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속과 출신이 아닌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묻는 세상에서
다들 희망차게 새해를 시작했기를 바라며. 이 글을 쓰는 건 2025년 12월 31일 밤이다. 2025년을 이틀 남겨둔 30일 오후 3시경, 남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신혼 때조차 별 용건 없는 전화는 서로 하지 않는 터라 분명 무슨 일이 있다고 짐작하며 전화를 받았다.
"뭐 해?"
"집에 있지. 왜, 무슨 일 있어?"
"아니, 그냥 회사 그만둬야 할 것 같아서. 예상했던 거긴 하지만."
이미 두 달치 월급이 밀려있던 터라 나도 예상하고 있었지만 결코 유쾌 상쾌 통쾌한 건 아니었다. 내심 갑자기 정산이 되어서 준비하고 있는 플랫폼이 확실하게 사업자 등록을 하고 출시되기 전까지는 정기적인 수입이 유지되기를 바랐다. 이런 일은 이 남자와 11년 살면서 벌써 세 번째였다. 사업자를 내면 그만두긴 해야 했으니 석 달 정도 그 시기가 빨리 온 것뿐이라고 애써 가볍게 생각했다.
그러려니 안 할 수도 없는 것이 남편은 프러포즈는 고사하고 결혼하자는 말을 할 때부터 밑밥을 깔았다.
"나는 이미 어릴 때부터 사업을 한 사람이고 계속 그럴 사람이라 불안정할 수 있어. 그래도 괜찮아?"
나도 덩달아 밑밥을 깔았다.
"나는 오래 가난했고 오래 아팠던 터라 학자금 대출금이 2천만 원가량 거의 그대로 있어. 그래도 괜찮아?"
그렇게 서로 밑밥 깔기에 성공하여 우리는 결혼했다. 안정성을 떠나 뭘 해도 먹고살 사람이라는 강한 신뢰로 만난 지 두 달 만에 양가의 허락을 받은 후 동거부터 했다. 결혼식은 1년반 가량 살다가 치렀다. 남들은 결혼하는 게 꽤나 복잡하고 머리 아픈 일인 듯했는데 우리에게는 제법 쉬웠다. 물론 아무리 대출을 낀 거여도 남편이 혼자 살고 있던 인천의 작은 빌라가 있기야 했다. 하지만 집이 있다고 해서 결혼이 쉬운 것은 아니다. 조건이나 외관이 중요한 결혼도 많고 자기 자신을 객관화하지 못하는 당사자들도 많다. 상대방 또는 상대방의 가정에 결정적인 문제점이 결혼 직전에 보이는 경우도 많다. 당사자들이 여러 과정을 거쳐 확신을 가져도 이제 욕심을 내는 부모들 때문에 난감한 경우도 많다. 우리는 당사자들과 양가의 어머니 모두 '너 자신을 알라'의 정신은 확실했다.
서울에서 살다가 갑자기 아무 연고도 없는 인천에 무턱대고 옷과 신발, 화장품 정도만 싸와서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그렇게 혼인신고 후 수개월을 살고 나서야 절친을 포함한 지인들에게 서서히 결혼해서 인천에 살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것도 의례 만날 즈음이 되어 만날까하는 연락에 '내가 결혼해서 인천에 살아서 거기까지는 못 가.' 그런 식으로 느닷없이 말하게 되었다. 다들 갑자기 무슨 말이냐고 놀라고 '결혼도 참 너답다.'는 반응도 많았다. 한 동안 우리 부부의 만남과 동거까지의 과정을 말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장난을 치고 신나게 후일담을 떠드는 아이인양 바쁘고 재밌었다.
그 재미는 오래가지 않았다. 남편과 함께 공동대표였던 사람이 개발에만 집중하던 남편 몰래 뒤에서 자금문제를 일파만파 만드는 바람에 결국 신혼생활 3개월 만에 남편은 개인회생 절차에 들어갔고 억울하게도 5억의 빚을 갚아나가야 했다. 우리에게는 제법 결혼이 쉬었다는 말은 결국 취소하게 되었다. 그나마 하나 있는 16평짜리 빌라도 압류되었고 까딱했다간 날아갈 판이었다. 마치 누군가 나를 시험하는 것 같았다. '오호라? 불안정한 사람이어도 좋다고 결혼을 했어? 이래도?' 하면서. 집도 혼수도 뭐 하나 해주지 못한 양가 어머니들은 차마 우리에게 할 말이 없어 말씀도 아꼈던 시절이었다. 결혼 후 첫 크리스마스에는 밖에 나가봤자 다 돈이라며 집에서 냉장고를 털어 밥을 비벼 먹다 말고 나도 모르게 울어버렸다. 난 크리스마스마다 종종 그때가 선연히 떠오른다. 작년에는 그동안 다니던 회사로부터 못 받고 나온 돈이 퇴직금을 포함해서 4천5백만 원이 넘는다. 그 모든 것들을 다 지나왔는데 회사 그만두는 거 즈음이야 뭐 어때용. 두 달 치 월급 정도는 대지급금 신청해서 받으면 그만이죵. 어쩌라고, 알빠노, 뭐 어때용 정신만 있다면 못 해낼 게 없다.
이제와 생각해 보면 신혼 때의 나는 남편을 믿었다기보다는 어떻게든 잘 알아서 하겠지 하는 막연한 의지가 더 컸던 것 같다. 나름 여러 번의 연애 끝에 내 모든 역사를 이해할 수 있는 괜찮은 사람을 찾은 것이긴 하지만 도망치듯 빠르게 결혼한 것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아빠로부터는 살기 위해서 도망쳤고 엄마는 늘 힘드니까 내 할 일은 알아서 잘 하자는 생각으로 살았다. 즉, 부모가 있었지만 제대로 의지하고 살아본 적은 없었다. 한창 취업을 하는 시기에 투병을 길게 하고 나오니 그 당시 신입 자리에 늦은 나이로 정직원이 되는 건 어려웠다. 결국 계약직으로 일을 시작했다. 여전히 반지하에서 엄마와 둘이 전전하는 삶은 지쳐갔다. 연애야 몇 번 했지만 남편은 엄마에게도 잘하지 못한 의지를 처음으로 해본 사람이었다. 그 의지가 생각보다 컸는지 평생 불안이라는 코드 안에 있던 내 삶을 빼내서 믿을 만한 남편에게 끼워 넣었는데 또 불안이 엄습하자 도무지 잡히지 않는 에러를 만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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