 아이는 갑자기 낙원상가 바로 옆, 진한 노포의 포스가 가득한 '탑골 칼국수' 가게를 보더니 칼국수가 먹고 싶다고 했다. 집에서 내가 늘 밥밥밥 해대서인지 외출할 때면 늘 면면면 노래를 하는 아이라 어느 정도 예상한 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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