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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잠 Jun 23. 2024

하필이면. 붕어빵


문예반 활동을 하다가

고등학교를 두 번이나 전학을 하게 되었다.

 

다짐했다.

 

정호승작가의 글을 사랑하지 않기로 했고.

백지의 설렘을

쏟아내는 희열들을

더 이상 느끼지 않기로 했다.

책을 멀리하고

사색을 증오했으며

작가의 꿈은

냄새나는 쓰레기통에 버렸다.

우울했다.

정말 우울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내게 아들이 생겼고

엄마는 호호백발 할머니가 되었다.

 

내 아들은 가만히 있기만 해도 추운 이 겨울에

붕어빵이 먹고 싶다 했다.

주위에서 붕어빵을 파는 곳을 보지 못했기에

나중에 파는 곳을 발견하면 사다 주겠다 했다.

 

그때 옆에서 듣고 있던 엄마가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버스를 타고 정거장 정거장을 지나며 붕어빵 가게를

찾았다. 버스 승객들에게 혹시 붕어빵 파는 곳을 아냐며 물어보면서.

 

그렇게 찾아낸 붕어빵 집에서

엄마는 붕어빵 봉지를 품에 안고 행여 식을까 다시 먼 길을 돌아왔다.

 

아직도 따뜻한 붕어빵을 먹으며

아들은 행복한 얼굴로 붕어빵을 번개같이 해치웠다. 정말 정말 맛있다며. 할머니가 최고라며.

 

그리고 그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을 때 엄마는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

 

다음 해 겨울 눈이 내리던 날.

집 가까운 곳에 붕어빵 파는 곳이 생겼다.

 

붕어빵을 사며 엄마가 떠올랐다. 그리고

언젠가 잠깐 보았던 정호승 작가의 글이 머리를 스친다.

 

붕어빵. 정호승

 

눈이 내린다.

배가 고프다

할머니 집은 아직 멀었다.

동생한테 붕어빵 한 봉지를 사주었다.

동생이 빵은 먹고

붕어는 어항에 키우자고 해서

그러자고 했다.

 

모든 꿈이 탄탄대로를 걷지 못한다. 나도 알고 있다.

 

나는 전학을 핑계로 꿈의 문을 닫았고

붕어빵을 계기로 꿈을 다시 열려고 꿈틀댄다.

 

 

깨진 어항에 붕어빵 한 마리를 키우자.

글이 고팠던 밤에도

키우지 않았던 붕어빵을

나이도 반백을 넘었지만 이젠 아무런 핑계도 대지 말고 꿈을 틔우자.

 

하필이면 내 꿈이었던 작가가 되고 싶어서

하필이면 조현정동장애로 단어조차 생각도 잘 안나는 내가.

하필이면 이젠 만날 수 없는 곳으로 떠나버린 엄마를 미워했다 사랑했다 번복하다가

 

붕어빵 한 봉지를 사들고

이제 꿈을 키워보기로 결심했다.

 

음.. 그리고.

 

빵은 먹고

붕어는 즙으로 팔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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